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와 디지털이 엮어내는」출판 관습 혁신

일반입력 :2001/07/20 00:00

enable 7월호

책의 정의는 '인간의 사상이나 감정을 글자나 그림으로 기록하여 꿰어 맨 것'이다. 책은 이처럼 글자는 물론 그림까지도 포함하기 때문에 문자발명 이전까지 역사가 거슬러 올라간다. 종이에 발명되기 전 이집트인들은 파피루스에 그들의 문자를 남겼고 중국인들에 대나무에 글을 적어 책을 엮었다. 하지만 1436년 서양에 구텐베르크의 인쇄기가 소개되면서 지금까지 약 550여 년간 출판물은 종이의 형태를 고수해왔다. 하지만 책 역시 초기 디지털 혁명이 바람 속에서 한차례 전환기를 맞는다. 바로 전자책(이북(e-Book)의 등장. 디지털로 책을 변환해 온라인으로 판매하면 이동성과 기능성을 갖춘 리더(Reader)기를 사용해 읽는 방식이다. 물론 지금 전자책은 초기에 비해 관심권 밖으로 밀려났다. 하지만 포레스터리서치에 따르면 2005년 전세계 전자책 관련 매출은 무려 75억 달러에 이를 전망. 열기는 식었을지 몰라도 가능성만은 여전히 열려있는 것이다. 미국과 일본, 화두는 저작권과 모바일 컨텐트 지금 미국에서는 전자책과 관련한 저작권 문제가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오프라인 출판사인 랜덤하우스(Random House)와 인터넷 출판사인 로제타북스(RosettaBooks)간의 법정 투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 로제타북스가 온라인을 통해 판매하는 출판물에 대해 랜덤하우스측이 저작권 침해를 내세우면 제소를 건 것이다. 아직까지 전자책의 저작권이 어디로 귀속될지는 예측하기 힘들다. 랜덤하우스는 작가와 모든 출판물에 대한 포괄적인 계약을 체결했다고 주장하는 반면 로제타북스는 작가와 온라인 출판물에 대해 별도의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오프라인 출판사의 '전자책도 책'이라는 견해와 온라인 출판사의 '전자책은 별개의 책'이라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재판의 결과는 향후 인터넷 출판산업의 판도가 결정지어질 전망. 한편 인터넷으로 출판 틈새시장을 공략한 업체에도 눈길이 모아지고 있다. 바로 ABE북스(www.abebooks.com). 이 회사는 2,500만 권의 중고서적, 희귀서적, 절판도서 목록을 웹을 통해 제공한다. 하지만 직접 판매에 나서지는 않는다. 판매수수료가 아닌 책 목록을 사이트에 올려주는 대가로 도·소매업자들에게 받는 월정액을 수익으로 삼는다. 중고도서나 희귀서적에 대한 정보가 워낙 제각각인데다 이를 DB로 갖고 있는 오프라인 업체가 없기 때문에 ABE북스는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유지하고 있다. 출판 강국인 일본의 서적과 CD의 전자상거래 시장규모가 70억 엔 정도에 불과하다는 집계도 눈길을 끈다. 일본 전체 전자상거래 시장의 0.3%에 그치고 있는 상황. 이처럼 인터넷 서적판매가 일본에서 고전하고 있는 이유중 하나는 바로 '정가 판매제' 때문이다. 가격 할인을 커다란 경쟁력으로 삼고 있는 한국과 미국의 인터넷 서점들과 달리 일본에서는 재판제도(再販制度)로 인해 가격할인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 하지만 시장전망이 반드시 어둡지만은 않다.세계적인 독서량을 자랑하는 일본의 출판 시장규모는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수준. 발행잡지 종류만도 1만 여종을 넘고 잡지 수에서도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다. 소년점프 같은 밀리언셀러를 비롯해 출판되는 만화책만도 연간 21억 권에 이르는 상황이다. 일본 출판업계는 이러한 상황을 디지털 환경에서 이용하기 위해 모바일 기기를 통한 컨텐트 판매 전략을 세우고 있다. 컨텐트 유료화가 쉽지 않은 유선 인터넷에 비해 무선 인터넷은 과금체제도 쉽고 전화요금을 내는 것처럼 컨텐트 사용대금도 지불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특히 앞으로 전국에 광대역 통신망이 전국에 깔리게 되면 TV방송물, 잡지, 신문 등 출판문화를 바탕으로 한 오프라인 컨텐트의 온라인화가 급속히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국내 출판사, 인터넷 공략에 나서다서적은 다른 상품들과 마찬가지로 생산→도매→소매→·소비자의 단계를 거친다. 2000년 국내 신간 발행수는 총 3만 4,961종에 1억 1,294만 부. 책 한 종당 평균 판매부수는 3,230부이며 평균 단가는 1만 원 수준이다. 만화가 9,329종으로 전체의 26.6%를 차지하고 있으며 문학이 4,826종(13.8%), 사회과학 4,335종(12.3%) 순으로 그 뒤를 잇고 있는 상황. 그렇다면 이들 서적 생산을 담당하는 국내 출판사의 현실은 어떨까. 아마도 '난립'이라는 한 단어로 압축할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 규모 또한 영세한 상황. 하지만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밀리언셀러로 잭팟을 터트려보겠다는 이들이 시장에 참여하면서 생성과 소멸의 끝없는 반복이 이루어지고 있다. 도매분야 역시 인프라 부족, 전근대적인 영업방식, 수익구조 열악 등의 문제점을 안고 있는 상황. 한편 소매분야는 소형서점의 수익구조 악화, 대형서점의 약진, 그리고 할인마트 매장의 확대 등의 키워드로 요악된다. 특히 인터넷서점의 출현으로 인해 소비자들이 가격할인에 큰 관심을 갖게 되면서 할인마트가 새로운 유통경로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이중 최근 출판사들의 움직임이 눈에 띤다. 컴퓨터 관련서적으로 유명한 영진출판사 사이트(Youngjin.com)와 경제·경영분야에 강점을 지닌 더난출판사(Thenanbiz.com) 등이 오프라인 이미지를 기반으로 온라인 사업에 나선 것. 