안철수는 오래전부터 중소벤처 기업이 클 수 없는 우리나라의 대기업 중심적인 경제구조를 비판해왔다. 대기업에 대한 거부감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대기업과 중소벤처가 상생할 수 있는 환경이 담보되지 않는한 한국경제는 지속가능한 성장이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중소벤처가 무너지면 대기업도 힘들어질 수 밖에 없다는게 안철수의 소신이다.
이같은 생각은 지난 3년간 경영일선에서 물어나 미국에서 공부했고 CEO에서 한국과학기술원(KAIST) 석좌교수로 변신한 지금까지도 변한게 없다. 비판의 수위는 오히려 높아졌다. 한국 경제가 갈수록 대기업 중심구조로 흘러가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SW산업의 가치를 강조하는 기획시리즈를 위해 안철수를 다시 인터뷰했다. 기자 입장에서 이번 인터뷰는 어느정도 답을 예상하고 추진한 것이다. 그를 여러번 인터뷰했던 기자로선 처음에는 예전처럼 SW산업이 클 수 없는 문제점에 대해 안철수 특유의 도발적이면서 직설적인 비판을 이끌어내고 싶었다.
그러나 실제 인터뷰에 들어가서는 문제 제기보다는 대안을 모색해 보는데 초점을 맞췄다. 쉽지는 않겠지만 공론화할 수 있는 아젠다 한개 정도는 뽑아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것들이 쌓이고 쌓이면 강화되는 토목경제와 대기업중심주의에 태클을 걸 수 있는 작은 명분이 될수 있을거라 믿는다.
안철수는 인터뷰에서 중소벤처가 무너지면 대기업도 위험하다는 예전의 경고음을 다시 한번 울렸다. 환율이 폭등한 상황에서 대기업들이 예전과 같은 재미를 보지 못한 것도 중소벤처와의 상생에 금이 갔기 때문이다는 직격탄도 날렸다.
그는 또 SW산업이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SW에 대한 의사 결정권자들의 인식을 바꾸는게 최우선 과제라며 SW산업 규모를 순수 SW를 넘어 자동차나 가전분야에 쓰이는 SW까지 포함시켜 이를 정책적 지원으로 연결시킬 필요가 있다고 강하게 주문했다.
기자가 안철수를 인터뷰할때면 누군가는 말한다. 또 안철수냐? 그럴때마다 기자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래, 또 안철수다. 중소기업들의 목소리를 전달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지금, 자신의 이름을 걸고 쓴소리를 할 수 있는 이는 많지 않다.
아직 우리나라는 튀면 높은 사람들한테 정맞을 가능성이 높은 나라다. 스스로 만날 똑같은 얘기 하기도 이젠...이라 말하는 안철수의 역할이 아직은 필요하다 보는 이유다.
다음은 안철수와의 인터뷰를 정리한 것이다. 인터뷰는 지난 24일 오후 여의도 안철수연구소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을 강조해왔다. 지금 상황은 어떻게 평가하나.
아직 상생에 대한 믿음이 없는 것 같다. 상생만이 해결책인데... 어떤이들은 중소기업이 중요하다고하면 흑백논리로 생각하는데, 대기업을 도태시켜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국가 경제 포트폴리오 차원에서도 둘다 건전해야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한쪽만 잘되서는 안된다.
중소 벤처와 대기업은 서로를 도울 부분이 많다. 전세계 혁신 기업중 90% 이상이 중소기업에서 나오고 있다. 이것은 검증된 수치다. 결국 중소기업이 잘되야 대기업도 경쟁력이 생기는 것이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진정한 글로벌 기업인지 보려면 이익이 어디서 나오는지 볼 필요가 있다. 내수가 있고 수출이 있는데, 매출 규모 대비 이익은 국내에서 많이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익중에는 불공정거래를 통한 것도 있겠지만 많은 부분은 국내 소비자들이 사줘서 얻었을 것이다. 결국 대기업 입장에선 건전한 중산층이 많아져 물건을 사줄 수 있도록 하는게 이익이다.
이렇게되야 기술을 안정화시켜 그걸 기반으로 외국에 나갈 수 있다. 중소기업 없어지고 중산층 깨지면 대기업도 경쟁력 잃을 수 밖에 없다. 대기업이 장기적인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는데 있어 중소기업은 필요한 존재다. 예전에는 환율이 높아지면 수출 기업들이 돈을 많이 벌었다. 그러나 지금은 수익이 안난다. 오히려 손해다.
