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T TV의 시대는 여전히 진행형

일반입력 :2007/02/27 10:33

Erica Ogg

TV 제조업체와 소매업체들은 CRT TV의 시대가 종말에 가까웠음을 너나 할 것 없이 경쟁이라도 하듯 외쳐왔지만, 이들은 예의 낡았지만 믿음직한 모습으로 여전히 우리 곁을 떠나지 않고 있다.

「아이서플라이」(iSuppli)에 따르면 2006년 말 북미 소매업체에 출하된 전체 TV 중 46%가 CRT TV (cathode ray tubes: 음극선관)인 것으로 나타났다.

LCD(liquid crystal displays)와 플라즈마(plasma screens)라는 새로운 평판형 TV 선호현상에 따른 낡은 CRT TV의 종말을 예견하는 광고나 뉴스 기사로 넘쳐나는 와중에 이러한 수치가 나왔음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점유율이 하락했다고는 하나 CRT는 아직도 무시할 수 없는 시장 점유율을 가지고 있다. 이는 대부분 평판형 TV 보다 현저히 낮은 CRT의 저렴한 가격에 기인한 현상이다.

「미국가전협회」(The Consumer Electronics Association: CEA)는 2009년 이후 CRT가 미국 내에서 더 이상 판매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CRT는 아직까지 TV 시장에서 상당한 점유율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속적인 CRT 기술 투자를 통해 이를 계속 개선해나가고 있다. 이번 CES에서 소개된 「TX-T3093WH」 모델은 슬림화된 외관에 와이드 평면 스크린, 양 측면에 장착된 스피커 그리고 USB 및 HDMI 입력단자로 구성됐다. 이는 오는 4월 699달러의 가격으로 출시될 예정이다.

CRT 역시 「고화질」(high definition)이 가능하다. LG의 30인치 「30FS4D」모델에는 HD 튜너가 장착되어 있다. 이는 2006년 LG가 출시한 유일한 CRT 모델이다. 올 해에는 새롭게 소개된 모델이 아직까지 없다.

이 TV는 미국에서 구입할 수 없다. CRT가 TV 시장을 여전히 장악하고 있는 인도시장을 겨냥한 저가형 모델이다. 아이서플라이에 따르면 현재 아시아 태평양 지역 시장에서 판매되는 TV의 93%가 CRT라고 한다. 소니는 올해 북미용 CRT TV를 위한 신기술에 투자할 계획이 없으며 이러한 종류의 CRT 신규투자는 앞으로도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KV-SZ29M80-50」등의 화질은 계속 개선해나가고 있다.

삼성은 CRT TV 신제품을 출시한 몇 안 되는 대형 TV 제조업체 중 하나이다. 그림에 나온 「TX-T2782」는 27인치 모델로서 동일 치수의 LCD는 가격 면에서 이와 경쟁이 되지 않는다. 삼성에 따르면 이 모델은 와이드스크린은 아니지만 HD 콘텐츠를 수신할 수 있고 일반적인 두툼한 CRT보다 30% 정도 두께가 더 얇다고 한다. 이는 오는 4월 549 달러의 가격으로 시장에 출시된다.

CRT는 예기치 않은 좋은 실적을 이따금씩 거두고 있기도 하다. 대형 스포츠 경기가 펼쳐지면 으레 대형 스크린의 HD TV가 불티나게 팔릴 것으로 예상하지만, NPD 그룹이 화요일 발표한 수치에 따르면 올해 「슈퍼볼」(Super Bowl) 대회 이전에는 의외로 CRT가 기대 이상의 좋은 실적을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고는 해도 CRT의 점유율은 현재 50%를 밑도는 수준이며 아울러 점유율 하락은 가속화되는 추세이다. 불과 4년 전만 해도 CRT는 TV 시장에서 88%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는 2004년에 75%로 하락했고 그 이듬해에는 64%로 주저앉았다.

