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동안 애플 행사의 키워드는 ‘혁신’이었다. 스티브 잡스 시절, 특유의 '원 모어 싱(one more thing)'이란 말과 함께 풀어 놓는 보따리에 전 세계가 흥분했다.
하지만 스마트폰 시장에서 '깜짝 놀랄 혁신'이 사라진 지는 꽤 오래 됐다.
10년전 나는 이 문제를 다룬 '혁신 사라진 아이폰7…우린 불행한 걸까'란 칼럼을 쓴 적 있다. 당시 글에서 나는 야구계의 오랜 논쟁거리인 ‘4할 타자 실종’에 빗대 ‘스마트폰 혁신 실종’을 설명했다.
'4할 타자 실종'을 설명하는 대표적 이론이 ‘굴드의 가설’이다. 미국 진화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는 1996년 저서 '풀하우스'에서 4할 타자가 사라진 원인을 타자의 기량 약화나 투수의 전문화 때문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선수들의 전반적인 타격 능력이 대폭 향상되면서 타자들 간의 표준편차가 줄어들었다는 분석이다. 4할을 웃도는 최고 타자뿐만 아니라 2할대 초반에 턱걸이하는 타자도 함께 사라졌다는 것이 굴드의 설명이었다.
스마트폰의 혁신 실종 역시 '평균 성능의 (하향 평준화가 아니라) 상향 평준화'와 관련이 깊다고 본다. 그래서 나는 혁신이 정체된 스마트폰 시장이 딱히 불편하지 않았다. 어떤 폰을 선택하든 평균 이상을 해주는 출중한 성능을 누리는 재미가 쏠쏠했기 때문이다.
최근 시장의 관심사는 '혁신'에서 '가격'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오늘 새벽 열린 애플 이벤트 역시 마찬가지였다.
많은 관심을 모은 폴더블폰 '아이폰 듀오'의 시작 가격은 329만원이다. 저장용량을 조금 늘리고 애플케어까지 가입하면 순식간에 400만원을 훌쩍 넘긴다. 함께 공개된 아이폰18 프로의 시작가는 199만원, 프로맥스는 219만원이다. 내년 초 출시될 아이폰18기본 모델 역시 (옵션을 포함한) 실제 구매가는 200만원을 가볍게 넘길 것으로 보인다.
더 황당한 것은 구형 모델 가격 정책이다. 작년에 출시된 아이폰17마저 20만원 올렸다. 512GB 용량에 애플케어를 더하면 200만원 육박하는 수준이 됐다. 불과 몇 년 전 스마트폰 가격 100만원 돌파를 두고 언론들이 "심리적 저항선이 무너졌다"며 대서특필했던 기억을 떠올려보면 참으로 경이로운 상승세다.
최근의 스마트폰 가격 상승이 아주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반도체를 비롯한 부품값 상승 ▲고환율 ▲인공지능(AI) 기능 대거 탑재라는 명분은 나름 설득력 있다. 하지만 소비자가 체감하는 가치가 과연 그만큼 뛰어올랐는지는 의문이다. 생활필수품에 가까운 기기가 이제는 웬만한 대형 가전제품이나 명품 가방에 맞먹는 몸값을 자랑한다.
다행히 나는 최근의 가격 폭풍을 살짝 피해 갔다. 지난해 아이폰17로 바꿨고, 맥미니를 새로 들였다. 2년 전에는 맥북에어를 구매했다. 1년 새 맥미니 가격은 50만원 올랐다. 저장 용량 512GB 업그레이드하면서 170만원대에 샀던 맥북에어는 이제 200만원을 넘어섰다. 구형폰인 아이폰17 가격마저 20만원 올랐다.
이런 모습을 보며 "막차를 제대로 탔다"는 안도감과 함께 씁쓸한 질문 하나가 머릿속을 스쳤다. "이제 스마트폰과 노트북은 사치품이 되어버린 걸까?"
관련기사
- 애플, 삼성과 폴더블 격돌…'아이폰 듀오'에 어떤 신기술 심었나2026.09.10
- 아이폰 가격 전부 올랐다…2년 된 아이폰16까지 인상2026.09.10
- 애플, 아이폰18 프로 사전주문 하루 늦춰... 9·11 의식했나2026.09.10
- 애플 첫 폴더블폰 '아이폰 듀오', 내달 23일 국내 출시…329만원부터2026.09.10
기술 혁신을 기대하며 기꺼이 지갑을 열던 시대는 지났다. 이제 소비자는 '더 오르기 전에 지금이라도 사야 하나'라는 공포에 등 떠밀리고 있다. 기술은 모두를 향해 발전한다는데, 그 기술을 소유하기 위한 문턱은 점점 더 가파라진다.
내가 탄 막차가 떠난 뒤, 승강장에 남겨진 사람들의 표정이 차마 남 일 같지 않은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