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최대의 미디어 제국「비방디의 탄생과 운명」

일반입력 :2001/11/16 00:00

enable 11월호

최근 1∼2년 사이 세계 미디어 시장이 빠른 속도로 재편되고 있다. 2000년 1월 타임워너· AOL 합병이나 바이어컴·CBS 합병은 세계 미디어 시장이 거대 기업들의 격전지가 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합병 뒤에는 일정한 공식이 있다.

즉, 인수합병의 목적을 ‘서비스 다양화와 공급매체 확보, 통신망 확보’라고 밝힌다는 것이다. 이는 커뮤니케이션 산업과 연관 산업의 통합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고, 미디어 산업이 네트워크을 기반으로 재편되고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미디어 산업의 재편 과정에서 눈에 띄는 대표 기업 중 하나가 바로 비방디 유니버설(www.vivendi.com)이다. 비방디 유니버설은 프랑스의 전통적인 건설, 통신 기업이다. 그러나 인수합병 절차를 거치면서 미디어 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다.

표1. 세계 미디어 그룹 Top 5의 관계회사

비방디와 시그램, 1+1=∞

비방디 유니버설은 프랑스 비방디와 캐나다 시스램의 합병회사이다. 비방디는 1853년 프랑스 황제의 칙령에 의해 CGE라는 이름으로 리옹 지방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기업이었다. 주로 프랑스 내에서만 기업활동을 하던 CGE는 1980년에 들어서면서 사업 규모를 확장, 프랑스 인근 유럽 지역의 상수도, 쓰레기 처리 및 에너지와 교통사업에 진출하면서 회사 규모를 키워갔다.

이러한 CGE가 미디어와 인연을 맺기 시작한 것은 1983년 프랑스 최초의 유료 TV인 카날플위 설립에 참여하면서 부터다. 그 이후 1990년대 중반 건설과 같은 비주력 사업을 매각하고, 1998년 회사 이름을 비방디로 바꾸었다.

시그램은 한국인에게는 시바스 리갈로 잘 알려진 캐다나 위스키 회사다. 시그램이 위스키 회사에서 탈피해 미디어 회사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이후 미디어 사업에 대한 투자를 집중하기 시작하면서 부터다. 1995년 일본 미쯔시타가 소유하고 있었던 MCA를 인수했으며, 1998년 세계 최대 음반회사중 하나인 폴리그램을 인수, 시그램은 위스키 회사가 아닌 미디어 기업으로 탈바꿈하였다.

비방디와 시그램이 합병한 데에는 특별한 목적이 있다. 최근 컴펙과 휴랫펙커드의 합병이나 AOL과 타임워너의 합병 또한 나름대로 뚜렷한 목적이 있을 것이다. 보통 합병의 목적은 첫째, 서비스 다양화와 공급매체의 확보를 위해서, 둘째, 사업다각화나 시장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서, 셋째, 신규 시장 진출 및 비즈니스 채널과 경로를 다각화하기 위해서 등이다.

비방디와 시그램이 합병한 목적은 서비스를 다양화하고, 공급매체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미디어 산업에서 비방디는 통신, 인터넷 백본, 유료 TV와 같은 네트워크를 갖고 있다. 그렇지만 네트워크를 통해 고객에게 제공해줄 컨텐트가 부족했다.

반면 시그램은 비방디와는 정 반대 처지였다. 폴리그램, 유니버셜을 통해 풍부한 컨텐트를 확보하고 있었으나, 네트워크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양사는 합병을 통해 서로에게 없거나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었다.

비방디는 웃고, 시그램은 울고

한편 비방디와 시그램은 합병을 통해 미디어 산업의 거대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되었다. 1999년 마켓 트래킹 인터네셔널이 세계 10대 미디어 그룹을 발표할 때만해도, 비방디나 시그램 모두 순위에서 상당히 뒤쳐져 있었다. 비방디는 10위 안에 들지도 못했으며, 시그램은 매출 순위 10위로 간신히 턱걸이했다. 하지만 두 회사는 합병 이후 시가총액 1000억 달러, 매출 550억으로, AOL과 타임워너, 비아컴과 CBS에 비견할 만한 거대 미디어 그룹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이렇게 기업의 부피가 커지면 광고주와의 교섭 권환이 확대된다.

실제로 대형 광고주들은 최근 불경기의 암운이 깃들면서 긴축정책을 펼치고 있다. 긴축정책은 곧 바로 광고비의 축소로 반영되고 이는 미디어 업체의 수익 감소로 직결된다. 미디어 업체간 합병은 이 시기 최고의 강점으로 부각될 수 있다. 케이블, 공중파 TV, 인터넷, 잡지의 광고 공간을 하나의 패키지로 묶어 다매체 광고로 판매 수익을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바이어컴의 경우 피델리티를 포함, 약 20개 광고주에게 라디오 방송 및 케이블 체널 등을 망라한 ‘바이어컴-플러스’ 패키지를 판매하고 있으며 AOL과 비방디-유니버설사도 이와 유사한 전략을 통해 수익을 올리고 있다.

