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니퍼네트웍스가 소문만 무성했던 첫 스위치 제품을 30일 발표했다. 1996년 실리콘밸리에서 문을 연지 12년만의 일이다. 강익춘 한국 지사장은 이날 간담회를 열고 “그 어떤 신제품을 발표할 때 보다 감회가 남다르다”고 밝혔다.
그의 이런 발언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스위치 사업을 시작하기까지의 과정이 그리 순탄치 않았기 때문이다.

주니퍼는 일찌감치 라우터 업계의 강자로 올라섰지만 스위치 사업에는 이상하리만큼 손을 뻗치지 않았다. 함께 라우터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시스코가 스위치 사업을 병행하면서 시너지를 내는 것과 비교되는 모습이었다. 때문에 주니퍼는 ‘왜 스위치 사업을 시작 않는가?’라는 질문을 지겹도록 받아왔지만 특별한 반응은 없었다.
그러던 주니퍼가 스위치 시장이 포화된 이 시점에서야 늦둥이(?) 제품 라인업을 내놓은 것이다. 그동안 주니퍼 내부에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단일 OS 적용 위해 자체개발 선택
사실 주니퍼는 약 3년 전부터 스위치 사업을 준비했다고 한다. 문제는 중견업체 인수로 인한 기술흡입이 아닌 자체 개발로 사업방향을 잡았다는 것이다. 없는 스위치 기술을 맨땅에서 만들어내느라 3년이란 긴 시간을 보냈다. 다른 글로벌 IT 업체들이 문어발식 기업 인수로 제품 라인업을 순식간에 늘리는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이런 배경에는 주니퍼 특유의 ‘고집’이 자리하고 있다. 주니퍼는 전 제품군에 ‘주노스(JUNOS)’라는 단일 OS를 적용하며, 이 원칙을 지키기 위해 타 기업 흡수를 지양했다. 주노스가 들어갈 수 있는 제품은 오직 주니퍼만 만들 수 있기에 기업 인수는 의미 없다는 설명이다.
주니퍼 최우제 팀장은 “제품군 전반에 걸쳐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을 보장하기 위해 단일 OS를 고집하고 있다”며 “모든 제품을 주노스에 맞춰 개발하는 것이 고객을 위하는 길”이라고 밝혔다.
원칙 수호 행보 높이 사야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주니퍼의 주장이다. 제품마다 다른 OS를 둔 경쟁사나 고객들 중 상당수가 이견을 제기할 수도 있다. 단, 기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주니퍼는 오래전부터 가져온 ‘고집’, 아니 ‘소신’을 지키기 위해 평지 대신 험한 산길을 택했다는 것이다. 혹자는 비효율을 논할 수 있으나 주니퍼의 우직한 행보는 귀감이 될 만하다.
이제 주니퍼의 앞길에는 시스코를 비롯해 알카텔-루슨트, 쓰리콤, 익스트림, LG노텔 등 30여개의 스위치 강자들이 포진해 있다. 이 선발주자들 간의 치열한 경쟁 때문에 스위치 시장에서 수익은 이미 기대하기 힘들다는 목소리도 높다. 하지만 주니퍼는 제품에 녹아든 소신의 힘을 믿는다며, 성공을 자신하고 있다.
‘주니퍼’는 본래 유고슬라비아에서 만병통치약으로 쓰이는 나무라고 한다. 네트워크 기업 주니퍼의 새 사업 성공여부는 차치하고라도, 그 소신이 침체된 스위치 시장에 명약이 되길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