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진적 진화 - 시간의 경제학

안윤호입력 :2005/12/07 18:11

안윤호(아마추어 커널해커)

디지털 카메라

눈으로 사진이나 그림을 보지 않으면 실감하지 않는 시대에게 카메라는 필수적인 아이템이었다. 모자이크처럼 배열된 사진을 보지 않으면 뉴스나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향은 미국에서 라이프(life) 지가 사진위주의 잡지를 만들면서 시작되었다. 당시의 어떤 평론가는 “이제 우리는 기계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라고 새로운 세태를 요약했다. 라이프는 훌륭한 사진과 잘 요약된 설명을 제공했지만 금방 식상해지고 말았다. 그 이유는 라이프가 좋은 볼거리를 제공했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매체들이 라이프를 따라 좋은 일러스트를 제공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었다.

성공적이었기 때문에 금방 시들해진 라이프는 자신의 성공에 의한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 사진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자연스러운 본능에 의존한다. 시각적인 존재감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로부터 몇 십년이 지난 요즘 이러한 현상은 더 심해지고 있다. 자신이 본 것을 세상에 알리는 것, 그리고 그것으로 무엇을 보여주거나 아예 그 자체로 하나의 중요한 표현수단이 되어버렸다. 자신을 표현하는 하나의 도구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과거에 필름 카메라 시절 사람들이 별로 많이 찍지도 않던 카메라에 집착하듯이 좀 더 컴퓨터와 밀착된 디지털 카메라에 열광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기계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일은 이제 당연한 것이 되었고 그 숫자는 마구 늘어나고 있다. 따라서 <흔해지는 것의 힘>이 도처에서 발견된다.

필자 역시 디지털 카메라에 홀리지 않을 수 없었다. 사놓고 잘 쓰지 않는 필름카메라처럼 언젠가부터 디지털 카메라를 모으기 시작했다. 액세서리도 마찬가지다. 디지털 카메라 역시 다른 작은 물건들처럼 빠지기 시작하면 시간과 관심을 잡아먹는 놀라운 능력이 있다. 다른 사람들처럼 한때는 디시인사이드(www.dcinside.com)도 들락거렸고 이베이에도 들락거렸다. 이런 관심은 기술이나 기계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당연한 것이다.

물건을 사기는 열심히 사는데 잘 처분하지는 못하다는 성격이라 금방 구형이 되는 디지털 카메라들은 서서히 쌓이기 시작했다. 잘 팔지 못하는 이유중의 하나는 아무리 구형이라도 특징이 강한 디지털 카메라들은 서로 너무나 다른 영상들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정말 처음부터 디지털 카메라의 다양성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모델들이 빠르게 출시되자 증상은 더 심해졌다. 기기변경과 새로운 모델에 대한 집착 역시 심해졌다. 메이커들이 문화와 기술이 혼합된 기계를 아주 잘 만들고 있기 때문에 집착에서 빠져나오기는 힘들었다.

예를 들면 분명히 니콘의 영상은 코닥이나 삼성과는 다르다. 후지는 분명히 캐논과 또 다르다. 파나소닉이나 소니 역시 아주 다른 존재들이다. 그리고 어떤 렌즈는 분명히 다른 영상을 만들어내며 화이트밸런스나 화소의 전처리는 분명히 회사나 모델마다 다르다. 광학장치와 전자장치 그리고 조작의 느낌 같은 것이 전부 달라서 모든 디카는 서로 다른 존재들이다. 이전 모델의 부품을 많이 채용했다고 해도 새로운 디카는 그 이전과 다르다.

그런 것들을 바라보는 주관적인 눈은 더 커다란 호기심을 불러일으켜 언제나 다른 디카의 영상을 즐기고 싶은 충동을 일으킨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 이러한 불필요한 충동을 칼같이 잘라버리지 못하는 필자와 같은 사람들은 많은 손해를 보게 된다. 시간과 용돈이 부족해지게 된다. 잘 버리지 못하는 가운데 디지털 카메라들은 필자의 서랍 속에서 자연증식하기 시작했다. 호기심과 시간과 자금이 허락하는 동안은 계속 자연 증식할 것이다(물론 어떤 카메라들은 비싸서 아직은 엄두를 못내는 상태이고 어떤 카메라들은 기회가 되지 않아 만져볼 기회조차 없었다.). 분명히 디카들은 회사나 모델들마다 서로 다른 기술 유전자를 갖고 태어난다.

