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필자의 친정이라고 할 수 있는 대기업 계열의 광고 대행사를 방문한 적이 있다. 이 회사는 이미 상장된 회사였지만, 지난 해 외국 홀딩스 회사가 대주주의 지분을 사들이기로 결정함에 따라 사실상 외국 회사의 경영 체제와 명칭을 얻게 됐다. 친정 회사에 이렇듯 큰 변화도 있고, 필자 역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는 관계로 신년 인사차 방문했다.그와중에 만났던 사람들로부터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은 영어 이름 하나 지어달라는 것이었다. 이제 외국 경영진들의 방문도 잦아지고 이메일 왕래가 빈번해 질테니 아무래도 영어 이름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자신의 이름이 외국 경영진들의 기억에 잘 남도록 하기 위해서랄까.영어 이름에 대한 필요성은 IT 기업에 근무한 사람이라면, 아마도 절실히 느꼈을 법한 부분이다. IT관련 해외 전시회에 가서 명함을 주고 받고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회사 이름과 성명을 이야기하고 설명해야 하는데, 한글 이름은 상당히 발음하기 어렵다.특히 외국 기업에 근무하거나 외국 기업과 교류가 빈번한 독자라면, 외국인들은 호칭에서 우리처럼 직급과 직책을 붙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외국인들의 경우 처음 만난 자리나 공식 석상에서는 미스터, 미스, 미시즈 등을 쓰기도 하지만, 이런 자리에서도 자기 이름을 불러달라고 하거나 그런 호칭에 어색한 듯 빙그레 웃기도 한다.말하기도 어렵고 기억하기도 어려운 한국 이름은 대부분 받침 때문에 그러하다. 다행히 받침이 없거나 발음이 부드러우면 그대로 써도 되겠지만, 한국 이름의 대부분은 된소리의 받침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창명이 필요하게 된다. 본인의 존재를 명확히 기억하게 하고 서로간의 대화를 쉽게 이끌기 위해서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또한 김, 이, 박의 흔한 성을 갖고 있다면 외국인이 성만 부를 것인데, 그런 경우 누구를 부르는 것인지 헷갈려 하기도 한다. 그래서 IT기업에 종사하는 사람과 소위 굴뚝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과의 가장 큰 차이가 바로 명함 뒷면 영어 부문에서 알 수 있다.글로벌 경쟁사회에 할아버지 혹은 부모가 정성 들여 지어서 불러준 이름을 쓸 수 없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혹자는 한국 이름 자체가 한국 문화를 대표하는 것이므로 바꾸는 것만이 글로벌 사회에 진출하는 최상책은 아니라고 반박하기도 한다. 또 단순히 편의상 이름을 바꾸는 것은 조상을 대하기가 민망스럽고 또한 문화의 주체성을 상실하는 행위라고 하기도 한다.동유럽, 혹은 러시아 출신의 미국인들 역시 부모에게서 받은 길고 복잡하고 발음하기 어려운 이름을 갖고 있다. 언젠가 계약서에 서명할 때 상당히 놀란 적이 있다. 실제 부르던 이름하고 다른 이름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이유인즉 현재 부르는 이름은 부모에게서 받은 이름을 줄여서 애칭으로 부르는 이름이라고 한다.자본 시장이 완전히 개방돼 있고 기업의 인수합병(M&A)이 활발한 요즘, 언제든 독자들의 회사가 외국인 경영진으로 바뀔 가능성이 있다. 대기업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국내 10대 광고 대행사 중 외국 회사 이름과 지분이 없는 광고 대행사는 고작 1∼2개에 지나지 않는다. 국제화, 세계화를 10년전부터 외쳤지만 실질적인 세계화는 IT 발전과 함께 최근에 시작되고 있다. 개인의 체감할 수 있을 만큼 가까이 온 것이다.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중에 영어 이름이 없는 사람이라면, 주위의 IT인 혹은 외국인 회사에 근무하는 사람에게 영어 이름을 추천받아 봄이 어떨까. 급하게 지은 이름 역시 애정을 갖기 힘들어 금방 바꾸고 싶어진다. 미리 미리 준비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아니면 이 기회에 영어 이름 작명소를 웹비즈니스로 만들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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