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인공지능(AI)이 세상에 등장한 지 70년이 됐습니다. 디지털 세상에서 인류의 지식과 정보를 언어로 학습한 생성형 AI가 이제 물리 세상을 체험하기 위해 나올 채비를 마쳤습니다. 이름하여 피지컬(Physical) AI. 휴머노이드 로봇, 자율주행차, 다크팩토리, 헬스케어 등이 대표적입니다. 챗GPT에 이은 피지컬 AI는 첨단제조 강국인 한국 경제를 더 혁신적이고 지속 가능한 성장엔진으로 바꿔 놓을 무한한 잠재력까지 갖고 있습니다. 산업화를 넘어 미래 지능형 플랫폼 사회로 나아가는 관문도 피지컬 AI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예측불허의 AI 시대,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창간 26주년을 맞은 지디넷코리아가 연중기획 '피지컬AI가 미래다'를 통해 당면 과제와 이슈를 고민합니다. 많은 관심과 조언 부탁드립니다. [편집자주]
"배터리 분야에서 인공지능(AI)은 단순히 데이터를 많이 모았다고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습니다. 소재가 왜 그런 특성을 보이는지, 셀 설계 조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공정 조건이 품질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양산 현장에서는 어떤 제약이 있는지를 함께 이해해야 합니다."
임길자 LG에너지솔루션 업무혁신R&D 선행개발 PI팀장은 최근 지디넷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배터리 개발 및 제조 공정에서의 인공지능 전환(AX)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원가 경쟁이 치열한 배터리 업계도 피지컬AI를 통한 제조 혁신에 관심이 지대하다. AI로 신소재 개발 기간을 단축하거나, 고위험 업무에 사람 대신 로봇을 투입하는 등 다방면에서 기술 접목이 이뤄지고 있다.
AX는 피지컬AI 등 AI를 제조 현장에 대대적으로 도입하기 위한 사전 작업 역할을 한다. 배터리 소재 개발부터 시작해 셀 설계 및 시험, 파일럿 생산과 대규모 양산에 이르기까지 전 영역에서 발생하는 데이터를 표준화하고, 계속 쌓이는 데이터를 AI가 다시 학습하는 일련의 흐름을 만든다.
임 팀장의 이같은 발언은 배터리의 화학적 특성과 맞닿아 있다. 배터리 에너지 밀도를 높이면, 안전성이 떨어지는 식의 반대급부가 따른다는 점이다. 이런 요소를 놓치면 결국 최종 단계인 대규모 양산까지 성과를 내기 어렵다는 취지다.
때문에 AI가 특정 소재나 셀 설계 변경을 제안할 경우, 개선되는 지표뿐만 아니라 종합적으로 변화를 파악하는 것이 배터리 개발 역량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수 주 걸린 배터리셀 설계 하루 만에 끝…35년 사업 경험 녹인 AI 성과
LG에너지솔루션은 오는 2028년까지 제조, 개발 등 전사 생산성을 50% 개선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산업통상부 '제조업 AX(M.AX) 얼라이언스' 로봇 분과에도 참여해 품질관리, 예지보전 등 공정의 AI 전환을 추진 중이다. 이 '생산성'은 양적 지표 개선에 그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임 팀장은 "단순히 더 많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생산 속도, 수율, 품질 안정성, 설비 효율, 안전을 함께 개선하는 것"이라며 "R&D에선 잘못된 방향의 실험을 줄이는 것, 실패를 늦게 발견하지 않는 것, 양산에 갈 수 없는 방향을 초기에 걸러내는 것"이라고 짚었다.
이어 "AX는 결국 더 정확하게 판단하는 기술이어야 한다"며 "초기에는 좋아 보여도 나중에 무너질 방향을 빨리 알아차리고, 성능 향상이 어떤 대가를 가지는지 판단하고, 품질과 양산성까지 함께 보는 구조가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AI의 이런 판단을 뒷받침할 데이터 기반이 강력해야 현업 인력들이 AI를 신뢰하고 실제 업무 혁신에 활용할 수 있다고 봤다. 이런 관점에서 LG에너지솔루션이 35년 가량 축적한 배터리 사업 경험이 차별화된 경쟁력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배터리셀 설계 최적화 AI 모델을 구현, 설계 기간을 수 주에서 하루 수준으로 단축한 것이 일례다. 이 모델 구현에 10만건 가량의 셀 설계 초안을 학습에 활용했다.