때때로 관심이 있는 카메라가 나오면 steve's digicam (www.steves-digicams.com) 이나 imaging resource (www.imaging-resource.com) 같은 사이트들을 돌면서 열심히 눈동냥을 하고는 카메라의 계보와 렌즈들의 계보를 살펴보곤 했다. 물론 이들의 결론(conclusion)을 읽고 무릎을 치곤 한다. 평가는 예리하면서도 자연스럽다. 그러나 실제적인 평가는 사람들의 구매에서 일어난다. 리뷰 사이트의 기대와는 다른 경우도 많다. 그 와중에 세상이 너무나 빠르게 변하는 이유로 리뷰를 읽고 잠시 마음을 정하는 동안에 그 제품이 벌써 고물이 되기 시작한다. 어떤 모델을 쓰고 있는 동안에 최신의 기종이었던 다른 관심제품은 시리즈들이 더 나와 제품군으로 변하고 과거의 명기로 변하고 만다.

관심이 없던 제품은 어떤 제품군으로 바뀌었는가를 나중에야 알게 된다. 잠시 고민하는 사이에 이른바 얼리어댑터가 될 기회는 사라지고 만다. 호기심만이 시간을 건너뛰어 남는다. 어떤 사람들은 머릿속에 줄곧 남아있는 호기심이 집중을 방해하기 때문에 제품의 값이 떨어진다고 좋아할 일은 아니다. 기계가 값이 떨어지는 것만큼의 세월(시간)이 흐른 것이다. 세월은 필자도 모르는 사이에 빨리 흐르는 것이다.

시장

완전히 다른 유전자를 갖는 DSLR이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요즘은 한풀 꺾였지만 하이엔드나 중급이상의 디지털 카메라의 세계의 선택의 폭과 재미는 대단한 것이었다. 메이커들은 의도적이라고 보일 정도로 하이엔드의 가격을 높게 책정했다. 그래도 하이엔드가 필요하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은 구입을 멈추지 않았다. 하이엔드가 다양하긴 하지만 로우엔드인 스냅카메라들의 세계에서는 다양성은 더 대단하다. 팔리는 수량도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일반적인 카메라들의 경우 이전의 모델들을 잘 섞어서 사람들이 질리지 않도록 메이커들은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낸다.

기술개발에는 시간과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안전한 수순을 밟아 가급적이면 성공적으로 시장에 자리를 잡자는 의도이다. 비슷한 계열에서 렌즈의 종류는 거의 변하지 않은 채 디자인과 화소 수에서 변화를 주어 새로운 고객층을 만들려고 애를 쓴다. 리뷰어가 무엇이라고 평하던 실제로 고객들은 이러한 작전에 잘 동조하기 때문에 예상치 않던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가 나오고 만다. 리뷰어나 마니아들은 잘 예측할 수 없는 일이다. 매니아들이 좋아하는 카메라들은 언제나 따로 존재한다.

물가의 상승률을 고려할 때 예전의 필름 카메라와 비교하면 디지털 카메라의 가격은 상당히 그것도 미안할 정도로 싸다. 몇 년이 지나 구 모델이 되어 버리면 과거의 명기라고 불렸던 카메라들은 유혹을 참기 어려울 만큼 싸게 된다. 갖고 있는 더 고물인 모델을 팔아보아야 도움이 안 되기 때문에 또 한 대를 더 사고 마는 악순환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계속된다.

이제는 하나의 가전제품이라고 할 수 있는 디지털 카메라를 모으는 것이 바보스럽다고 볼 수도 있지만 매니아들의 관점은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제품에는 내재적인 가치가 있다. 우선 제품을 기획하고 팔아야하는 메이커의 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들이 코스트에 일부 반영된다. 한 단계를 넘는 새로운 제품을 내놓을 때마다 대단한 기술적 비약이 필요하다. 그것도 예상외로 까다로운 사용자들을 만족시키면서 비약을 해야 한다. 비약이 성공해도 다른 메이커들도 곧 따라오게 되므로 즐거운 시간도 잠시 뿐이다.

