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홍식의 섹스 어필] 조기 유학이 애들을 망친다?

전문가 칼럼입력 :2002/05/03 00:00

신홍식

요즘 애들이 있는 집이라면 조기 유학 문제는 아마도 남의 일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을 입시 지옥으로 내모는 교육 환경에서 부모들이 해외로 엑소더스를 시키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더구나 경제적으로 빠듯한 집까지도 국내의 교육비가 워낙 높아 해외 유학을 고려해 보는 것이 저간의 사정이 아닌가 싶다. 그렇지만 사회적인 분위기 때문에 내놓고 얘기를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고 우리의 학생들이 해외에 가서 유학하는 것을 문제시 하는 것 또한 문제다. 미국 등지의 학교에서 살아남는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처럼 입학만 하면 대충 졸업하게 되는 인정많은 시스템과는 아주 다르다. 하긴 우리나라에선 입시를 치르느라 고생할만큼 했으니 졸업은 보상 차원에서라도 으레 하는 것으로 학생들과 부모들은 잠재적으로 이해하고 있다.그러나 미국의 경우는 사정이 정반대다. 미국은 일단 대학에 입학하면 고생문이 열린다고 보면 된다. 그때부터 사회의 첫 단계가 시작되는 것이다. 생존(Survive)이란 단어는 미국 학교에 입학하면 오리엔테이션의 빼놓을 수 없는 단골 메뉴이다. 미국의 학교는 입학하면 저절로 졸업하는 시스템이 아니다. 학기가 시작되자마자 숙제(Homework)로 줄곧 밤을 지샌다. 요령이 통하지 않으니 게으름을 피우다가는 낭패를 보게 된다. 미국은 학교 성적이 나쁘면 장학금은 물론 졸업 후 취직도 여의치 않아 생존 경쟁에서 여지없이 낙오하게 된다.세계 최고의 공과대학인 MIT 박사과정 학생들도 스트레스로 학교를 중도에 떠나는 일이 다반사이다. 그들이 머리가 나빠서가 절대 아니라 끝없이 지속되는 연구에 지쳐 손을 들고 나가서 직업을 얻는 것을 종종 본다. 유학 시절 MIT 학생들이 만들어 놓은 "MIT에서 살아남는 법(How to Survive at MIT)"이란 족보 아닌 족보가 계속 업데이트돼 전해지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이런 시스템에서 살아 남는 사람이 성공하는 것이 공정한 사회로 받아들여지고, 또한 이런 사회에 적응하다보면 삶의 문제에 좀더 성숙한 자세를 갖게 되는 것이 미국의 학생들이다.필자는 형과 동생 가정의 두 남매 조카들이 각각 한국과 미국에서 똑같은 나이에 자라는 것을 지켜봤다. 한국에서 자라는 조카들은 어릴 때부터 과외 공부로 밤낮을 시달리는 반면, 미국의 조카들은 초중고 내내 공부 이외에 다양한 스포츠나 과외 활동을 하며 건강하게 자라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대학을 갈 때 그들의 장래가 자못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중·고교를 눈코뜰새 없이 보냈던 한국의 조카들은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을 했고, 또 여유있게 중고교를 다녔던 미국의 조카들은 미 서부의 명문 UC 버클리 대학에 입학하는 것을 봤다. 미국의 조카들은 대학에 진학한 이후 공부도 열심히 하면서, 일도 열심히 하는 성숙한 모습을 보았다.물론 해외의 학교가 경쟁력이 더 있다고 해서 모든 국민이 애들을 해외로 유학을 보낼 수는 없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하루바삐 우리의 학교를 더욱 경쟁력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교육의 질이 좋아지려면 교육 시스템이 해외의 좋은 대학 수준으로 바뀌어야 한다. 학교가 좋은 시스템과 시설을 갖춰야 학생들이 학교에 애착을 갖게 된다. 또한 선생님들이 교육 환경을 자율적으로 개선해 나갈 수 있도록 정부와 부모들이 따뜻한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격려해 주어야 한다. 최근 학부모들이 앞장서서 대안을 찾기 위한 갖가지 실험을 하고 있는 것도 경쟁력을 높이는 데 필요한 시도라고 본다.조기 유학을 나쁘다고만 하기보다는 오히려 여러 가지 형편으로 인해 나갈 수 있는 사람은 나갈 것을 권하고 싶다. 조기 유학이 사회에 나쁘게 투영되는 것은 어린 나이의 유학생들이 해외 적응을 못하고 나쁜 길로 빠진다든지, 부잣집 자제들이 해외에 나가 공부는 뒷전이고 돈 쓰기에 바쁘다든지, 또는 병역 기피를 위한 해외 도피성 유학으로 연결된다든지 하는 부작용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조기 유학은 생각만큼 과정이 만만하거나 반드시 성공을 보장하는 길이 아니다. 오히려 국내 교육보다도 더욱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열심히 하는 유학생들도 엄청난 좌절과 실패를 맛보는 것이 유학 생활이다. 세계를 무대로 도전하고 교육받은 사람들이 많아야 우리의 국제 경쟁력이 올라간다. 그리고 우리의 학교가 무엇이 부족한지를 알아서 잘 고쳐나갈 수 있다. 또한 나중에 조국에 돌아와서 우리 교육 환경을 어떻게 업그레이드할 지를 알아서 고쳐나갈 것이다. 또한 해외에 우리 동포들이 살게 되면, 그들이 사는 무대가 우리 한민족의 터전이 되면서 우리 삶의 무대가 그만큼 세계로 넓어지는 것이다.이제 각국은 인구 문제로 이민을 제한하는 추세로 가고 있다. 과거 이민자들의 신천지였던 미국도 이민 정책을 점점 까다롭게 하고 있다. 한반도에도 이제 7000만에 가까운 인구가 살고 있다. 서울 등 대도시에는 사람이 지긋지긋할 정도로 너무 많아 사람이 징그럽게까지도 보인다. 물론 해외에 가서 몇일 밤만 지내보면 금방 사람이 그리워져 사람 대접도 제대로 못받는 사람 지옥이 그래도 사람없는 천국보다는 좋다고들 한다. 그러나 이민이 더 까다로워지기 전에 갈 수 있는 사람은 나가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해외 한민족의 숫자는 600만 정도로 알려져 있다. 남북한 인구의 약 10분의 1에 가까운 우리 동포가 한반도 바깥에 살고 있는 것이다. 물론 모두가 그렇지는 못하지만 많은 교포들이 해외에서 소수 민족으로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자랑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우리는 또한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영어를 하면 우리 말이 다치지 않을까 일부에서 염려도 하지만 오히려 다른 말을 배우면서 우리 말의 가치를 더욱 알게 되고 더욱 가꾸는 마음이 생긴다. 해외에 사는 중국인과 유태인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외국에 산다고 해서 외국 사람이 돼버리는 것은 아니다. 우리 한국인도 이들에 못지 않은 우수한 민족이라고 자부한다. 외국을 알면 알수록 한국인은 더욱 한국 사람다워지고 한민족의 뿌리가 세계에 더욱 더 크게 퍼질 수 있다. 이제 한민족도 세계로 나가 넓게 살아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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