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은 한국과 뗄레야 뗄 수 없는 이름이다. 삼성은 정부조직과 비견되는 한국 경제의 버팀목이자,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시민단체의 비판에서 빠지지 않는 단골손님이기도 하다.
허름한 상점의 전자제품 진열대를 장식했던 한국기업이 차세대 가전 브랜드로 떠오르고 있다. 삼성은 지난 4년간 부품생산 전문능력과 강력한 브랜딩, 마케팅, 디자인을 결합해 업계 선두업체로 발돋움했다. 많은 애널리스트들은 급속하게 통합되고 있는 컴퓨팅과 전자산업에서 삼성이 세계 1위 업체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실제로 이러한 전망은 통계로 나타나고 있다. 업계 추산에 따르면, 삼성은 TV와 비디오 레코더, 평면 스크린, 컴퓨터 모니터, PC 메모리 분야는 물론 디지털 카메라에 폭넓게 사용되는 플래시 메모리의 분야에서도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다.
특히 지난 2000년 휴대폰 분야에서 세계 시장 점유율 6위를 기록했던 삼성은 지난해 10.8% 시장 점유율로 3위에 올라섰다. 삼성은 올해 1분기에만 2000만대의 휴대폰을 판매해, 올해 말에는 15.1%로 모토롤라를 제치고 2위 업체로 도약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의 글로벌 마케팅 담당 선임 부사장 에릭 김은 5년전만 해도 삼성은 일용품 수준의 제품을 판매하는 기업에 불과했다고 말한다. 그는 “5년전 삼성은 북미에서 저가 TV를 판매하는데 치중했지만,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결과 현재는 이런 상태에서 벗어났다”며 “휴대폰 분야에서도 우리는 이제 노키아나 모토롤라와 동급으로 언급되고 있다”고 말했다. 에릭 김은 삼성의 급성장에 큰 공헌을 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삼성의 급속한 성장은 한국이 지난 1997년의 IMF 사태를 불과 수년만에 극복했음을 직접적으로 시사한다. 당시 한국은 아시아 시장의 침체로 금융대란에 직면했다. 삼성도 직원의 34%를 감원해 전세계 직원수가 8만 3800명에서 5만 5000명으로 줄어들었으며, 100개 사업부를 매각하거나 해체 혹은 구조조정했다.
삼성은 이를 만회하기 위해서는 고급시장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애널리스트들과 미국 최고경영자(CEO)들의 조언을 받아들였다. 기존의 값싼 가전제품 생산라인을 뜯어내고, 새로운 기능과 감각적인 디자인을 결합한 고가 휴대폰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 전략은 크게 성공을 거뒀다. 삼성 휴대폰의 판매량은 모토롤라보다 적었지만, 매출액에서는 2003년 110억달러로 모토롤라의 109억달러를 앞질렀다.
삼성은 올해에도 80인치 플라즈마 TV 세트와, 전기배선을 내장하고 스크린 크기를 줄인 52인치 프로젝션 TV, 포터블 위성 TV 겸용 휴대폰과 200만화소 카메라폰 등 고가 명품 제품을 출시할 예정이다. 정부 정책에 따라 추진중인 ‘디지털 홈’ 기술은 이보다 더 야심적인 프로젝트다. 삼성 종합기술원 윤덕용 부사장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정부는 2007년까지 1000만가구에 홈 네트워크를 설치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삼성은 기업규모나 영향력 면에서 정부기관과 비교되곤 한다. 한국 경제의 성장엔진인 삼성그룹은 한국내 경기부양을 위해 올해 1만 7000명의 직원을 신규채용하고 597억달러를 투자한다고 밝혔다. 前 삼성전자 사장 진대제 씨는 현재 정보통신부 장관으로 재임중이다. 반면 삼성은 정부정책에 대한 비판의 단골손님이기도 하다. 일부 정치인과 시민단체는 삼성을 비롯한 재벌들의 세금납부액이 터무니없이 낮다며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인비저니어링그룹의 리차드 도허티 사장은 “삼성을 과소평가하는 이는 없다”며 “삼성은 일본에 버금가는 기술 수준에 중국과 흡사한 임금 경쟁력을 갖췄다”라고 말했다.