물론 위와 같이 비방디와 시그램의 인수합병이 여러 가지 긍정적인 효과를 주었지만 시그램 입장에서는 기업을 지키기 위한 ‘필요악’이라고 할 만큼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

뉴욕 타임즈는 ‘시그램 제국에 해가 지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시그램의 문제점을 통열히 비판했다. 이 신문은 시그램 공동 회장이었던 에드커 브론프먼 2세가 할리우드 영화·음악산업에 빠져 사업판단을 잘 하지 못해 시그램이 몰락하게 된 배경을 다음과 같이 꼬집었다.

에드커 브론프먼 2세는 시그램을 미디어 그룹으로 탈바꿈시키기 위해 다각적으로 노력했다.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듀퐁 주식을 매각했으며 유니버셜 스튜디오, 폴리그램을 인수하는 등 여러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그의 노력은 때마침 불어온 인터넷의 무단복제 바람(냅스터)과 AOL·타임워너 합병으로 등장한 거대 미디어 기업과 경쟁 상대가 되지 못했고 그의 숙부인 찰스 브론프먼(4억달러가 넘는 시그램의 지분을 팔아 부동산에 투자)과 손발이 맞지 않아 큰 곤경에 처하게 되었다.

결국 이러한 합병은 시그램 입장에서는 억울한 상황이었다. 물론 시가 총액이라는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합병회사의 주식을 비방디가 59%, 시그램이 29%, 카날플뤼가 12%를 소유하게 된 것만 봐도 그렇다. 결국 이 M&A는 여러 시너지 효과를 위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시그램의 곤란한 상황과 비방디의 미디어 그룹화 전략이 맞아 떨어지면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표2. 합병의 주요한 목적과 예

전방위형 미디어 사업 체제 구축

비방디·시그램·카날플뤼의 결합으로 탄생한 비방디 유니버설의 사업 분야를 크게 둘로 나뉜다. 첫째는 기업 매출의 50.5%를 맡고 있는 환경 사업이며, 둘째는 매출의 43.6%를 차지하고 있는 미디어(혹은 커뮤니케이션) 사업(음악·통신·TV·출판·인터넷 등의 5가지 분야)이다. 하지만 최근 비방디 유니버셜은 이 두 가지 사업 중 미디어 사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환경 사업은 캐시 카우(cash cow)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같다. 비방디 유니버설의 사업 부문별 매출액과 세후 이익, 해외 비중을 보면 비방디의 사업 집중도를 잘 알 수 있을 것이다(표 3 참조).

표3. 비방디 유니버셜의 사업부분멸 매출액 등 (단위: 10억 유로달러)

출처 : 비방디 유니버셜(www.vivendi.com) 2000년 Annual Report

음악 비방디 유니버설 음악 사업의 핵심은 유니버설 음악 그룹이다. 2000년 총 매출이 66.1억 유로, 총 EBITDA는 11.57억 유로로, 비방디 유니버설 전체 매출액의 12.6%를 차지한다. 유니버설 뮤직은 오늘날 세계적으로 63개국에 진출, 클래식에서 팝, 재즈까지 총 80만 개의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시장 점유율도 높은 편인데, 북미, 남미, 유럽 등에서 시장 점유율 1위를, 글로벌 시장에서도 시장점유율 22.5%로 1위를 기록하고 있다.0

출판 비방디 유니버설의 출판 사업은 게임, 교육, 건강 등 각 분야에서 좋은 성과를 보이고 있다. 게임 분야의 경우, PC게임에서 세계 2위의 점유율을, 온라인 게임에서는 세계 1위의 점유율 보이고 있다. 이는 블리자드소프트의 디아블로2나 스타크래프트가 온라인 게임팬을 열광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게임 분야에서 강점을 보이고 있는 것은 블리자드소프트, 시아라, 유니버셜스트디오를 기반으로 한 노하우 때문이다. 지금도 창의적인 게임을 여러 개 개발중이다.

교육 분야 또한 비방디 유니버설의 강점이다. PC 기반의 교육용 CD 타이틀은 유럽에서 선도적인 위치에 있다. 비방디 유니버설은 학교 교과서, 성인교재 등 다양한 참고서를 만들고, Larousse, Nathan과 같은 세계적 유명 브랜드로 서적을 출판하기도 한다.

TV & 영화 비방디 유니버셜의 TV 사업은 Canal+ 그룹에 의해, 그리고 영화 사업은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의해 선도되고 있다. Canal+ 그룹은 유럽의 TV 제작자로서 2000년 12월 말 기준 1,530만 명의 시청자를 확보하고 있는 유료 TV 제작자로서 최근 디지털 서비스에도 초점을 맞추고 있다. Canal+ 그룹은 530만 명의 디지털 서비스 가입자를 보유하고 있는데 현재 디지털 TV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이러한 경험을 기반으로 세계 각 국에 디지털 TV 소프트웨어를 판매하는 등 앞서 나가고 있다.

