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고를 정리하면서 낡은 칩들을 정리하게 되었다. 별명이 '고물상'인 필자는 아득한 옛날부터의 부속들을 아직도 지니고(?) 있다. 낡은 플라스틱 박스에서 6502라고 쓰여진 칩을 발견했는데, 그 박스에는 6502 말고도 8085와 6800 CPU가 나왔다. 이들은 모두 당시 첨단의 마이크로프로세서였고 수많은 밤을 지새게 한 8비트 CPU들이었다. 앞으로 50년만 더 지나면 이 플라스틱 잡동사니들은 아주 골동품이 될지도 모르지만 그 중에서 6502는 필자로 하여금 특별한 애착을 갖게 한다. 이 CPU는 틀림없이 애플 II 컴퓨터에서 나왔을 것이다. 6502애플 II는 컴퓨터 역사상 최초로 대량 판매된 퍼스널 컴퓨터이다. 마치 자동차의 역사에서 T형 포드와 같다고나 할까? 그 중심에는 6502 CPU가 있다. 6502는 수천 개의 트랜지스터로 만들어진 작은 CPU로 클럭은 1MHz 정도의 64KB 어드레스 공간을 갖고 있었다. 독자들 중 많은 사람이 애플 II 컴퓨터를 직접 본 적조차 없을 것이지만. 애플 컴퓨터가 순수하고 가난한 해커들의 손에서 탄생해 거대한 기업이 되기까지 베스트셀러인 애플 II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국내에서도 이 컴퓨터의 클론 업체로 출발한 작은 컴퓨터 회사가 대규모 컴퓨터 회사가 됐다. 아름답고 하얀 플라스틱 케이스의 애플 II를 보면 필자는 지금도 흥분하곤 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사용하지도 않는 애플 II의 보드를 조심스럽게 모셔 놓고 있다. 이러한 일에 특별한 이유는 없다. 적어도 곰곰이 생각해봐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지만. 8비트 CPU를 갖고 보드를 만들고 기계를 개발하던 사람들은 이제 업계에 얼마 남아있지 않다. 대부분 벤처회사의 대표가 되어 있거나 아니면 직종을 바꾸고 은퇴했기 때문이다. 필자처럼 아마추어로 계속 남아 있는 사람은 예외에 속한다. 물론 몇 명의 골수 개발자들은 아직도 건재하다. 그후 16비트인 IBM PC XT로 시작한 그룹들은 이제 중견의 간부가 되어 사원들을 지도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다 여기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당시는 담배 연기와 납땜 연기가 섞이고 만능 기판에 직접 배선을 하면서도 행복해 했던 시절이었다. 애플 II 한 대를 사려고 몇 개월을 아르바이트하는 학생들이 상당수 있었고 컴퓨터 한 대가 망가지면 연구실의 실험이 중단되기도 했다. 그리고 당시 학원 밖에서는 온통 독재타도 데모를 하고 있었다. 학생들과 화염병, 그리고 "군사독재 물러가라"의 구호들. 이윽고 최루탄 냄새가 나면 눈이 따갑고 눈물이 났었다. 386대부분의 초기 개발자들은 386 세대가 많았다. 지금 생각하면 아무 것도 아닌 사소한 일들이지만 말이다. 사소한 유틸리티들과 거의 실용적이라고 볼 수 없는 업무용 프로그램을 개발하던 소프트웨어 하우스들이 생각난다. 3∼4년씩 미래의 희망만을 자산으로 열심히 개발하던 사람들이 많았다. 만약 독자들이 80년대의 마소 잡지를 본다면 정말 특별한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잡지에 라이브러리 설명이 거의 없다는 점이 특이할 것이다. 바꿔 말해 시스템을 만들거나 만들지 않거나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잡지의 기사는 원리구현과 고급 실전 외에는 별로 없었다. 우리나라 최초에 해당되는 마우스의 회로도와 기계어 덤프 코드가 창간 2주년 마소의 뒷부분에 실려 있다. 거의 본능적인 열광이 아니라면 오실로스코프를 켜고 디버거와 역어셈블러를 손수 만드는 고생을 누가 하겠는가? BIOS 덤프를 다 뒤지고 모니터 프로그램으로 기계어를 직접 입력하면서 희열을 느끼는 사람들을 뭐라고 설명할 수 있겠는가? 80년대에도 명문 학교를 다니다가 공부를 집어치우고 세운상가에 빠져버린 사람들이 중고부품 가게 앞에 앉아 주인과 흥정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무슨 설명을 할 수 있을까. 