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TV의 미래를 묻다

류준영 기자의 현대아이티 3DTV 생산 현장 탐방기

일반입력 :2009/12/20 12:49    수정: 2009/12/21 17:13

류준영 기자

잘개 쪼개어 놓은 듯한 3차원(D) LCD TV 패널들이 복도 곳곳에 놓여진 박스에 한 가득 쌓여있다.

칸막이로 나뉘어진 부서별 사무공간엔 4대 이상의 플랫 패널들이 빼곡히 들어차 RGB(Red, Green, Bule 형광체) 광원을 힘껏 내뿜고 있었다. 곧 검수과정을 거치면서 절개될 운명에 처한 3DTV가 애처로운 모습으로 방문객을 맞았다.

한국 3DTV의 핵발전소 격인 경기도 이천 소재의 현대아이티를 찾았다. 무작위로 널려진 TV부품들을 보며 “우와~잘 돌아가나 봐!”라며 탄성을 짓게 했던 곳. 이 회사는 지난 2000년 5월 현대전자(현 하이닉스)의 디스플레이 사업부문이 분사해 설립됐다.

지난해 4월 중견 디스플레이업체인 현대아이티(대표 최종원)가 세계 최초로 3D 입체방송TV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기자회견을 가질 때다,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던 언론과 투자자들은 “3차원(D) TV? 웃기시네”라며 코웃음을 쳤다.

그렇게 2년여 남짓 시간이 지났고, 상황은 180도로 달라졌다. 그새 현대아이티는 3DTV 시장에서 맏형 격으로 성장했다. 현대아이티 3DTV를 찾는 사람들의 이유는 제각각이다.

3D 디스플레이센터나 학회, 기관 등 특정그룹에서 실험용 기자재로 활용하거나 요즘은 일본 TV 제조사가 한국3DTV 기술력을 가늠할 비교제품으로도 구매한단다. 대부분 B2B 중심이다. ‘현대아이티’하면 입체TV가 연상되는 대한민국 대표 브랜드로써의 정체성을 확고히 한 것. 하지만 아직 일반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한 3DTV 공급은 말을 꺼내기가 무안할 정도란다. 아직 시장활성화를 언급할 단계가 아닌 탓이다.

내년도 TV시장의 화두는 HD고화질에서 고화질 풀(HD) 3DTV로 전개될 것이란 전망들이 쏟아지고 있다. 현재 3D 디스플레이 비중은 전체 시장에서 0.1% 수준이나 2015년엔 5.1%(150억 달러, 수량기준)까지 성장할 것으로 디스플레이뱅크는 전망했다.

실제 생산현장의 분위기도 그럴까?

기자가 직접 본 현장의 분위기에선 “그럴 수도 있다”가 가장 근접한 답변이 될 것이다. 김희정 현대아이티 연구개발(R&D) 소장은 “가장 먼저 제품을 내놓은 덕에 우리의 제품품질이 시장표준이 된듯하다”라며 “기술 알고리즘의 구현을 우리가 생산한 제품을 통해 검증하더라”고 했다.

이 회사가 최근 당면한 과제는 ‘대형화’다. 3DTV는 LCD 패널크기에 따라 입체감도 함께 오르기 때문이다.

현 40인치 안방TV 제품들을 50인치에서 70인치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 기폭제가 될 수 있는 까닭에 TV제조사들은 고수익을 낼 수 있는 3DTV를 유망제품으로 손꼽고 있다.

현대아이티는 현재 32인치 HD(모델명: S320D)와 46인치 풀HD(모델명: S465D), 55인치 풀HD 대형TV(모델명: S555D) 등 국내 제조사 중 가장 많은 라인업을 갖추고 있다

김희정 연구소장은 “대형화도 있지만 이 시장에 요즘은 부가판권 시장이 마련되면서 3D 영화나 3D 블루레이디스크 등과의 매칭(호환)도 중요한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고 말했다.