국내 중소기업들과 거래하던 시절에는 돈을 벌었는데, 글로벌 아웃소싱 늘리고 하다보니 수입이 늘고 단가가 높아져 그런것이다. 정부에서 환율높여 대기업들 이익나게 해줄려고 해도 안될 수 밖에 없다. 지금 점검해보고 안고치면 대기업도 위험하다.
-'상생', '상생'하는 구호는 늘고 있는데, 실질적인 효과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는.
장기간의 신뢰에 대해 잘 안믿는거 같다. 투명성에 대한 믿음이 없어 보인다.
-SW는 중소벤처의 일부인데, 점점 어려워진다는 얘기가 들린다.
힘든 분야다. 많이 피폐돼 있다. 바닥이 그대로 유지되는 것 같고, 솔직히 새로 말할 것도 별로 없다. 재미를 느끼고 소질도 있는 사람한데 너 이거 비전없으니 딴거해 한다면 잔인한거다. 개인적으로도 그렇게 말하고 싶지는 않다. 재미가 있고 잘하는 것은 열심히 하면 고생한 만큼, 그런대로 보상받을 수 있다. 전망과 상관없이 자기가 잘하고 재미있는거 열심히 하는게 제일이다. 전망이 없으니 소질이 있어도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틀린 말이다.
-어려움이 계속되는 이유는 뭐라고 보나.
SW산업에 대한 의사 결정권자들의 이해 부족이 한몫을 하는 것 같다. 산업의 구조적인 문제는 달라진게 없다. 결국 이같은 문제를 알고 바꿀 수 있는 의사 결정권자들이 SW산업에 대한 문제가 부족한게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뭘해도 진척이 안된다.
사실은 SW가 어떻게 보면 토목과 건설보다 노동집약적이다. 건설은 인력만 필요한게 아니라 원자재도 필요하다. 사람이 차지하는 인건비는 일부다. 그러나 SW는 대부분 인건비다. 조금만더 활성화되면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 전문 인력도 키울 수 있다. 국가와 가정에서 많은 교육비를 들여 키워놓은 수많은 대졸 입력을 제대로 흡수할 수 있다.
-SW는 중소벤처이면서 나름 특수성이 있다. 산업의 고질적인 문제를 개선하는데 있어 어떤 접근을 해야 한다고 보나.
기본적으로 SW산업만의 문제를 풀기보다는 중소벤처 생태계 문제를 해결하는게 먼저라고 생각한다. 중소벤처 생태계 문제를 풀고 SW와 보안 등에 접근하는게 현실적인 듯 하다.
-구체적인 대안이 있다면
서비스를 키워야 한다는 공감대는 있는 것 같다. 서비스하면 식당 연상하는데, 서비스중 가장 고부가가치가 있는 분야는 SW다. 많은 관심을 둬야 하는데, 솔직히 산업 자체가 너무 힘들다. 가면 고생만 한다는 얘기가 들린다. 사실 SW산업 규모는 시각만 바꾸면 적지는 않을 것이다. 고급 자동차에도 요즘은 SW가 많이 들어간다. 자동차 신제품 출시가 지연될때도 엔진보다는 SW쪽 완성도가 떨어져 그런 경우가 많다고 하더라. 블루레이 플레이어 등 가전 제품도 이제 SW 업그레이드받아야한다.
그런만큼 보는 시각을 바꿔야 한다. 예전에는 통계낼때 하드웨어 따로 SW따로였는데, 자동차나 가전에서 SW가 차지하는 비중은 어느정도인지 또 이 분야에 SW엔지니어들은 얼만큼 포진해 있는지도 SW산업 규모에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 정부는 규모에 따라 정책을 만들게 마련이다. 시각을 바꾸면 SW는 벤처기업에서 고생하고 하청받다 쓰러진다는 이미지가 아니라 여러가지 비전을 보여줄 수 있다.
-제도적인 부분도 다시 한번 짚고넘어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대통령 자문 미래기획위원회 위원을 맡았다. 누군가는 벤처와 SW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거기에서 얘기계속하는데 여러가지 사안중 우선순위가 떨어진다. 남북관계, 외교, 경제 등 여러분야 문제가 많다보니 큰틀에서 중소벤처 산업 구조에 대한 문제만 주로 얘기한다. SW까지는 아직 가지도 못했다.
