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를 사들이는 군인이 '내가 이걸 해봐도 된다'는 도전 의식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김득화 펀진 대표는 지난 23일 서울 성동구 펀진 본사에서 지디넷코리아와 만나 소프트웨어 기반 무기 시대에 가장 시급한 과제로 제도를 꼽으며 이같이 말했다. 무기가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로 정의되는 '소프트웨어 정의 무기체계(SDW)' 시대에는 기술만큼이나 이를 받아들일 획득 제도가 함께 바뀌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다.
펀진은 수주 이후 개발에 착수하는 통상 방식과 달리 국방 인공지능(AI) 기술을 선제적으로 개발해 왔다. 2022년 12월 국방사업에 진출한 뒤 현재까지 확보한 기술·제품만 13개에 이른다. 그사이 합동화력훈련과 육군 과학화전투훈련단(KCTC) 전투실험 등 야전 검증을 거치며 군과의 신뢰를 쌓았다. 현장에서 군의 고민을 가까이 본 경험은 김 대표가 기술보다 제도의 한계를 먼저 이야기하는 배경이 됐다.
소프트웨어 무기는 탱크와 달라…속도가 핵심
김 대표가 말하는 미래 무기는 같은 플랫폼에 소프트웨어만 바꿔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는 무기다. 같은 드론이라도 정찰·전파탐지·표적식별 기능을 필요에 따라 바꾸는 식이다. 스마트폰에 여러 앱을 설치하듯 기능을 계속 업데이트하는 것이 SDW의 핵심이다.
업계에 따르면 국방 AI 시장은 향후 연평균 30%를 넘는 고속 성장이 예상된다. 안보 위협 증가와 무인화 가속, 주요국의 군비 경쟁이 맞물리면서 시장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문제는 이 무기를 사들이는 제도가 여전히 하드웨어 중심이라는 점이다. 현행 획득 체계는 탱크·함정·전투기처럼 한 번 전력화하면 수십 년 쓰는 무기를 전제로 짜여 있어 무기 하나를 도입하는 데 통상 15년 안팎이 걸린다.
김 대표는 "당장 AI 무기를 도입하기로 해도 야전 군인이 손에 쥐는 건 한참 뒤"라며 "능력이 1년 만에 바뀌는 소프트웨어 무기에는 이 속도가 치명적"이라고 말했다.
군이 선뜻 새로운 기술 도입에 나서지 못하는 배경에는 감사 부담도 있다. 오늘 가장 좋은 AI를 들여와도 석 달 뒤 더 나은 모델이 나오는 만큼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는 것 자체를 위험으로 인식하는 분위기가 있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기업의 실패를 용인해 달라는 게 아니라 무기를 사는 군이 마음껏 시험할 수 있도록 제도적 안전망이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국방AI법으로 길 열고 거점으로 AI 인재 키워야
김 대표는 이같은 구매자 보호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장치로 지난 2월 발의된 '국방AI법'을 꼽았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유용원 국민의힘 의원과 부승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동 대표발의한 이 법은 국방 AI를 포괄적으로 규율한다. AI를 규제 대상이 아니라 국가 전략 차원에서 다루자는 취지로 연구개발(R&D)부터 도입과 실전 운용, 사후 관리까지 전주기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내용을 담았다.
김 대표는 "기존 틀을 고수하는 대신 새로운 방식으로도 무기를 획득할 수 있게 길을 터주는 게 법안의 골자"라며 "완제품을 기다렸다가 사는 대신 반제품을 먼저 들여와 계속 고도화하는 애자일 방식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제도와 함께 그가 강조하는 건 기술 자립이다. 김 대표는 국방부가 외산 플랫폼 대신 '국방 AI 공통 기반'을 독자 기술로 구축하기로 한 결정을 소버린(주권) AI 확보의 출발점으로 평가했다. 전시에는 지휘결심부터 표적식별, 군수지원까지 거의 모든 영역에서 AI가 쓰이는 만큼 핵심 기술을 외산에 의존하면 안보 위험으로 돌아온다는 판단이다.