“입체영상이 주는 만족감이 기대보단 덜하다는 분들도 있다”고 물었더니 김 소장은 “과거에 저급한 CRT 기반 3D 애니메이션 때문에 썩 좋지 않은 기억을 하는 분이 더러 있다”라며 “3DTV는 세대별로 반응의 차이가 현격히 다른데 예를 들어 4050세대에겐 임펙트가 약한 반면 2030세대에겐 높은 몰입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했다. 현장 관계자는 3DTV로 즐길 수 있는 모든 콘텐츠를 시연해 보였다.

일본 BS11 방송국이 중계한 스포츠카 경기대회 3D 방송과 영화,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게임을 직접 보고 감상할 수 있었다.

먼저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경험했던 3D영상의 어지럼증이 완전히 달아난 수준은 아니었다.

TV와 떨어진 거리에 따라 입체형상이 허물어지고 각기 다른 영상이 눈앞에서 교차되는 경우도 발생했다.

김 소장은 “콘텐츠나 하드웨어의 기술진보가 어지럼증을 줄일 수 있긴 하나 이도 제약이 있다”고 했다. 일반TV를 오랫동안 봐도 어지럼증이 나타나는 것과 마찬가지란 것. 이날 가장 관심을 모았던 3D 콘텐츠는 3D 자동차 경주게임과 동물들이 등장하는 유아 교육용 콘텐츠, 그리고 화끈한 3D 성인물이었다.

제작기간이 충분한 3D 비디오게임은 레이스 주변에 풍경들도 3D로 처리해 100%에 가까운 입체영상을 선사한다. 반면에 3D TV방송은 드라마의 주인공이나 경기장의 선수들 중심의 3D 입체화면을 제공할 뿐 주변환경은 2D로 펼쳐져 모순된 화면이 연출됐다.

김 소장은 “일본 3D 산업은 게임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이도 게임과 3DTV의 기술방향이 일치할 경우에 이야기이다”라며 “게임은 오랫동안 하고 싶어하는 유저들을 만족시킬 정도는 아직 못되며, 3D 온라인 게임을 다운로드 받는데도 부하가 많이 걸린다”고 설명했다.

돌고래나 물개 등의 모습을 바로 앞에서 보는 듯한 유아교육용 콘텐츠는 양안 시차로 인한 어지럼증만 조속히 해결되면 3DTV시장의 성장을 빠르게 진행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3D 성인물은 마치 SF영화 ‘데몰리션맨’에서 홀로그램 스트립 댄서를 보듯 했다. 이를 보는 순간 얼굴은 벌써 벌겋게 상기돼 있었다.

포르노가 IT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결코 적지 않았다. 스트리밍 비디오나 온라인 채팅, 카드결제시스템의 발전도 이 같은 콘텐츠 때문이지 않았나. 잠시 봤던 3D 성인물의 잔상이 계속 머릿속에 남는 듯 했다.

시연회장 옆에선 적외선 카메라로 3DTV에 온도를 측정하고 있었다. 3DTV도 저전력과 슬림형 디자인이란 소비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않고선 경쟁력이 없다는 게 김 센터장의 말이다. 그곳엔 또한 거리 난간에 설치 가능한 3D 간판이 놓여져 있었다. 김 소장은 “3D 장비가 의료 및 광고 시장에서 비즈니스 모델로의 가능성을 타진하면서 각 사업별로 이를 수익모델로 가져가기 위한 자발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3DTV 사업이 순풍을 달기 위해선 핵심부품의 일본 의존도를 떨어뜨리고, 다양한 콘텐츠의 생산 및 3DTV 원가 감축이 절실하다. 하지만 이도 3DTV의 대중화 전에 논할 단계는 아니란 게 업계 중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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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소장은 “내년엔 구매발주서를 많이 받아 회사나 전 산업 전반에 이바지 하고 싶다”고 했다.

또 “3DTV시장이 급부상하면서 대기업들의 참여가 늘고 있다는 점은 반길만하나 혹 1등 기업만 소비자들의 기억에 남고, 이 시장을 견인한 중소중견업체들은 외면당하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한다”라며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