얼마가 지나면 비슷한 기능을 가진 제품들이 필사적인 개발과정을 마치고 시장에 출하된다. 회사들이 타사에 비해 엄청난 기술을 가진 것도 아니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기술의 바탕 위에서 먼저 성공적인 유전자 위에서 새로움을 추구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제품들은 커다란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조금씩 전진한다. 과거의 문제점이 있던 기능들은 몇 개의 제품이 출하되어도 계속 남아 소비자들을 괴롭힌다. 몇 개의 모델이 나와도 좀처럼 혁신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러한 공진화의 게임은 과거에 필름카메라나 다른 가전제품의 세계에서도 일어난 적이 있지만 이런 게임에서 메이커간의 순위나 경향은 잘 바뀌지 않는다. 한 회사가 독식을 하는 독점이나 과점의 상황이 아닌 한 치열하게 경쟁을 하면서도 내부의 기묘한 서열은 오랜 기간 유지되며 유전자들도 잘 바뀌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생태계를 닮은 이런 모습은 균형이 깨어질 때까지 지속된다. 좋은 것들이 너무나 흔해지고 그저 당연한 것으로 변했다.

슈나이더나 짜이스, 라이카 렌즈가 더 이상 희소품이 아니다. 단기간에 광학장치의 벽을 돌파하지 못하는 회사들이 자구책으로 과거의 명품들을 디지털에 맞게 라이선스하는 것이다. 과거의 고가 렌즈들도 흔해지다보니 정말 가전제품 수준의 가격에 팔리게 된다.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모든 수단이 동원된다. 게임이 이 정도까지 치열해질 줄은 처음에 디카를 만든 회사들은 예측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와중에 디지털에 집중하지 않은 회사들이 도산했다. 폴라로이드나 아그파같은 명문회사들이 파산한 것이다. 이들은 변화에 대처하지 않거나 그렇게 늦게 대응한 것도 아니다. 그저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사실 변화가 이렇게 빨리 , 근본적으로 올 줄은 아무도 몰랐다.

차이가 별로 없을 것 같은 디지털 카메라의 세계는 다양성과 이상함으로 가득 차있다. 제품들을 보면서 진화를 떠 올리게 하는 것들 가운데 디지털 카메라만한 예가 없을 것이다. 내부에서는 천천히 진화하는 것 같아도 밖에서 보았을 때는 상당한 속도로 진화한다. 다양성도 커진다. 요즘의 다카들은 어떻게 보면 너무 다양하고 과잉의 성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사용자들은 질리지 않고 계속 구매한다. 그래서 숫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다양함의 출발은 사람들의 다양함을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언제나 예상외의 수용자 층이 있었고 예측이 불가능한 사용자의 변화들이 있었다. 메이커는 제대로 예측할 수 없거나 대응할 수 없었다.

디지털 카메라의 시장이 팽창하는 가운데 필자가 느낀 것이 있다. 메이커들이 제품을 만드는 가운데 사람들에게 변화가 일어났다. 일부의 사람들은 분명히 사진에 대한 감각이 변했다. 기계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방법을 익힌 것이다. 사진에 대한 안목이 변하고 실제의 사진 실력이 월등하게 좋아졌다. 기계가 좋아진 탓도 있다(적어도 메이커는 사람들이 무슨 사진을 찍을지는 알고 있다. 초기의 무수한 옵션을 가진 기계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사람들이 변하다보니 기계도 변했다. 서로 변화해간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흔해지는 것의 힘이다.

적응하기 힘든 속도 - 시간의 심리학과 경제학

속도가 빨라지면 심리적 시차에 따른 적응은 어려워진다. 과거의 워크맨이나 핸드폰, MP3의 모델출시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났지만 같은 심리반응이 디지털 카메라에서도 일어난다. 일반적인 카메라를 쓰는 사람에게는 별로 없지만 중급이상의 카메라를 쓰는 경우는 시간이 지나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의 심리와 시간의 경제학이 충돌을 일으킨다. 과거의 습관이 현재를 방해한다.

필자에게 어떤 카메라를 건넨 사람은 2년 동안 500컷 정도를 찍었다. 필자는 이 모델을 사기 위해 멀리까지 차를 몰고 갔다. 인터넷을 통한 충동구매였다. 필자는 밝고 선명하다는 라이카의 렌즈를 써보고 싶었다. 필자는 이 계열의 카메라를 다른 사람이 쓰는 카메라를 보고 처음 알게 되었다. 호기심이 생겨서 2년 만에 값이 많이 떨어진 제품을 써보고 싶었다.

