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윤호의 Digital 評傳] 데스크톱 메타포, 바뀌어야 한다

안윤호입력 :2005/05/12 18:27

안윤호 (아마추어 커널 해커)

1978년 5월 25일 일리노이 주립대의 주차장에 소포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반송된 우편물로 보낸 사람은 노스웨스턴 대학의 기술 연구소의 교수로 적혀있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소포를 개봉하자 바로 폭발했다.

이후 유사한 사건들이 계속 일어났다. 78년 5월 27일부터 95년 4월까지 열여섯 차례에 걸친 우편물 폭탄으로 3명이 죽고 23명이 다쳤다. 범인은 사선 후에 ‘유나버머(unabomber ; university, airline, bomber의 합성어)’로 불리게 됐는데 우편폭탄이 주로 공항과 대학에 배달되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는 FBI의 필사적인 노력으로도 잡을 수가 없었으며 단서조차도 찾을 수 없었다.

유나버머는 1995년 워싱턴 포스트와 뉴욕 타임스에 편지를 보내 “강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사람을 죽이게 됐다”라고 밝히면서 신문에 선언문을 게재해 줄 경우 폭탄테러를 멈추겠다고 말했다. 선언문은 산업사회와 현대 문명을 비판하는 내용으로 8면에 걸쳐 “산업사회와 그 미래(Industrial Society and it’s Future)”라는 제목으로 워싱턴 포스트와 뉴욕 타임스에 일제히 게재됐다.

약속대로 테러는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글은 나중에 유나버머 선언문으로 알려지게 됐다.

범인의 요구조건과 선언문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 범인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그러나 유나버머가 누구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 후 몇 년이 지나 동생의 신고로 범인이 잡혔다. 범인은 테어도르 카진스키로 그가 하버드 출신의 수학자이며 캘리포니아 버클리의 교수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사건은 더 유명해졌다.

IT 분야에서 유나버머 희생자는 데이비드 겔런터였다. 겔런터의 인생은 테러를 당한 이후 부상과 재활기간을 거쳐 많이 바뀌었다.

유나버머의 목표가 된 이유는 유명한 연구자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썬 마이크로시스템즈의 빌 조이는 겔런터를 명석하고 비전의 제시에 능한 과학자로 평했다. 역설적으로 테러 뒤에는 희생양이라는 이유로 더 유명해졌다.

겔런터는 테러 이후에도 몇 권의 책을 집필했다. ‘dawing life’라는 제목으로 테러 이후의 삶을 적은 책과, 기술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적은 ‘기계의 아름다움(machine beauty)’이라는 책도 출판됐다. 비슷한 주제로 나중에 나온 ‘Muse in the machine’이라는 책도 있다.

테러 직전의 저서인 ‘미러 월드(Mirror World)’에서는 웹과 유사한 시스템을 제시하기도 했으며 나중에는 자바의 기초작업과 지니(JINI) 구축에도 참여했다. 인터넷이 점차 부상하기 시작할 무렵 겔런터의 연구팀은 병렬 시스템인 린다(LINDA)와 같은 선구적인 연구를 수행하기도 했다. 1993년의 테러로 모든 것이 바뀌기 전까지는.

95년 이후 겔런터는 다시 일선에 복귀해 연구와 집필활동을 했지만 과거와는 상황이 달랐다. 겔런터가 쉬는 동안 인터넷과 네트워크는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복귀후의 중요한 업적으로는 E. 프리맨과 함께 라이프스트림(lifestream)과 같은 개념을 발표한 것이 꼽히지만 개념의 중요성에 비해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다.

겔런터는 이 개념의 상업화를 시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라이프스트림은 애플리케이션이라기보다는 운영체제의 일부로, 그것도 접근 개념으로 보는 편이 나을 것 같으며 향후 개발될 운영체제에 자연스럽게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파일 시스템 설계에 있어 일부는 라이프스트림과 같은 은유적 사고의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비전을 제시한다는 것은 먼저 좋은 아이디어를 내고 잘 포장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전염시키는 작업이다. 아이디어는 새로운 것일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의 것들을 잘 조합한 것일 수도 있으며 그냥 시기적절한 생각일 수도 있다.