CEA는 2009년쯤이면 CRT가 미국 내에서 더 이상 판매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선택할 수 있는 CRT 모델은 넘쳐날 것이고 보통 수준의 TV 구매자들은 저렴한 CRT를 기꺼이 구매할 것이다.

세계 최대 LCD TV 제조업체인 삼성도 출하되는 자사 TV의 8대 중 1대가 여전히 CRT 라고 말하고 있다. 삼성의 선임 제품담당 책임자인 알리 아타시(Ali Atash)에 따르면 이 회사는 화면 깊이값(depth)을 줄이고 회로망을 개선하는 등 CRT 기술 개선을 위한 투자를 계속하고 있다.

올해 CES에서 삼성은 5가지의 CRT 신 모델을 선보였는데 이들은 언뜻 보면 평판형 TV처럼 보인다. 매우 얇은 폼팩터(form factor: 외관), 평면 유리, 측면 장착된 스피커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게다가 삼성은 CRT 시장에서 당분간 철수할 계획이 없다. 아타시는 CRT는 여전히 뛰어난 전략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입장이며 2007년 CRT에 거는 기대가 매우 크다고 밝혔다.

CRT가 여전히 수요를 유지하고 있는 주된 요인은 무엇일까. 아이서플라이 애널리스트인 리디 페이틀(Riddhi Patel)은 수요가 높은 치수대의 CRT가 LCD와 비교해 가격경쟁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2006년 30-39 인치대의 CRT TV의 평균판매가격은 602 달러였다. 이에 비해 LCD의 동일 치수 대 평균판매가격은 1,235 달러 정도였다. 페이틀은 여전히 두 배 정도 차이가 난다며 2007년에는 동 치수대의 CRT 평균판매가격이 441 달러가 될 것으로 예상되며 LCD 평균판매가격은 격차가 다소 줄어든 780 달러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평판형 LCD TV가 특히 북미 시장을 비롯한 전체 TV 시장을 크게 잠식한 상태임은 따로 언급할 필요가 없다. 지난 해 북미에서는 LCD를 구매하는데 총 140억 달러가 지출되었는데 이는 TV 구매에 사용된 전체 지출인 300억 달러의 절반을 조금 밑도는 수치이다.

눈높이를 낮추자

소매 고객들은 이따금씩 LCD나 플라즈마 TV의 가격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것에 의아해 하는 경우가 있다. 샌프란시스코 「베스트바이」(Best Buy)에서 「매그놀리아 홈시어터」(Magnolia Home Theater)의 판매원으로 일하고 있는 안토니 바르기즈(Antony Varghese)는 평판형 TV를 보러 오는 고객들이 많지만 일단 가격을 보는 순간 CRT가 훨씬 부담 없는 수준임을 알게 된다.고 말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겠다는 듯 잠시 후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세이 잭슨(Shay Jackson)이라는 여성이 매장 광고 전단지를 손에 쥐고 매장에 들어왔다. 그리고는 점 찍어둔 한 TV를 찾았다. 이윽고 자신이 찜한 400달러짜리 TV가 CRT임을 알고 적잖이 실망했다고 말했다.

그는 괜찮아 보이지 않는다. 나는 평판형 TV라고 생각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TV 에 400 달러 이상을 지출할 여력이 없었고 게다가 자신의 침실에 TV를 비치할 생각이었으므로 눈높이를 한 단계 낮춰’ CRT를 구매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고 말했다.

바르기즈는 매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CRT의 치수는 32인치라고 했다. ‘보조용’으로 구매하는 경우는 특히 그렇다고 한다. 그는 이보다 치수가 더 작고 DVD 및 VCR이 내장된 TV를 구매하는 고객들도 이따금 있는데 이들은 이를 차고에 비치하기 위해 구매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LG는 북미시장을 겨냥해 신규 CRT 모델을 하나 내놓았다. 소니 역시 지난 해 ‘향후 어느 정도의 기간’ 동안 판매한다는 계획 하에 CRT 계열 신제품들을 출시했으나, 소니의 한 대변인은 향후 CRT 기술 수준을 제고할 계획이 아직까지 없다고 밝혔다.

