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지 말고 세상을 풀어요"... AI 시대 참교육을 찾다 '거꾸로캠퍼스'

이정백 대표 "학력·경쟁 없애고 질문·협력 배워...‘어떻게 살 것인가’ 묻는 진짜 배움터"

인터넷입력 :2026/08/06 10:39    수정: 2026/08/06 10:45

“AI에게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수능 지문 해설도, 미적분 증명도, 영어 에세이 첨삭도 몇 초 내에 무료로 답이 옵니다. 오랫동안 귀했던 ‘정답’의 가격이 0원이 됐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아이들은 이제 학교에서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대안교육기관 ‘거꾸로캠퍼스’에서 만난 이정백 대표(교장)가 던진 질문은 사실 이 시대 대부분 학부모와 청소년들이 가진 공통된 질문이자 고민이다. 인공지능(AI)이 인간의 지식을 대체하는 불확실성의 시대, 교육의 위기를 말하는 목소리는 높지만 뾰족한 해답을 내놓는 사람은 없다. 세상은 변했는데 교육은 그대로인 현실 속에서 학부모와 학생들의 불안감이 커지는 이유다.

이런 막막한 현실 속에 거꾸로캠퍼스는 지난 9년간 묵묵히, 그러나 가장 파격적인 방식으로 교육의 새로운 해답을 증명해 온 곳이다. 학년도, 성적표도, 경쟁도 없는 이곳에서 아이들은 스스로 문제를 찾고 세상을 바꾸는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World’s Best School Prizes 2026’ 혁신 부문에서 세계 톱10에 선정되며 전 세계 주목을 받고 있는 거꾸로캠퍼스. 이정백 대표를 만나 낡은 공교육의 틀을 깬 생생한 교육 실험과 우리 아이들이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들었다.

정답이 0원인 시대..."배움을 뒤집어 사람을 세우다"

이정백 거꾸로캠퍼스 대표(교장). 이 대표는 2017년 거꾸로캠퍼스를 기존 학교 구조 위에서 고친 것이 아니라, 원점에서 다시 쌓아 올렸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지금의 공교육 시스템이 150년 전 산업사회에 맞춰 설계된 ‘과거의 발명품’이라고 진단했다. 국가가 같은 나이의 아이들을 모아 시간표와 종소리에 맞춰 같은 속도로 가르치는 방식이 지시를 잘 따르고 정해진 작업을 반복하는 산업사회의 인간상에 완벽히 부합해 보인다는 이유에서다.

“그 시대에는 가장 합리적인 시스템이었고, 실제로 우리나라를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으로 이끈 기적의 동력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측 가능했던 그 시대의 조건이 지금도 유효할까요. 유발 하라리의 말처럼 이제 ‘변화만이 유일한 상수’인 시대입니다. 산업사회가 자기 시대에 맞는 학교를 발명했듯, 우리도 이 시대에 맞는 학교를 새로 발명해야 합니다.”

거꾸로캠퍼스는 기존의 학교를 고쳐 쓰는 대신, 제로 베이스에서 다시 쌓아 올리는 방식을 택했다. 이 시대의 역량을 기르는 데 학년이 필요 없다고 판단해 ‘무학년제’를 도입했고, 성적표 대신 ‘성장기록부’를, 경쟁 대신 ‘협력’을, 강의 대신 ‘프로젝트’를 채워 넣었다.

이 대표는 이를 “배움을 뒤집어, 사람을 세운다”는 한 문장으로 요약했다. 배움과 질문의 방향을 뒤집음으로써 학생이 주체적인 개인으로 바로 서게 된다는 뜻이다. 정해진 지식을 암기하는 대신, 스스로 탐구하고 함께 문제를 해결하며 배움을 책임 있는 변화로 이어가는 것, 이것이 거꾸로캠퍼스가 길러내고자 하는 인재상이다.

AI는 조력자일 뿐…"스스로 묻고 깨지는 ‘시행착오’가 진짜 배움"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대안교육기관 거꾸로캠퍼스. 대안교육기관은 인가형 학교인 대안학교와 달리 등록제로 운영된다. 일정 요건을 갖추면 등록할 수 있고, 국가 교육과정을 따르지 않는 완전히 자율적인 교육기관이다. 현재 전국에 약 246개의 대안교육기관이 등록돼 있다.

지식의 가치가 ‘0원’에 수렴하는 본격적인 AI 시대에 인간이 가져야 할 무기는 무엇일까. 이 대표는 ▲질문력 ▲회복탄력성 ▲협력적 문제해결력 ▲주체성이라는 네 가지 역량을 꼽았다. 놀라운 것은 이 거창해 보이는 역량들이 거꾸로캠퍼스에서는 ‘시행착오’를 통해 학생들의 일상에 자연스레 스며든다는 점이다.