유니버설 스튜디오는 영화 매니아라면 다 아는 영화제작사로 역사가 90년이나 된다. 현재 유니버설 스튜디오는 영화 제작은 물론, TV·가정용 오락기를 생산, 배포하고 있으며 유니버설 스튜디오라는 테마파크를 통해 디즈니월드와 함께 관광산업을 주도하고 있다. 유니버설 스튜디오는 현재 약 9,000개에 달하는 주요작품과 3만 시간 분량의 TV프로그램을 소유한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영화 및 TV 프로그램 보유사이다.

통신 통신 사업 부분에서 비방디 유니버설은 유선, 무선 통신 모두를 소유하고 있다. Cegtel과 SFR이 그것으로, 비방디 텔레콤 인터내셔널이라는 이름으로 유럽 및 중동, 아프리카 등에 서비스하고 있다.

Cegtel은 기존의 유선 전화나 무선 전화 서비스를 중심으로 제공되는데, 가입자수는 2000년 12월 현재 1,010만 명으로 1999년 말보다 약 38% 늘어난 수치이다. Cegtel은 프랑스의 선도적인 통신업체로 프랑스 통신 시장 점유율이 15% 이상이다. SFR는 2000년에 접어들면서 이동식 네트워크 및 GPRS 네트워크 투자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SFR은 2000년 6월 WAP을 이용한 무선 인터넷 개발에 착수했으며 비자비 포털과 제휴해 그 가능성을 시험하고 있는 상황이다

미디어 사업, 아직은 불투명한 미래

AOL은 타임워너를 합병해 세계 초일류 미디어 그룹이 되었으며, 비방디는 경영난에 허덕이는 시그램을 인수해 둘째라면 서러울 세계 미디어 그룹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왜 세계 거대 기업은 끝임없이 미디어 사업에 관심을 갖고, 욕심을 내는 것일까.

미디어는 21세기의 최고 권력을 상징한다. 미디어는 싫든 좋든 우리 생활 깊숙히 파고 들어와 있다. 직장인이나 주부, 그 누구도 TV, 인터넷과 같은 미디어에서 벗어나서 살 수 없다. 동시대의 문화나 정치, 경제 모든 것이, 미디어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심지어 대중의 의식도 미디어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이제 미디어를 갖고 있다는 것은 보이지 않게 세계를 움직일 수 있다는 말과 같다.

좀 비약적일 수도 있지만 미디어는 정치력이나 군사력에 비할 수 있는 막강한 힘을 갖고 있다. 글로벌 미디어를 소유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세계의 모든 것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을 가졌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사람들이 자신의 일생 중에서 TV를 시청하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만약 평균 하루 한시간만 시청한다고 하더라도 약 3년을 TV 시청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 여기에 라디오, 비디오, 영화, 인터넷 등의 다양한 미디어까지 포함한다면 우리의 일생의 약 15% 이상(하루 4시간 미디어를 접한다고 가정했을 때)이 미디어를 접하는 데 사용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누구나 다 좋아하고 열광하는 미디어는 가장 안정적인 사업이며 매력적인 사업일 것이다.

최근 비방디 유니버설의 선전을 보면 다음과 같이 나타낼 수 있다. ‘포춘 글로벌 500 순위 91위(디즈니의 경우 174위), 세계 음악시장 점유율 21.5%(2000년 초, LA 타임즈 보도자료), 총 매출액 525억 유로 달러, 미디어 매트릭스 조사 순 방문자수 글로벌 순위 11위.’

하지만 이러한 수식어로서 비방디 유니버설의 미래를 예측하기는 힘들다. 미디어 시장 경재이 그만큼 치열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비방디 유니버설의 미디어 기업으로의 전환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도 꽤 많다.

비방디의 자회사인 Canal+까지도 최고경영자인 장-마리 메시에를 풍자꺼리로 만들 정도였다. 또한 시그램은 미디어 기업으로의 전환에 실패한 기업이며, 비방디 또한 시그램과 합병하기 이전에 이미 많은 부채와 낮은 주가로 어려움을 겪어왔다. 특히 소니와 마쓰시타 등 할리우드에 진출한 외국 기업이 참담한 실패를 겪은 선례는 비방디 유니버설의 앞날에 대한 불안감을 가중시키고 있다.

하지만 긍정적인 시각도 있다. 비방디는 이미 10년 이상 통신, 유료 TV 사업을 해오면서 미디어 사업에 대한 경험을 축적해왔다. 전통적인 주류업체였던 시그램과는 근본적으로 상황이 다르다. 영화 사업도 미국 현지인이 운영하도록 하고 있으며, 오락 문화 산업의 80%에 가까운 지분이 음악 사업에 집중돼있어 소니와 마스시다와는 상황이 다르다.

현재 비방디 유니버설은 완성형 기업이 아니다. 미디어 기업의 기치를 걸고 합병 회사가 된지 아직 2년도 되지 않았다. 그래서 비방디 유니버설의 비전에 부정적으로, 긍정적으로 단정하기는 매우 힘들다. 지금 해야 될 일은, 왜 비방디 유니버설이 미디어 그룹으로 변모를 꽤했는지 그것을 벤치마킹하여, 그들의 장·단점, 위협과 기회를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