그래도 언젠가는 바뀔거란 희망을 갖고 있다. Y2K때도 그랬고 벤처기업 95% 망한다고 할때도 당시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몇년 지나니 변화가 왔다. 5~10년 걸리더라도 옳다고 믿는 것은 계속 말해야 한다고 본다. SW산업이나 중소기업과 대기업 거래 관행이 다 그렇다.
-공정거래법에 대한 입장이 듣고 싶다.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 것인가.
(공정거래위원회에서)B2C는 열심히 하는 것 같더라. 그러나 B2B는 힘들다. 산업에 여러가지 나쁜영향도 줄수 있다보니 주저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대부분의 SW업체들은 B2B와 관련돼 있다. 그래서 더욱 문제가 심각한거다. 불법적인 요소라도 찾아 개선해줬으면 좋겠다. 지금은 기업간 가격을 깎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계약서를 쓴 뒤 부당하게 더 요구했는지 아니면 계약서없이 말로 했는지 등 계약서 쓴 전후에 발생하는 불법적인 부분들에 대해 대응이 있어야할 것 같다.
- 미국에 있으면서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최고경영자 엠비에이(MBA) 과정을 공부하고 벤처캐피털쪽에서 경험도 쌓았다. 한국SW기업이 해외에서 성공할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어느정도라고 보나.
미국 벤처캐피털 있을때 창업한뒤 투자받으러온 기업들을 많이 봤다. 솔직히 놀랐던게 기업들이 설립과 함께 아웃소싱하는 경우가 많았다. 과거에 기업들은 처음에는 자기들이 다하고 커지면 아웃소싱을 했는데, 지금은 안그렇다. 벌써 2~3년전부터 투자받으러오는 대부분의 기업들이 인도에 아웃소싱을 주고 있다. 미국은 본사와 연구개발 조직만 두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한국인 엔지니어들이 실리콘밸리에서 모이기 시작하고 있다. 필요에 의해 모임을 갖는데 규모가 커지고 있다. 500명이 벌써 넘었다. 이를 감안하면 인도 사람들이 신생 기업 만들면서 연구개발을 인도에서 하는 것처럼 한국도 실리콘밸리에 SW, 인터넷 기업만들고 연구개발은 한국과 협조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한국에만 있던 회사들은 외국에 진출하기가 쉽지 않는데 이런 네트워크를 통한다면 가능성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생각이다.
결국 역발상을 통해 외부에서 기회를 찾아보자는 것이다. 성공사례가 생기면 SW산업에도 활력이 될 것이다.
-정부 지원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보나.
시장 만드는데 투입하는게 맞는 거같다. 초등학교에서 예산이 없으니 선생님들이 불법복제를 시킨다. 한달에 휴대폰 요금은 10만원 내면서 1년에 SW 비용 만원 쓰는건 아까워한다. SW로 돈받으려고 하면 오히려 욕을 한다. 이런게 모이면 실업이 양산된다. SW산업에서도 누군가 생활인으로서 월급받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주지 않으면 결국 자기살 깎아먹는 것이다. 의사결정자들이 SW에 대해 개념이 없으니 더 힘들어진다. 그렇다면 지금 실무진에 있는 사람들이 의사결정위치로 올라가면 상황이 달라질까? 그때가 되면 씨가 마르겠지...결국 외국업체 좋은일 시키는 거다.
-창업이 줄고 있다.
한번 해서 성공확률이 낮고 리스크가 크다는게 주저하는 이유다. 대학에서 기업가 정신 교육하면서 보니까 경기가 나쁘고 실직자 많을때 창업이 많이 일어난다. 이런 사람들을 많이 성공시키는게 중요하다. 예전 벤처거품때처럼 하자는게 아니라 제대로 이익내고 성공 확률을 키울 수 있도록 해주는게 중요하다.
-최근 경기 침체는 어떻게 보나.
오래갈거다. 지난 몇년간 좋은 시기가 너무 길었다. 원래 좋을때보다 고생하는 시기가 더 긴 법이다.
-향후 계획은
현재 카이스트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고 안연구소에선 최고학습책임자(Chief Learning Officer: CLO)로 있다. 이와 함께 좋은 아이디어를 모아 한국과 미국을 연결해 나가고 싶다. 사람들을 모아 뭔가 만들어나가는 것을 도와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