그 카메라의 주인은 아주 정갈한 사람으로 필름카메라의 세대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카메라는 당시 상당한 가격을 주고 구입한 후 아이들 몇 컷을 찍고 풍경을 찍고 장롱에 놓아두곤 했다고 한다. 구입당시에는 나름대로 빈티지 카메라에 속한 물건이라 함부로 다르기 싫어서 그랬을 것이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증상이 심한 것이다. 아직 비닐조차 띄어지지 않은 카메라를 보며 이 카메라를 파는 이유를 주인에게 물었다.

주인은 DSLR로 가기 위해 기종을 변경한다고 했다. 원래 가격부터의 카메라의 감가상각을 생각하면 스크래치 정도로 인한 감가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면서 주인은 디지털 카메라의 감가에 대해서 억울해 했다. 필자는 DSLR은 더 심할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해 주고 싶었지만 주인이 그것을 모를리도 없었다. 필자 역시 더 기다리면 가격이 더 떨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물건이라는 것은 유효한 효용가치가 시간대위에 정해져있다. 만약 쓰고 싶다면 빨리 사서 열심히 쓰는 수밖에는 없다(참고로 필자가 구입한 최고가 기종은 386 보다 이전의 XT 기종이었다. 그 물건을 쓰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었고 얼마가 지나자 XT 컴퓨터는 서로 그냥 기증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 주인의 필름 카메라는 얼마나 잘 쓰고 있는지 물어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많이 쓰는 것이 잘 쓰는 것의 기준은 아니겠지만 물건을 잘 활용하는 것이 문제다. 대부분의 필름 카메라들이 필름을 몇 통 찍지도 못하고 폐기되거나 선물로 주기도 한다. 분명히 그 물건의 가치는 애지중지하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찍고 거기서 어떤 효용가치를 뽑아내는 것에서 출발한다. 요즘은 덜해지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노트북들도 원래의 투자가치를 회수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고가품에 속하는 물건들을 싫어한다. 과거에 빠져보았던 오디오들도 그러했다. 고가의 오디오를 사는 사람들의 심리상태는 좀 묘한 데가 있었다. 오디오를 사놓고 정작 들을 시간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소중하기는 했지만 뼈아픈 경험이었다. 귀한 것과 가치 있는 것을 찾아다니는 것은 좋은 일이긴 하나 빠른 시간 속에서 물건의 가치는 빠르게 반감된다. 제조사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물건을 빠른 시간에 구형으로 만든다. 새로운 물건은 안 쓸 수가 없는 조건을 제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회는 경제적인 시스템을 돌리기 위해서 역시 필사적으로 물건과 유행을 퇴물로 만드는 경향이 있다. 새로운 것과 내재적인 가치 속에서 사람들은 번민한다. 그리고 워낙 많은 시간 도둑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하나에 집중하기 힘들다. 지금도 미디어들은 과거의 것들이 나쁜 것이라고 떠들어대지는 않지만 새로운 더 좋은 것이 감동적인 가격으로 나올 때 소비자는 번민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사람들의 무의식과 시간과 속도의 경제학이 충돌한다는 것이었다. 컴퓨터에 적용되던 무의식이 모든 기계로 옮아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속도가 빨라지고 세상이 다양해지자 시간의 압박이 중요한 문제로 떠오르고 물건의 구입이나 사용의 경험도 빠른 시간 내에 해치우지 않으면 안 된다. 사람들의 시간과 인생의 가치가 그만큼 더 귀해졌다. 시간은 저축도 되지 않으며 유효기간이 아예 없는 상품이다. 로마시대에는 모름지기 물건은 씀으로서 가치가 있는 법이다라는 격언이 있었다고 한다(오늘날에는 아마 여기다 기한내에라는 말을 붙이는 편이 적절할 것이다.). 분명한 사실이다. 물건의 가치는 씀으로서 오는데 쓸 시간의 압박을 느끼다보니 재미는 반감한다.

소유는 사용보다 하위의 개념이라고 볼 수 있는데 물건의 소유를 위해서 시간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욕심을 억제해야 하나 사실 그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많은 압박들은 여기에서 나온다. 사람들은 욕심을 스스로 만들고 스스로를 그 안에서 불태운다. 이런 일들은 모두 힌두교의 경전에 나오는 것처럼 <시간>이라는 장(場)에서 일어난다.

사람들이 만드는 시간의 압박에 대해서는 지면상 다음회로 미루어야 할 것 같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