신문에서는 계속 세상이 정보화된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런 정보화는 90년대 중반 이후부터 급진전한 것이다. 그 이전까지는 모든 일이 천천히 진행됐다. 컴퓨터의 혁명적 발전이라는 파도 속에 있으면서도 그 파도를 잘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세월이 엄청나게 빠르게 흘러가면서 하드웨어 해킹의 광적인 에너지를 잃어버린 것을 알았다. 해킹 자체의 희열을 잃어버린 것이다. 현재 필요한 소프트웨어는 이미 다 만들어져서 나온다. 소박한 하드웨어 해커를 질리게 만들만큼의 매뉴얼과 명세서, 인터페이스 규격에 또 규격. 대기업과 엘리트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규격들. 철저한 규격화 사회이다. 이러한 일을 반대하는 목소리는 웹에도 가득하기는 하지만 거의 야유에 가깝다. 녹색 표지에 사과 그림이 있는 책은 애플 컴퓨터 안에 무엇이 있는가를 설명한 책이다. 애플 컴퓨터 안에 있는 모든 하드웨어적 기능과 소프트웨어적 능력을 끄집어내는 일을 설명하고 있다. 애플컴퓨터의 능력을 최대한 활용하고 숨은 기능을 찾아내려면 이런 책을 보면서 살아야 했다. 하지만 요즘은 이러한 책의 신판이 나오기도 전에 CPU는 몇 배가 빨라지고 칩셋은 서너번 바뀔 것이다. 소프트웨어는 영업을 위해 라이브러리는 2배로 커져 있을 것이고 API는 2∼3배로 될 것이다. 매뉴얼도 수십 메가 바이트가 준비되어 있을 것이다.반드시 이러한 일을 불행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컴퓨터를 연구하면서 행복해질 일은 없을까? 원시적인 에너지와 열정으로 컴퓨터를 즐길 방법은 없을까? 새로운 세대의 컴퓨팅은 과연 불가능한 것일까? 해커스티븐 레비의 책 해커(Hackers : Heroes of the Computer Revolution - 국내에는 "해커, 그 광기와 비밀의 기록"으로 사민서각에서 출판)는 옛날 책이지만 거의 고전이 됐다. 레비는 책에서 해커의 이야기를 쓰면서 자신의 이야기는 정사(正史)가 아니며 그들은 컴퓨터를 깊이 있게 이해하고 있는 무대 뒤의 천재들로 우리들에게 새로운 생활양식과 새로운 영웅들을 가져다준 사람들이라고 적었다. 레비의 분류에 따르면 첫번째 세대의 해커들은 컴퓨터라는 세계를 개척하며 그 행위 자체를 최고의 목적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두번째 세대의 해커는 컴퓨터라는 마술을 사람들에게 공유시키기 위한 활동을 주목적으로 했다고 한다. 세번째 세대의 해커들은 소프트웨어의 해커들로 게임이나 프로그램을 세상에 팔았다는 것이다. 모두가 레비의 분류에 수긍하지는 않을 것이며 해커라는 이름도 레비의 책에서 정의한 용도와 다르게 쓰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분류는 컴퓨터 업계의 추세와 에너지를 반영하고 있다. 레비의 두번째 분류에 해당하는 하드웨어 해커들은 70년대의 퍼스널 컴퓨터 붐을 하드웨어적으로 주도했다. 이들은 그 당시 사회적 분위기와 변화의 기운을 반영하였다. 50년대의 냉전 분위기와 군산복합체의 대두, 핵전쟁의 위협과 이데올로기의 대립을 거치면서 히피운동와 반전운동, 그리고 지배 계급에 대한 불신과 반대를 위한 투쟁이 있었고, 2세대의 해커들의 행동 강령은 이러한 분위기와 자연스럽게 섞였다. 70년대 초에 인텔에서 마이크로프로세서가 개발된 지 2∼3년 후 간신히 범용적인 능력을 갖게 된 8080 등이 발표되었으나 주 용도로서는 제어장치에 사용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었다. 이들을 사용해 거의 열정만으로 설계하고 만들어낸, 어쩌면 불가능해 보이던 설계 목표였던 마이크로 컴퓨터와 퍼스널 컴퓨터를 제작한 사람들의 중심에는 홈브루 컴퓨터 클럽(Homebrew Computer Club)과 피플즈 컴퓨팅, 그리고 리 펠젠스타인(Lee Felsenstein)이 있었다. 펠젠스타인을 비롯한 몇 명의 정치적 이념을 가진 해커는 컴퓨터가 사람들을 해방시키는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70년대 중반부터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이용한 퍼스널 컴퓨터는 급속히 확산되었고 이러한 일은 예측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