이중 더난출판사는 증권, 부동산, 금융 등 재테크에 관심이 높은 20대 후반에서 30대 사이의 비즈니스맨을 핵심 타겟으로 삼은 실용 전문 포탈을 추구하고 있다. 출판사들이 사이트 구축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유는 온·오프라인의 시너지 효과를 얻기 위해서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활용해 직접 오프라인 독자들을 만남으로써 충성고객과 기획·마케팅 자료를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원고 분량이 너무 적거나 타겟이 매우 제한적이어서 출판하기 힘든 경우에도 온라인은 유용한 수단이 되어준다. 전자책으로 출판해 적지만 수익을 낼 수도 있고 반응이 좋으면 미니북 형태로 오프라인에서 출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저자와 독자 그리고 출판사가 함께 어우러지는 마당을 통해 책에 대한 다양한 의견도 함께 공유할 수 있다. 출판사측은 또한 장기적으로 사용자의 저자화, 즉 프로슈머(Prosumer) 양성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일수록 책을 쓸 확률도 높다는 것. 즉 회원 중에서 그러한 자질을 갖춘 사람을 골라 함께 책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또한 전문가 집단 형성을 통한 인터넷 강의와 세미나 사업 전개에도 욕심을 내고 있다. 이렇게 된다면 인터넷을 통한 진정한 의미의 수익창출도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뿐만이 아니다. 오프라인 출판사의 경우에는 인터넷서점과의 제휴를 통해 고객과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형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미 자체 오프라인 클럽을 보유하고 있는 출판사도 있지만 회원수가 미미한 수준. 따라서 고객의 동향을 지속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인터넷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인터넷 서점을 통해 출판사들은 고객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한 예로 예스24(www.yes24.com)는 출판사에게 별도의 ID를 제공한다. 이 ID로 사이트에 접속하면 자사의 책을 구매한 고객의 인구통계학적 데이터를 파악할 수 있는 것. 주요 구매층을 파악할 수 있어 마케팅 타겟을 수정할 수도 있다. 또한 책의 성공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여성독자 수를 파악해 마케팅 비용을 증대하거나 축소시킬 수도 있다. 출판업, 온라인과 오프라인 경계의 소멸오프라인 출판사들이 온라인 사업에 관심을 기울이듯 인터넷 서점들 역시 오프라인을 적극 이용하고 있다. 베텔스만 북클럽 코리아(www.thebookclub.co.kr)이 대표적인 예. 온라인 사업이 깊게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회원들간의 커뮤니티 형성이 중요하고 판단해 서울 서초동에 65평 규모의 회원 전용 공간인 '클럽센터'를 개설했다. 이곳에서 회원들은 200여 권의 서적과 CD, 비디오테이프, 유아용 놀이기구 등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으며 무료로 인터넷도 사용할 수 있다. 또한 유아 영어교실, 어린이 인형극 등 다양한 문화행사도 개최해 충성 고객을 확보할 전략이다. 예스24(www.yes24.com)는 100% 출자로 설립한 출판 자회사를 통해 전자책으로 인기를 얻은 작품들을 종이책으로 출판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인터넷은 또한 새로운 출판문화의 시험대로도 사용되고 있다. 이비커뮤니케이션의 '책 펀드' 역시 그 중 하나. 인터넷 초·중급자용 학습서인 '만지면 커지는 인터넷’을 출간하면서 자사의 홈페이지(bookfund.pcbee.co.kr)에 ‘pcBee 북펀드 제1호’를 공모한 것. 계좌당 1만 원씩 모두 3,000계좌를 모집해 하루만에 모든 계좌가 마감되는 실적을 거두었다. 북코스모스(www.bookcosmos.com)의 요약본 서적도 신선한 시도로 평가받고 있다. 베스트셀러 등 각종 서적의 내용을 20분의 1로 압축시킨 전자책. 인터넷서점 등에서 제공하는 서평과는 달리 원문을 충실히 살리고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요약본 한 권의 가격은 500원. 구입하기 전에 내용을 미리 훑어보고 싶어하는 사람들과 독서할 시간이 없는 바쁜 직장인들에게 큰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최신 경제·경영 이론에 관심이 많은 직장인과 대학원생들의 이용도가 높으며 도서 요약본을 단체로 구입해 회사 그룹웨어에 올리는 대기업들도 늘어나고 있다. 한편 요약본은 마케팅적으로도 상당한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음악에 대한 관심도는 높였지만 음반 판매에는 타격을 입혔던 MP3와는 달리 서적 요약본은 자세한 스토리와 다음 이야기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시켜 서적 판매를 늘릴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저자와 출판사는 종이책과 전자책은 물론 요약본에 대한 저작권 계약서까지도 작성해야할 지도 모를 일이다. 이상에서 엿볼 수 있듯 전자책과 종이책은 점점 공존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비디오의 등장이 모든 영화관들을 긴장시켰지만 결국에는 전체 영화시장을 확대시킨 것처럼 전자책의 출현 역시 고루한 출판계를 한단계 업그레이드시키며 멀티미디어의 홍수로 위태로와진 출판 시장에 힘을 실어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