삼성의 성공은 기술적 성과 이외에도 공격적 마케팅에 힘입은 바가 크다. 런던에 위치한 광고ㆍ브랜딩 조사업체 인터브랜드에 따르면, 삼성의 브랜드 가치는 2002년 83억달러에서 2003년에는 31% 성장한 108억달러를 기록했다. 브랜드 인지도 면에서는 아직 소니나 델, HP에 미치지 못하지만 그 차이를 급격히 좁히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의 애널리스트 밴 베이커는 삼성이 스스로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삼성이 북미 시장에서 부딪히는 가장 큰 어려움인 ‘브랜드’를 극복하기 시작했다”며 “브랜드는 가전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자산”이라고 말했다.
삼성은 지난해 총매출 541억달러에 순익 50억달러를 기록했으며, 올해도 매출과 순익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기존 가전 브랜드의 제왕 소니는 3월에 끝난 2003 회계년도에서 순익이 23%나 감소한 8억 5100만달러를 기록했다. 소니는 수천명을 정리해고해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
삼성의 에릭 김은 “가전시장에서 브랜드 상품과 그렇지 않은 상품의 가격은 최대 50~60%까지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이것은 그가 스펜서트라스크소프트웨어, 던&브래드스트리트앤드로터스 등 다양한 회사에서 마케팅 전문가로 근무하면서 끊임없이 강조했던 사실이다. 실제로 삼성이 에릭 김을 영입한 것도 바로 삼성의 브랜드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서였다.
많은 삼성 직원이 이런 변화에 위협을 느낀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에릭 김은 이들이 생각한 최악의 시나리오를 실행에 옮겼다.
한국인이지만 미국에서 자라고 교육받은 그는 출근 첫날 삼성의 여러 사업부 부사장들과 임원들에게 수백페이지짜리 보고서와 오랜 시간 발표를 했다.
발표가 끝나고 회의에 참석했던 사람들이 무언의 불쾌감을 표시하자, 삼성전자 윤종용 CEO는 참석자들에게 의심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경고를 날렸다. 그는 “여러분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다”며 “그러나 그를 건드리면 당신들은 죽는다(touch him, and you're dead)”라고 말했다.
이후 삼성은 서구 스타일의 마케팅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펼치기 시작했다. ‘FCB 모델’(소비자의 구매결정 과정을 관여/저관여, 이성/감성 두가지 차원으로 분석하는 광고 전략)에 따라 모든 광고를 조율해, 2000년 한해동안 영화 ‘매트릭스 리로디드’와 올림픽 스폰서 그리고 인쇄 매체와 온라인 매체에 대한 대대적인 마케팅 캠페인을 단행했다.
삼성전자 북미 전략 마케팅 담당 부사장 피터 위드폴드는 삼성이 지난해 11월 한달동안 미국에서만 330개 웹사이트에 10억개의 광고를 게재했다고 말했다. 올 가을에는 삼성의 첨단제품을 전시하는 부티크를 뉴욕에서 오픈한다.
그러나 삼성의 수석 브랜드 매니저인 캐서린 콜은 삼성에게 있어 브랜딩은 아직 초기 단계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 1999년까지만 해도 삼성은 브랜드를 전략적 자산으로 보지 않았다”며 “그때까지는 저가 가전 제조업체 정도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고 말했다.
삼성이 고가 가전시장으로 전환하면서 협력사와의 관계도 복잡해 졌다. 삼성은 완제품과 부품 시장 모두에 진출해 있기 때문에 시장의 거의 모든 업체들이 경쟁자이자 동시에 협력업체다.
예를 들어 삼성은 인텔의 새로운 서울리서치센터의 이강석 이사와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 3개월전 삼성에서 전직한 이이사는 디지털 홈 분야에서 양사가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반면 삼성은 지난해 플래시 메모리 분야에서 인텔을 추월했으며, 노키아와 HP의 휴대기기용 반도체 계약에서도 인텔을 따돌리고 입찰에 성공했다.
반대로 인텔은 프로젝션 TV용 칩 시장 진출을 노리고 있다. 그러나 이 부문에서 텍사스인스트루먼트와 협력하고 있는 삼성은 인텔의 움직임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 눈치다. 삼성의 디지털 미디어 비즈니스 담당 부사장 데이비드 스틸은 “기술적으로나 사업적으로 인텔의 LCOS(liquid crystal on silicon technology)는 아직 실현되지 않은 것 같다”라고 말했다.