비전을 주장하면 사람들은 따라오기도 하고 비판하기도 하지만 일단 사람들에게 주장하지 않으면 비전에 맞는 성공적인 결과는 고사하고 비전의 주인조차도 될 수 없다. 새로운 비전일수록 더 많은 비평이 따를 수도 있고 사람들이 다 옳다고 생각하는 비전이라면 새롭지 않을 가능성도 높다.

IT 분야에서도 비전을 제시한다는 것은 반드시 즐거운 일은 아니다. 비전의 발표와 상업적인 성공이 비례하는 것도 아니었다.

겔런터는 ‘THE SECOND COMING - A MANIFESTO’와 같은 선언문을 써서 미래 컴퓨팅에 대한 자신의 비전을 피력했다. 선언문은 2000년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Frankfurter Allgemeine Zeitung)에 실렸고 ‘디제라티의 모임’이라고 불리던 Edge.org에도 게재됐다.

글 중에는 MS 전략의 오류를 비판하는 내용도 있었으며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는 했지만 글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도 많았다. MS는 겔런터의 선언문에 특별히 새로운 내용이 없으며 빌 게이츠 회장이 제시하고자 하는 미래의 비전을 영향력 있는 컴퓨터 과학자가 비슷하게 에둘러 말하고 있을 뿐이라고 대응했다. 영화 매트릭스에 나오는 글귀들처럼 아리송한 그의 이야기를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물론 많았다.

기계의 아름다움

‘기계의 아름다움’은 우리나라에서도 번역, 출판됐기 때문에 책을 읽어 볼 기회가 있었다. 필자는 저자가 말하는 이른바 은유(metaphor)의 힘에 대해 알고 싶었고 다른 주변 지식들도 더 알고 싶었다.

책의 내용이 딱딱하지 않기 때문에 날이 갈수록 복잡해지는 IT 기술의 현상에 대한 겔런터의 해석을 독자들도 틈틈이 시간을 내어 읽어봤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는 일반인들을 위해 쉽게 풀어쓴 마스터 마인드 시리즈(master mind series)의 일부다.

책의 전반을 지배하는 내용은 아름다움과 간결함에 대한 강조다. 이른바 ‘심미안’이라는 것으로 글을 읽다보면 인문영역의 ‘미학’을 떠올리게 된다. 군더더기를 만들지 않으며 새롭고 우아한 디자인에 대한 예찬으로 미래의 컴퓨팅 환경 역시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창조적인 힘을 주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사용환경만이 아니라 개발환경까지도-내용을 여러 가지 방향에서 적어보았다. 겔런터는 이런 현상이 IT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자동차를 예로 들었다.

그는 자동차의 역사를 살펴 볼 때 기술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좋은 결과를 낳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돈과 상업성, 그리고 기술적인 측면에만 집착할 때에도 사람들의 본성은 아름답고 간결한 것으로 향하는 예가 더 많았다는 것이다.

IT보다 먼저 거대 산업으로 진입한 자동차의 경우 엔진이나 차체 제작에는 최고의 엔지니어링이 동원되지만 사람들이 제품을 선택하는 이면에는 감성이나 미학이 적용된다고 그는 말했다.

겔런터는 요즘의 IT만큼이나 기술적인 측면이 강했던 초창기의 자동차 기술 발전사를 들어 사람들 마음속에는 강한 심미안적인 요소가 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실제로 자동차의 초기 역사에서 포드에 대한 GM의 승리 요인은 디자인이었다.

처음에 헨리 포드가 T형 포드의 양산으로 업계 최대의 지배자가 됐을 때 이를 따라잡은 GM의 전략은 디자인이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일단 자동차 제작 기술이 어느 정도 확립되자 성능이나 싼 가격보다는 디자인에 더 집착하게 됐으며 요즘도 마찬가지다. GM의 경영자였던 슬로언은 당시 유럽에서 혁신적인 것으로 평가받고 있던 이스파노 스위자(Hispano-Suiza)의 디자인에 영감을 받아 양산형 차에 적용했다.