“AI를 금지할 것도, 숙제를 대신 해주는 기계로 치부할 것도 아닙니다. 내 문제 해결을 돕는 파트너이자 조력자로 만나게 해야 합니다. 단, 순서가 중요합니다. ‘내가 어떤 문제를 풀고 싶은지’에 대한 자기 질문이 먼저 있어야 합니다. 질문이 없는 상태에서 AI를 쓰면 그럴듯한 답을 소비하는 데 그치고 맙니다.”

거꾸로캠퍼스 학생들은 당사자를 인터뷰하고 논문을 뒤적이며 문제를 정의한 뒤에야, 탐구를 넓히고 솔루션을 만드는 도구로 AI를 활용한다. 심지어 전통적인 코딩 수업을 없애고, AI를 활용해 직접 앱을 기획하고 구현하는 ‘AI프로덕트랩’을 운영 중이다. 문법을 외우는 것보다 무엇을 만들지 고민하는 기획력이 훨씬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학생과 교사의 관계 역시 완전히 뒤집혔다. 교권 추락과 교실 붕괴의 원인을 ‘통제와 힘겨루기의 관계’에서 찾은 이 대표는 거꾸로캠퍼스의 교사들을 지시자가 아닌 ‘코치’로 재정의했다. 평가하고 줄 세우는 권한을 내려놓으니, 관계의 기반은 자연스레 권위가 아닌 ‘신뢰’가 됐다고.

“최근 야간 개방 시간을 줄이려는 학교 측에 맞서 학생들이 직접 안건을 발의하고 코치들에게 대화를 제안한 적이 있습니다. 불만을 터뜨리는 대신 마주 앉아 서로의 필요를 나누고 절충안을 찾았죠. 저희는 갈등이 생기면 규정과 처벌이 아니라 논의로 풉니다. 문제를 스스로 정의하고 해결하는 프로젝트 수업의 본질이 학교 운영 과정에서도 그대로 발현되는 셈입니다. 이곳에선 갈등조차 훌륭한 배움의 장면이 됩니다.”

도망친 곳이 아닌 찾아온 곳…"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란 질문 놓지 말길"

무턱대고팀 활동 사진. 휠체어를 탄 이웃이 가게 문턱 앞에서 번번이 돌아서는 것을 보고, 직접 상점들을 찾아다니며 경사로 설치를 설득해 20곳 가까이를 실제로 바꿔냈다.

세간의 인식 속 대안학교는 종종 ‘공교육에 적응하지 못한 아이들이 가는 곳’으로 비치곤 한다. 하지만 이 대표는 다른 설명을 했다. 거꾸로캠퍼스의 문을 두드리는 대다수는 성적이나 교우관계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이 교육이 나를 성장시켜주지 않는다”는 뚜렷한 문제의식을 안고 ‘더 잘 배울 방법’을 찾아 나선 능동적인 아이들이라는 것이다.

이런 학생들의 능동적 선택은 의미있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수능 점수 없이 서류와 토론, 면접만으로 선발하는 미래 혁신 대학인 태재대학교의 2026학년도 합격자 60명 중 7명이 거꾸로캠퍼스 출신이었으며, 작년엔 수석 합격자까지 배출했다. 특정 대학 진학을 목표로 삼지 않았음에도, 진짜 역량을 기르니 세상이 먼저 알아본 셈이다.

무엇보다 큰 변화는 아이들의 내면에서 일어났다. 이 대표에 따르면, 입학 초기엔 무기력했던 아이들도 점차 “내가 뭐든 할 수 있는 사람이 돼 가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한 학부모는 “초점 없던 아이의 눈빛이 밝아지고, 자기 삶을 주도적으로 결정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시험을 위해 밤을 새우는 대신 글로벌 쇼케이스를 준비하며 밤을 지새우는 아이들은 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 쓰면서도 불평 대신 “몸은 피곤해도 속이 꽉 찬 느낌”이라고 했다.

AI 없이 몸으로 AI의 원리를 배우는 교육 툴킷을 만들어 중학생들과 워크숍을 열고 있는 연청 팀.

이정백 대표는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는 청소년들에게 진심 어린 당부의 말을 남겼다.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결코 놓지 말았으면 합니다. 정답을 빨리 찾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문제와 씨름하다 보면 답은 조금씩 그려지거든요. 그리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저희가 성적표를 없앤 이유는 여러분에게 ‘다시 해볼 수 있는 시간’을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시간을 마음껏 쓰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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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표는 끝으로 대안교육기관을 바라보는 시각들에 주의를 당부, 수년 전 거꾸로 갔던 선택과 판단이 이제는 올바른 결과로 다가오고 있다고 확신했다. 

 “거꾸로캠퍼스를 어쩔 수 없는 ‘차선책’이나 ‘대안’으로만 부르지 말아 주십시오. 9년 전 우리가 거꾸로 걷기 시작했을 때, 이제 세상이 우리의 방향으로 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시대에 맞는 가장 확실한 선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