소니와 삼성의 LCD 공장도 삼성-인텔 협력관계와 유사하다. 이 공장의 실리콘 코팅 유리 생산 능력은 월 6만여장으로, 46인치 TV를 최대 36만대까지 만들 수 있는 양이다. 그러나 소니는 이 시장에서 아직도 시장 지배를 위해 삼성과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MS 역시 마찬가지다. MS와 삼성은 협력관계를 맺고 있지만, 한국정부는 윈도우의 경쟁제품인 리눅스를 컴퓨터 운영체제로 사용하도록 장려하고 있으며, 삼성도 또다른 오픈소스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삼성의 또다른 특징은 ‘내부경영(in-house operation)’이다. 대부분의 하드웨어 업체와는 달리 삼성은 많은 완제품과 부품을 계열사들이 자체 생산하고 있다. 경영진들은 대량 생산이 가능하다면 계열사 간의 내부생산(In-house manufacturing)이 아웃소싱보다 더 저렴하다고 주장했다.
삼성은 전세계 4대륙에 18개 공장과 9개 연구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아시아 소재 공장들의 대부분은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직원을 위해 기숙사를 갖추고 있다. 삼성 모바일 세일즈 및 마케팅 부사장 아이크 청은 한국 동부에 있는 구미 산업단지의 삼성공장에서는 매 7초마다 휴대폰이 한대씩 생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삼성이 내부생산을 이용해 그룹내 다른 계열사에 가격 할인 혜택을 주고 있다고 말한다. 삼성측은 이를 부인했지만, 많은 업계 관계자들은 정부의 계속된 개혁에도 불구하고 재벌 계열사 간의 내부거래 관행이 아직 사라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삼성은 계열사 간의 긴밀한 협력관계를 이용해 기술개발과 디자인 성과를 다양한 사업부와 제품군에 걸쳐 공유하고 있다. 이러한 협력관계는 매년 뛰어난 제품을 하나씩 개발한다는 삼성의 목표에 필수적이다.
예를 들면 내부 창을 열지 않고도 외부창을 통해 발신자를 확인할 수 있는 휴대폰도 이런 과정을 통해 개발됐다. 제품 중앙에 모니터가 달린 MP3 플레이어나 보이스 레코더 등 새로운 컨버전스 제품들도 이런 과정을 통해 일정한 주기로 발표되고 있다.
또한 삼성은 제품 생산과 유통 부문 모두를 갖고 있기 때문에 기업 활동에 큰 도움을 얻고 있다. 자체 브랜드로 판매하는 것도 가능하고, 이것이 여의치 않으면 부품 공급업체 역할로 전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삼성은 델을 비롯해 몇몇 업체에 평면 패널 모니터를 정기적으로 납품하는 핵심 공급업체이자, 북미시장에서는 직접 PC 판매에 실패한 이후 자체 생산한 경량 무선 노트북에 다른 미국업체 브랜드를 붙여 판매하고 있다.
인텔의 모바일 플랫폼 그룹 부사장 아난드 찬드라세커는 “LG와 삼성은 아주 혁신적인 디자인을 한다”고 말했다. 양사는 아시아 7대 제조업체에 속하는데, 이들이 전세계 노트북 생산의 80%를 담당하고 있다.
삼성이 이처럼 디자인을 강조하기 시작한 것은,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디자이너 180명을 채용하면서 시작됐다. 현재 삼성에는 런던, 서울, 샌프란시스코 등에서 총 441명의 디자이너가 일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계열사 CEO들은 정기적으로 디자인 회의에 참석하기도 한다. 이런 노력 끝에 삼성은 여러가지 디자인 상을 수상했다. 삼성의 이상균 수석 디자이너는 “가전제품도 일종의 가구”라며 “거실과 잘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이 풀어야 할 또다른 과제는 고객이 선호하는 브랜드가 되는 것이다. 에릭 김은 구체적인 내용까지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삼성이 새로운 브랜드 캠페인을 준비하고 있음을 시인했다.
한편 삼성은 이 새로운 브랜드 전략과 함께 무선 홈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현재까지 한국내에 약 6000가구의 ‘디지털 홈’이 구축됐으며, 미국, 스페인, 캐나다, 호주 등에서도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애널리스트들은 디지털 홈의 운명이 호환성과 사용 용이성을 얼마나 개선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다른 신기술과 마찬가지로 초기 기술을 이끌고 있는 삼성을 추월하기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인비져니어링그룹의 도허티는 “가전시장에 과거 우주기술 경쟁과 같은 것이 존재한다면, 그 선두에는 삼성이 서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