그전까지는 투박한 디자인의 차들만이 거리를 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의 스위자는 역동적인 기계미에 아름다운 선과 면이 어울려 아름다움을 극대화한 차였다. 당연히 값이 비쌌으며 스위자의 디자인 유전자를 이식한 GM의 라살르(La Salle)도 마찬가지로 제작비가 올라갔다.

사람들은 가격이 올라가기 때문에 팔리지 않을 것이라던 헨리 포드의 예상을 뒤엎고 라살르를 구입하였다. 슬로언은 헨리 얼을 고용해 이스파노 스위자의 디자인을 대중차인 GM에 적용했다. 얼은 라실르 뿐만 아니라 후속 차종에서도 디자인 개혁을 계속해 나갔다.

당시에는 같은 회사에서조차 얼의 작업을 좋아하지 않았으며 헨리 얼의 디자인 연구소는 ‘미용실’이라고 불리기까지 했다. 생산담당이나 기계엔지니어들은 언제나 예측할 수 없는 이상한 디자인을 만드는 디자인 부서를 싫어했지만 차는 더 많이 팔렸다.

저자의 글솜씨는 이 일화에 GUI 운영체제인 매킨토시와 윈도우를 오버래핑시키며 PARC의 연구를 실용적인 GUI로 만들었던 애플의 작업을 T형 포드와 교차시켜 설명한다. 글의 결론은 좋은 디자인에는 사람들이 본질적으로 좋아하는 그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이다. PC가 한때 투박하고 거친 상자에 불과한 것에서 점차 세련된 상품으로 변하는 것을 반영하듯 디자인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따라가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한다.

기술의 세계에서 개념은 디자인으로 이어지고 설계(archietcture) 역시 바로 디자인이다. 건축이나 다른 산업 디자인은 심미적 아름다움으로 평가받곤 한다. 그러나 IT에서는 이처럼 중요한 요소를 간과한 것이 문제다.

디자인에서 자연스럽다는 것은 형태가 곧 기능이며 사용의 미가 즐거움이라는 것이다. 컴퓨터는 아직도 이런 요소에서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다. 초창기이기 때문인가? 물론 자동차나 더 오래된 미적 영역인 건축 역시 지금도 새로운 디자인에 대한 도전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발전의 끝은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GM은 슬로언의 정책과 얼의 디자인으로 반세기이상 최고의 지위를 누릴 수 있었다. 하드웨어, 기술이 너무나 흔해진 지금 아름다운 디자인과 즐거움을 주는 애플리케이션이나 운영체제는 불가능한 것인가? 여기에 저자는 간결함이라는 것은 과연 어떤 것인지 고민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디자인상의 문제가 데스크톱 인터페이스를 뜯어 고친다고 해서 나아지는 것이 아니란 점이다.

메타포의 세계

겔런터는 메타포(metaphor)가 컴퓨팅에서 매우 강력한 툴이라고 이야기했다. 세상을 복잡하게 생각하면 한이 없다. 이를테면 자바의 VM은 강력한 사고의 도구다. 자바의 관점에서 본다면 자바의 세상은 모두 VM이다. “~는 ~이다”라고 보는 은유법의 시각에서 보자면 지금의 컴퓨터 환경은 데스크톱의 메타포에 빠져있다.

겔런터의 관점에 따르면 여러 가지 추상화와 메타포가 발전의 원동력이었다. 사람들은 일단 지배적인 메타포에 쉽게 길들여진다는 것이다. 그는 애플의 초기 과장 광고와 지나친 낙관주의를 예를 들어 이야기했다.

저자에 따르면 과대광고와 지나친 낙관은 사실 필연적인 것이다. 무서운 경쟁과 비판, 그리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버전업에서 살아남으려면 이념적으로 강인해지는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그 후로 MS 윈도우도 이러한 데스크톱의 이념에 편승했으며 초기의 GUI(1968)로부터 시작하면 벌써 40년이 다 돼가는 세월동안 사람들의 머리 속을 지배했다.