기술 자립의 다음 조건은 사람이다. 김 대표는 국방부가 연내 구축하는 전국 5대 권역 '국방AX(AI 전환) 거점'을 현장형 인재 양성의 축으로 꼽았다. 인구 감소로 병력 확보가 어려워질수록 미래 국방력은 병력 규모가 아니라 AI 인재 확보에 좌우된다는 것이다.
다만 교육기관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작전 환경을 이해해야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AI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학이 이론을, 군이 실제 문제와 데이터를, 기업이 현장 기술을 맡는 삼각 협력 구조가 필수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김 대표는 "AI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군의 문제를 AI로 풀 수 있는 사람을 길러야 한다"며 "이런 협력이 자리 잡아야 지역에서 인재가 지속적으로 배출된다"고 제언했다.
이글아이에서 월드모델까지…펀진의 다음 수는
펀진의 AI 합성데이터 생성·품질관리 플랫폼 '이글아이(EagleEye)'는 지난해 소프트웨어 분야 최초로 방위산업품질(DQ)마크 인증을 받았다. 이는 소량의 현장 데이터로 AI 학습용 데이터를 만들어내는 기술로, 모델보다 데이터 품질을 앞세우는 데이터 중심 AI로의 전환을 겨냥한다.
지휘결심 영역에서는 킬웹매칭(KWM)을 야전에서 검증했다. KWM은 다수의 표적과 화력 자산이 뒤섞인 상황에서 최적의 타격 수단을 추천해 지휘관의 판단을 돕는 체계다. 김 대표는 "대대급 실증에서 지휘관들이 AI를 결심을 대신하는 도구가 아니라 더 빠르게 판단하도록 돕는 참모로 받아들였다"며 "이것이 정량 결과보다 더 의미 있는 성과"라고 평가했다.
주요 제품 도입 수요도 빠르게 늘고 있다. 방산혁신기업 100 과제로 개발한 'KWM 온프레미스(On-Premise)'는 전술 현장에 설치 가능한 소형화 모델로, 오는 11월까지 군 실증에 나서는 등 KWM 세부 제품군도 넓어지고 있다.
김 대표는 "과거와 달리 클라우드·온프레미스·무인 군집 체계 등 다양한 체급 사업이 동시에 추진되고 있다"며 "군의 AI 도입 의지가 그만큼 높아졌다는 신호"라고 말했다.
김 대표가 다음 승부처로 꼽는 건 국방용 월드모델이다. 이글아이가 AI를 위한 가상 연습장을 만드는 기술이라면 월드 파운데이션모델(WFM) 기술 'FAIP-MIN&D'는 물리 법칙과 인과를 이해해 처음 겪는 상황도 추론하는 기술이다. 그는 언어를 이해하는 AI보다 물리 세계를 이해하고 추론하는 AI가 미래 전장에서 더 큰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했다. 통신이 끊기고 적이 예상 밖 전술을 쓰는 전장일수록 그 가치가 커진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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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진이 국방에서 검증한 기술은 결국 사람을 지키는 쪽으로 확장된다는 게 김 대표의 청사진이다. 그는 향후 5년 로드맵을 AI가 판단을 돕는 'AI 참모', 드론·로봇과 연계해 임무를 수행하는 'AI 에이전트', 인간의 위험을 미리 감지하고 보호하는 'AI 컴패니언'의 3단계로 그렸다. 재난 대응과 산업 안전, 돌봄까지 같은 기술적 뿌리에서 뻗어갈 것이라는 구상이다.
김 대표는 "전투를 위한 AI가 아니라 사람을 지키기 위한 AI를 만드는 게 우리 목표"라며 "국방은 그 기술이 가장 먼저 극한의 환경에서 검증되는 분야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