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증권업의 신화, E*TRADE:2회 (E*TRADE를 만든 사람들)

일반입력 :2000/03/13 00:00

LG 투자증권 강기태 기자

1983년 7월 11일, 미국 미시간주의 한 의사가 컴퓨터를 사용해 세계최초로 주식거래에 성공함으로써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다. 이 주문은 당시 TRADE?PLUS 시스템에 의해 미국 증권거래소에 전달됐다. TRADE?PLUS 시스템은 1982년 물리학자이자, 발명가였던 윌리엄 포터(현 E*TRADE의 명예회장)에 의해 개발된 것으로, 10여 개의 특허기술로 제작된 것이었다. 포터는 평소 주식투자를 즐겼으며, 항상 왜 비싼 수수료를 브로커에게 지불해야 하는가에 대해 의문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E*TRADE의 초기 캐치프레이즈였던 ‘Someday, we’ll all invest this way’라는 문구처럼 언젠가는 온라인을 통한 주식거래가 미래의 주식시장을 지배할 것으로 예견했다. 92년 E*TRADE라는 이름으로 AOL과 컴퓨서브(CompuServe)를 통해 온라인 증권업을 처음시작했을 때만 해도, 미국 증권업계는 오직 메릴린치와 골드만 삭스 등 소수의 대형증권사가 시장을 이끌어 가고 있었다. 이들은 이미 충성도가 높은 고객과 상당한 시장점유율을 확보하고 있었고, 온라인 증권사라는 신종업체의 등장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E*TRADE는 코차코스 회장이 영입되기 전까지 주로 챨스 슈왑, 퀵&레일리(Quick & Reilly) 등의 온라인 브로커를 상대로 온라인 시황과 거래 기술을 제공하는 서비스 제공 업체였다. 그러나 96년부터 코차코스의 지휘아래 웹기반의 주식거래 시스템을 본격적으로 개발, 제공하기 시작했으며 공격적으로 고객 유치전략을 수립해 온라인 증권거래, 요즘 흔히 말하는 인터넷 트레이딩의 붐을 조성하기에 이르렀다. 온라인 증권거래 규모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자, 급기야 올해 초 굳건하게 오프라인만 지키고 있던 메릴린치가 전통적인 영업방식에서 벗어나, 온라인 증권업 진출을 선언할 정도로 온라인 증권거래를 둘러싼 시장경쟁이 본격화됐다. 현재 8백여 명의 직원으로 구성된 E*TRADE를 지금과 같은 거대 온라인 금융기업으로 이끈 장본인으로 크리스토스 코차코스 회장을 빼놓을 순 없을 것이다. 코차코스는 세계적인 운송회사인 페더럴 익스프레스(Federal Express)에서 19년 간 근무하면서 마케팅, 인사관리 등 다양한 분야의 직책을 수행했다. 이후 마케팅 조사기관으로 유명한 AC 닐슨의 회장을 거쳐, 96년 E*TRADE의 회장으로 영입됐다. 월남전에 공수부대 팀리더로 참전, 훈장까지 수여받은 코차코스는 온라인 증권업체를 이끌어가는 사람의 이미지와 걸맞지 않는 좀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그는 젊은 시절 예술의 길을 택해 윌리엄 패터슨 칼리지(정치학)를 마치고 연극연기 분야의 석사과정을 밟기 위해 LA로 갔다.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안내 가이드를 하면서 예술가로서의 꿈을 키웠으나, 이내 예술가의 가난을 극복할 만큼 자신이 열정적이지 않음을 깨닫고 인생의 방향을 과감하게 수정했다. 페더럴 익스프레스에서 말단 택배업무를 시작한 그는 19년 후, 결국 이 회사의 부회장 자리에까지 올랐다. 페퍼다인 대학교에서 MBA 학위를 받은 그는 현재 런던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만학도이기도 하며, 폭스 엔터테인먼트(Fox Entertainment), 크리티컬 패스(Critical Path), 디지털 아일랜드(Digital Island) 등의 경영에도 관여할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그의 차분한 인상뒤에 숨겨진 치밀하고 저돌적인 경영방식은 올 상반기, 야후 등 많은 경쟁 업체를 물리치고 불과 15분만의 담판으로 결정된 미국 최대 온라인 은행인 텔레뱅크(Telebanc)와의 합병 사례에서 잘 나타난다. 이러한 그의 추진력과 판단력이 지금의 E*TRADE를 최고의 온라인 증권사로 자리매김하게 만든 하나의 원동력이였음은 부인할 수 없다. @

LG 투자증권 강기태 기자abc@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