소니는 미국 내에서는 CRT 신규 모델을 출시하지 않고 있지만 「소니 인디아」(Sony India)는 화면 선명도 및 밝기(contrast and brightness)를 개선하는 이른바 「스파클링 웨거」(Sparkling Wega) 기술을 개발 중이다.

여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아이서플라이의 페이틀은 세계적으로 볼 때 CRT는 여전히 전체 TV 시장의 71%를 차지하고 있고, 그 중 중국, 아시아 태평양, 중동 및 아프리카 지역에서는 여타 지역에 비해 CRT가 차지하는 비중이 훨씬 더 높다는 점을 지적했다.

페이틀은 북미나 유럽 시장의 경우 소비자 지출여력이 향상되고 TV교체나 신기술로의 강한 이동성향으로 인해 소비자들은 수백 달러를 더 지출하는 것에 그다지 개의치 않는다. 이와 달리 신흥시장에서는 단돈 50달러도 큰 금액에 해당한다. 이들 시장의 지출탄력성은 일부 성숙시장(선진국)에 비할 바가 못 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곳 미국에서 슈퍼볼 경기를 앞두고 CRT가 그토록 좋은 실적을 거둔 이유는 무엇일까? NPD 그룹의 산업분석 담당 이사인 로스 루빈은 LCD 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는 있지만 30인치 또는 32인치의 경우 여전히 CRT에 비해 가격 메리트가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NPD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슈퍼볼 대회가 열리기 1주 전까지 표준형 CRT TV는 모든 유형의 TV 중 가장 높은 성장세를 보여주었다. CRT 단위판매량은 60% 이상 증가했고 매출액 역시 46%가 증가했다. 슈퍼볼 주간은 소매업체들에게는 가격을 낮춰 연말쇼핑시즌의 잔여재고를 처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루빈은 평균판매가격 측면에서 LCD는 화면인치가 커질수록 가격 메리트가 떨어짐을 알 수 있다. 그래서 향후 몇 년 동안 일정 부분의 CRT 시장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고 지적했다. 이어 CRT는 아직까지 HD로 전환하지 않은 상당수 소비자들에게 여전히 인기를 끌 것으로 내다봤다.

특수효과와 CRT

한편 요즈음의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최첨단 시각효과를 다루는 전문가들은 CRT에서 평판형 모니터로의 전환을 지극히 유감스러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그 이유는 평판형 모니터에서는 색상 및 명암비의 정확한 재현이 아직까지 어렵기 때문이다.

「루카스필름」(Lucasfilm) 산하 「인더스리얼 라이트 앤드 매직」(Industrial Light & Magic: ILM)의 시각효과감독이며 영화 「캐리비언의 해적: 망자의 함」으로 오스카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던 존 놀(John Knoll)은 진짜 문제는 무엇보다 「보정」(calibration)에 있다고 말한다.

그는 CNET과의 한 화상인터뷰에서 회사 내 전체 모니터의 색상이 한결같이 일치해야 한다.며 여러 해 동안 소니의 「아티산 CRT」(Artisan CRT)를 사용해왔는데 이들은 보정이 가능하고 흑색 색상을 지극히 풍부하게 표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다이내믹 레인지」(dynamic range: 화질에 쓰이는 용어로 블랙 및 화이트를 표현하는 범위) 역시 괜찮았다. 그런데 소니는 이를 더 이상 만들지 않고 있다. CRT 제조업체들이 거의 사라지다시피 한 요즘, 이러한 TV를 조달하는데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놀은 ILM이 향후 평판형으로의 전환이 「불가피할」 테지만 아직까지도 이에 관해 확신을 갖지는 못한 상태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를 1차적으로 몇 대 구입해서 작업 시 정말 쓸 만한지 검토 중이다. 그런데 보정 기능, 다이내믹 레인지, 블랙 색상의 표현력 등 모든 것이 이전과 정확히 같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