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한석의 스마트 모델링] 일본 유학, 일본 IT 취업한 두 동생 이야기

류한석입력 :2004/09/16 18:41

류한석 (컬럼니스트)

일본은 필자와 여러 가지로 인연이 있는 나라다. 사회 생활을 처음 시작하면서부터 일본 기업과 관련이 있는 업무를 맡았었는데, 사회에 나와서 제일 처음 한 일이 일본 OMRON사의 임베디드 S/W를 컨버전하는 일이었고, 그 후 일본과 관련이 있는 몇몇 회사에서 기술 책임자로 일하기도 했다.그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전 컬럼인 ‘한국 S/W기업은 곤란합니다’ 에서 일본 S/W 산업의 철두철미함에 대해 다루기도 했는데, 오늘 얘기하고자 하는 주제는 기술적인 내용이 아니다. 또한 최근에 친일, 역사왜곡, 한류 등으로 일본과의 관계가 이슈가 되고 있는 상황인데, 그러한 일본과의 역사적, 정치적인 관계를 다루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타국에서 고생하는 어떤 청년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인데, 가끔은 자신의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다른 이의 삶을 통해 자신을 반추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는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현재 일본에는 두 명의 동생이 살고 있다. 한 명은 친동생이고, 한 명은 사촌 동생이다. 친동생의 경우를 먼저 말하자면, 그의 삶은 솔직히 현대 헝그리 정신의 표본이다. 그는 중학생 때 아버지 사업의 부도로 인한 갑작스런 빈곤과 지방으로의 이사 때문에, 바뀐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고 결국 고교 진학조차 실패할 정도로 스스로를 챙기지 못했다. 그 후 그는 지방의 실업계 야간 고교를 가게 되었으며, 부모의 경제적 지원이 전혀 없는 형편에서 독서실 총무로 일하며 재수를 했고 전문대를 졸업했다.그는 전문대 졸업 후 하이텔에서 PC 통신에 대한 계약직 상담원으로 일했지만, 당시에는 특별히 강한 삶의 의욕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필자 또한 봉천동의 퀴퀴한 월셋방에서 혼자 살며 병역특례로 회사를 다니고 있었고 삶의 의미와 방향성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기에,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동생에게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우리는 스스로가 가진 능력과 환경의 한계를 절감하며, 아등바등 살고 있었다.그러던 그가 4년 전 갑자기 동경으로 훌쩍 떠났다. 아사히(朝日)신문 장학생이라는 허울을 갖고 있었지만, 사실 그것은 일본 젊은이들이 외면하는 신문 배달 일을 하면서 약간의 급여와 숙소 그리고 남는 시간에 어학원을 다닐 수 있는 혜택을 얻는 것이었다. 그는 몸이 튼튼한 편은 아니었고, 그다지 부지런한 타입도 아니었으며 특히 잠이 몹시 많은 체질이었다. (솔직히 우리 형제 모두가 그런 것으로 보아서, 이것은 DNA 문제가 아닐까 한다) 그런 그가 매일 새벽 2시에 일어나서 4시간 동안 신문 배달 일을 한다는 것이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다. 왜 타국까지 가서 그런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일까?그러던 그는 동경에서 다시 대학을 가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며, 신문 배달 일을 하면서 입학을 위한 시험 공부를 시작했다. 시험을 본 첫 해에는 동경의 그 어떤 대학도 진학할 수 없을 정도로 형편없는 성적을 받았지만, 계속 분발하여 다음 해에는 게이오대 상학부에 입학하게 되었는데 성적이 아주 좋아서 전액 장학금 혜택을 받을 정도였다. 과거에는 고교 진학조차 실패했던 그가, 그렇게 분발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 답이 바로 이 글의 주제이다.유독 시험 운이 없고 변변한 성공 경험을 갖지 못한 동생으로서는 일생일대의 쾌거였다. 진학 후에도 그는 숙식과 생활비를 해결하기 위해, 직업으로서 신문 배달 일을 계속 했다. 하지만 신문 배달 일은 일본 경제 사정과 더불어 더욱 힘들어지게 되었다. 주말을 포함한 거의 한달 내내 새벽 2시부터 6시까지 신문 배달을 하고, 주말을 제외한 평일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빡빡한 일본 대학의 수업을 받고, 그리고 한달 중 거의 보름은 저녁 6시부터 밤 11시까지 수금을 해야 했다. 일본은 아직까지도 지로나 온라인입금 보다는 대부분 직접 대면하여 수금을 한다고 하는데, 사람들을 상대하다 보면 험악한 경우를 종종 겪는다고 한다.입학 시험에 혼신의 힘을 쏟았기 때문일까? 그의 건강은 더욱 안 좋아져 갔고, 급기야는 일부 과목에서 학점을 얻지 못하여 유급을 하게 되었으며, 그로 인해 전액 장학금도 박탈되어 버렸다. 동생은 또다시 삶의 바닥을 맛보게 되었다. 더욱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었지만, 그는 지금도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학교를 다니면서 새벽에는 신문 배달을 하고 저녁 때는 수금을 하고 있다. 