데스크톱의 메타포는 이를테면 책상과도 같은 것이다. 폴더나 파일 이름 같은 것, 그리고 책상에서의 배치와 끄집어내는 방법을 연상하면 될 것이다.

겔런터는 사람들이 책상을 들고 다닐 수 없는 것처럼 파일과 데이터도 들고 다닐 수 없다는 것을 데스크톱의 문제로 지적했다. 더욱이 실제의 생활은 시간을 중심으로 이뤄지는데 데스크톱이나 파일 시스템은 이러한 일을 처리하기는 힘들다.

실제로는 특정한 시간에 집중적으로 일들이 이뤄지며 사람들의 정보처리에 있어서는 책상보다 어떤 시간에 어떤 자료를 보고 모았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위치와 이름보다는 자료의 시간적인 배치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자료들이 전자화되면서 기존 맥이나 윈도우의 폴더를 사용해 자료를 정리하는 일어 더 어려워지고 있다. 기존의 데스크톱 메타포가 패러다임 지연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자료가 많아지고 데스크톱을 오래 사용할수록 데이터의 정리와 연결이 더 어려워지는 기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아름다움과 간결함은 찾아보기가 힘들어진다. 운영체제의 개발자들이나 설계자들이 이런 일을 모르지는 않기 때문에 새로운 파일시스템에서는 시간여행의 개념을 적용하려고 하고 있다. 커맨드라인의 모델이 실생활에서는 복잡했기 때문에 데스크톱 모델이 나왔던 것처럼 시간적으로 연속이나 공간적으로는 불연속인 데이터의 정리와 찾기에 대한 새로운 메타포가 등장해야 한다.

라이프스트림이라고 부르는 새로운 시스템이 겔런터의 대학원생이었던 E. 프리맨에 의해 target=zdnk>발표된 적이 있었다. 이 논문은 전산학의 논문임에도 사람들이 자료를 후 활용하는 방법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다뤘다는 점이 특이했다.

자료를 찾는 방법과 기억하기, 보관하기 그리고 자신의 정보를 요약하기 등의 측면에서 일반적인 작업들과 공통적인 업무가 무엇인가를 분석했다. 결과는 현재의 데스크톱 시스템이 효율적이지 않다는 것이었다.

라이프스트림의 기본 아이디어는 데이터가 스트림(stream)처럼 사용자에게 흘러 들어간다는 가정에 기반하고 있다. 데이터는 바뀌기도 하며 시간의 축을 중심으로 쌓인다. 실제로 파일이 아닌 메일의 메시지나 스쳐지나간 웹의 화면, 그리고 다양한 자료들은 어디에 어떻게 보관해야 하는가를 정하는 일조차 쉽지 않다. 라이프스트림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하나의 대안이었다.

겔런터에 의하면 데스크톱이 아닌 스트림 구조를 택하는 편이 더 직관적이며 보편적인 인터페이스가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아무튼 이 소프트웨어는 실제로 구현돼 시연을 보인 적도 있었고 미러 월드(mirror world)라는 컴퓨터 회사에서 판매한 적도 있었다.

당시 제품을 써본 필자는 애매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WIN FS나 몇가지 대안적인 파일 시스템들에서도 파일의 위치나 이름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현대의 강력한 데스크톱 패러다임 아래서는 모호하게 보이는 부분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이프스트림의 초기 연구는 현재의 데스크톱 메타포가 많은 문제를 갖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겔런터는 책에서 앨런 케이의 다이나북이 노트북으로 실용화된 것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과 영감을 준 것처럼 라이프스트림이 미래의 자료 정리 시스템을 완성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중요한 소프트웨어로 남기를 바라고 있다고 밝혔다.

비전 제시자라는 이름이 붙은 사람은 이렇게 조금 몽상가적인 일을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 비전을 따라가 사업을 하며 제품을 만든다.

다음에는 라이프스트림과 관련된 작업에 대해서 먼저 비전을 제시했던 작업들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