디지털 트윈, 배터리 공장 효율 2배로…"표준화·현장 적합성 균형 중요"
셀 설계 외 제조 현장에서도 가시적인 AX 성과를 도출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원통형 배터리 공장 생산성을 개선하기 위해 AX와 디지털 트윈 기술을 적용했다. 설비 설계를 사전 검증하고, 설비 속도를 개선했을 뿐 아니라 다양한 배터리 셀 수요에 유연하게 대응 가능한 설비를 만들어 설비 투자 효율을 기존 대비 두 배 수준으로 높였다.
임 팀장은 "예전에는 특정 설비나 특정 공정의 데이터를 보고 개선하는 방식이 많았다"며 "이제는 제품·공정·설비·품질 데이터를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해서 실제 공장을 가상 환경에서 재현하고, 조건 변화가 생산성·품질·수율·설비 운영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사전에 판단하는 방향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언급했다.
한 공장에서 검증한 모델과 운영 경험을 글로벌 제조 현장 전반으로 확대하기 위한 전략도 제시했다. 데이터 기준과 품질 판단 기준, 운영 프로세스 등은 표준화하되, 공장별 특성을 고려한 기술 적용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 팀장은 "실험실에서 된다고 해서 파일럿에서 되고, 파일럿에서 된다고 해서 양산에서 그대로 된다는 보장은 없듯이 제조 디지털 트윈의 확대도 같은 관점으로 봐야 한다"며 "회사 공통의 데이터와 모델 자산은 축적하면서, 각 공장의 제품·공정·설비 특성을 반영해서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AI, 배터리 R&D 인력 '빈 틈' 메꿀 것"
LG에너지솔루션은 AX의 일환으로 R&D 전반에 AI 에이전트를 도입하고 있다. 임 팀장은 AI 에이전트의 역할을 '연구자의 판단을 대체하는 것이 아닌, 연구자가 더 좋은 질문을 하고 더 정확한 판단을 하도록 돕는 기술'로 정의했다.
임 팀장은 "셀 개발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초기에 좋아 보이는 데이터에 너무 빨리 확신을 갖는 것"이라며 "실험실 샘플이 좋아 보여도 파일럿과 양산으로 확대되는 순간 전극 균일성, 공정 편차, 활성화 조건, 품질 변동성에서 한계가 드러날 수 있다"고 운을 뗐다.
이어 "AI는 '왜 이 성능이 좋아졌는가', '무엇을 희생했는가', '언제 문제가 드러날 가능성이 있는가', '양산에서 같은 결과를 재현할 수 있는가', '같은 조성인데 왜 배치마다 차이가 나는가' 등의 질문을 빨리 던져줄 수 있어야 한다"며 "단순히 질문에 답하는 챗봇 수준을 넘어 연구자와 개발자의 업무 흐름을 이해하고 도와주는 도구로 발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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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팀장은 "이런 질문을 개발자가 매번 혼자 머릿속으로만 복기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가 축적한 실험 데이터, 분석 데이터, 공정 데이터, 품질 데이터와 연결해서 같이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며 "R&D 과정에서 AI 에이전트의 핵심은 필요한 데이터를 제때 찾아주고, 누락을 줄이고, 다음 행동을 제안하고, 개발 이력이 회사의 자산으로 남도록 돕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AI 모델 외 데이터 표준화, 기준정보 정비, 프로세스 정합성, 보안 체계, 현업 적용 체계 고도화도 병행돼야 하는 과제인 점도 짚었다. 임 팀장은 "특히 배터리 R&D는 국가핵심기술과도 연결되는 영역이기 때문에, 엔터프라이즈 AI 플랫폼이나 보안 체계와 함께 단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