그런 동생에게 마음의 응원뿐만 아니라 보다 실질적인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그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기보다는 스스로의 힘으로 삶을 변화시키기를 희망하고 있다. 어떤 이유로 헝그리 정신을 갖게 된 사람들 특유의 마음 자세이다. 그런 동생조차 경악하던 어떤 여자 유학생 얘기를 해보자.그녀는 애니메이션 학교를 다니면서, 하루에 두 군데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하루에 단 2시간만 잘 뿐만 아니라(이것이 가능한지는 필자도 의문이다), 주말에는 풀타임으로 또 다른 일을 한다고 한다. 잠까지 희생하며 분투해야 하는 이의 마음은 과연 어떠할 것인가? 결국 자수성가를 할 수 있을지 알 수는 없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면 그들은 화초같이 자란 사람이라면 절대 가질 수 없는 ‘독기(毒氣)’를 갖고 있으며 그것이 어떤 경우에도 삶을 패배하게 만들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그리고 동경에서 살고 있는 또 한 명의 동생은 이종 사촌인데, 그는 어렸을 때부터 착하고 유약한 성품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고교 시절 공부를 잘해서 명문 공대에 진학하였지만, 당시에는 뚜렷한 삶의 방향성을 갖고 있지 않았고 또한 친구를 좋아하는 성격으로 인해 공부를 몹시 등한시하는 바람에 학사경고를 받은 후 제적을 당하게 되었다. 여기까지는 결코 변명할 것이 없는 패자의 모습일 뿐이며, 필자 또한 옹호하고자 하는 점이 없다.그 후 그는 현역으로 군대를 다녀온 다음 겨우 재입학을 했고 대학을 졸업하게 되었다. 그때까지도 그는 가난한 집안 형편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독기’를 갖고 있지는 않았다. 졸업 후 그는 1년 정도 벤처 기업을 다니다 퇴사를 하게 되었고, 사회가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을 깨닫고는 스스로의 경쟁력을 돌아보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체계적으로 IT 공부를 하겠다며, 일본 IT 취업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무역협회 IT 교육센터에서 자바와 일본어를 1년간 공부하는 길을 선택했다.당시 그는 집안 형편 때문에 마땅한 주거 공간조차 없었는데, 학원에서 대충 숙식하며 IT와 일본어를 열심히 공부했다. 그가 그렇게 열심히 분투하는 모습은 생전 처음 보았다. 결국 그런 노력은 삶의 변화를 가져왔다. 교육센터 수료 후 동경에 있는 작은 IT 회사로 취업이 되어 떠나게 되었는데, 물론 시작부터 평탄치는 않았다. 급여를 못 받는 일도 있었고 몇 번의 사건을 거쳐 두어 번 회사를 옮기게 되었다. 그리고 현재는 작은 S/W 회사의 파견 직으로 일본의 유명 대기업에 파견되어 한국인이라고는 자신밖에 없는 사무실에서 자바, 델파이, C를 한꺼번에 프로그래밍해야 하는 어려운 업무를 맡아서 하고 있다.그 외에도 필자가 알고 있는 인간분투(人間奮鬪)의 수많은 사연들이 있지만, 지면 관계상 더 소개하지는 않겠다.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그러한 헝그리 정신을 무조건 옹호하거나 필히 그래야만 한다는 것은 아니다. 일단 그것은 한편으로 무척이나 피곤한 일이 아닌가? 가진 것이라고는 단지 ‘몸뚱아리’ 하나 밖에 없는 사람으로서, 가난의 고리를 끊고 안정적인 주거공간이라도 마련하여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조차 쉬운 세상이 아니라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다.인생에 있어 정답은 없으며, 그렇게 분투하며 피곤하게 살다가 끝내 피곤하게 생을 마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삶을 바꾸기 위하여 선택할 수 있는 (스스로가 통제 가능한) 거의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다. 그들은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 마음 속으로부터 분발한 것이다.필자의 두 동생을 예로 들어 언급하였지만, 우리 주변에는 사실 그러한 사람들이 많다. 동경에 있는 두 동생을 비롯하여, 우리가 영혼으로 느끼되 그 이름을 알 수 없는 수많은 이들의 분투하는 삶에 대해 깊은 존경심을 느낀다. 그들은 ‘열정(熱情, passion)’을 갖고 있으며, 그것은 다른 물질적인 것들과는 달리 누구에게도 뺏기지 않는 영혼의 자산이다. 삶의 바닥에서도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을 가질만한 멋진 덕목인 것이다.행복이란 자신의 영혼을 훌륭하다고 느끼는 데 있다. 그러므로 고난 속에서도 행복은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의 삶은 가련한 것이 아니라, 행복하고 또한 소중한 것이다. 그들이 행복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진심으로 건투를 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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