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은행은 금융 산업 혁신의 주체다. 그러나 4%의 딜레마에 빠져 있다. 각종 규제가 인터넷은행에 적합한 지 살펴봐야 한다.”(K뱅크 준비법인 안효조 대표)
“인터넷은행 순위를 매겼을 때 중국이 1위였다. 중국에서 볼 때 한국의 금융수준은 높지 않다. 이렇게 뒤쳐진 이유는 결국 규제 때문이다.”(이석근 명지대 교수)
24일 KT 광화문 WEST 빌딩에서 열린 ‘글로벌 핀테크 동향 및 K뱅크 준비법인 사업 추진형황’ 간담회에서는 은행법 개정과 관련한 불만의 목소리들이 크게 불거졌다.
현행 은행법은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소유를 제한하는 ‘은산분리’ 원칙을 엄격히 규정하고 있다. 금융사가 아닌 산업자본은 은행 지분을 10%까지만 보유할 수 있고, 이중 의결권은 4% 이내에서만 행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올 연말 인터넷은행 출범을 앞둔 K뱅크나 카카오뱅크의 경우, 자본금을 늘리고 본격적인 사업을 전개하려 해도 엄격한 은산분리 규제에 발목이 잡혀 있다. 경영권을 확보할 수 없는 구조에서 애당초 공격적인 투자에 나설 수 없기 때문이다.
맹수호 KT CR부문장은 “지난해 정부가 인터넷 전문은행 허가를 했을 때도 은행법 개정을 가정하고 준 것으로 이해하고 있고 법안도 발의돼 있는 상태”라며 “본격적인 사업 이전까지 법 개정이 되지 않는다는 가정은 하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특히 맹 부문장은 "4% 의결권으로는 비즈니스를 할 수 없다”고 절박함을 토로했다.
■ ‘제2의 천송이 코트’ 규제?
지난 2014년 3월 “중국인이 국내 온라인 쇼핑몰에서 천송이 코트를 사고 싶어도 못 산다”는 대통령의 한 마디에 금융권의 공인인증서 의무사용 조항이 폐지된 일이 있다.
공인인증서 위주의 규제가 국민의 불편을 초래하고 이것이 결국 관련 산업 발전을 저해한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됐음에도 계속 유지되다가 대통령 말 한 마디에 제도개선이 이뤄지는 해프닝이 벌어진 것이다.
인터넷 은행과 관련한 규제 역시 이와 유사하다. 과거에는 없던 인터넷 은행 산업이 발전하면 낮은 이율과 고금리 대출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국민에게 편익이 돌아가고 금융혁신도 달성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카드인데, 정작 높은 은산분리 규제에 발목이 잡혀 있는 것이다.
안효조 K뱅크 준비법인 대표는 “국내 선도은행의 판매관리비 비중이 55~60% 수준인데 인터넷은행은 30~35%”라며 “비용 절감을 통한 최고의 금리혜택 실현이 가능하고 영업비밀상 공개할 수는 없지만 K뱅크의 경우 시중에서 가장 우량한 예금이나 대출 수준보다 낮다는 것을 담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비용구조가 높은 기존 은행권의 경우 예대마진과 담보대출에 의존하는 경향이 크기 때문에 인터넷은행과 같은 저금리 대출, 고금리 예금 상품을 내놓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석근 교수는 “기존 은행은 지점관리 비용이 매우 큰데 지점 하나에 소요되는 비용을 100이라고 하면 ATM이 40, PC가 4, 스마트폰은 2 정도 된다”며 “그 다음이 인건비인데 이런 구조에서는 기존 은행들의 개혁이나 혁신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어 “기존 은행의 비용이나 직원 수를 가지고는 롱테일 서비스를 기획하고 제공하기 어렵다”며 “미국, 영국에서는 이미 오래전에 핀테크 산업이 시작됐고 우리는 5~6년 정도 뒤쳐져 있는데 규제 때문에 또 1~2년이 그냥 지나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 중국, 5년간 두 자릿수 성장
가트너와 엑센추어 등 시장조사기관들에 따르면, 핀테크 글로벌 시장 규모는 2013년 300조원에서 2017년 800조원으로 전망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전망도 매우 보수적인 수치다.
현재 글로벌 핀테크 시장은 규모의 경제를 꾀하고 있는 미국, 정부의 정책지원을 등에 업은 영국이 앞서 나가고 있고, 특히 중국도 지난 5년 간 두 자릿수 성장을 거듭하며 무섭게 커 가고 있는 상태다.
이석근 교수는 “최근 중국에서는 포털들이 알리페이를 겨냥해 은행사업을 하는 것에 대해, 기존 은행들이 반발 하자, 시진핑 주석이 그동안 기회가 있을 때 열심히 하지 그랬느냐며 인터넷은행을 두둔한 일이 있었다”며 “알리페이는 결제 편의성을 기본으로 잔고 부족 시 신용지불도 가능한 서비스를 제공하며 일일거래 8억건, 신용대출 80조원이라는 성적을 거두고 있다”고 말했다.
또, 위뱅크를 통해 인터넷 전문은행을 설립한 중국의 텐센트 역시 국영은행들이 대기업 위주의 대출에 집중할 때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중심으로 한 대출에 집중하며 관련 시장을 키워나가고 있다.
비단, 중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역시 혁신적인 금융서비스를 바탕으로 세를 넓혀나가고 있다.
독일의 피도르 은행은 소셜미디어를 접목해 페이스북을 이용한 금리 인하 서비스를, 2009년 설립된 미국의 인터넷전문은행 Ally Bank는 GM과 연계한 오토 파이낸싱, 일본의 최대 인터넷은행인 SBI와 다이와 넥스트뱅크는 인터넷뱅킹을 매개로 증권 계열사 계좌 개설이나 교차 판매를 하며 혁신을 성공으로 바꿔가고 있다.
이 교수는 “핀테크의 특징은 편하고, 절차가 간단하며 빠르다는 장점을 갖고 있고 또 SNS를 기반으로 모바일로 가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며 “핀테크가 금융 산업의 경쟁, 고객, 상품, 채널 등 구조적 변화를 일으키고 있으며 이는 기존 금융 가치사슬의 변형을 야기해 금융의 주체가 바뀔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 은산분리, 해외에서는
국내에서는 은산분리 제도 개선을 위한 법 개정 작업이 지지부진한 상황이지만 해외 주요국들은 일찌감치 제도 개선을 하고 신금융 산업육성에 나서고 있다.
유럽의 경우 ‘EC 제2차 은행업 지침’에 따라 ICT 기업 등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를 제한 없이 허용하고 있고, 영국은 10%, 20%, 33%, 50% 지분을 초과할 때마다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통해 이를 허용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도 2000년 ‘비금융기업 등 타 분야의 은행업 진출 면허심사 및 감독지침’에 따라 ICT 기업 등 산업 자본 유입을 통한 인터넷전문은행의 설립을 허용하고 있는데, 현재 인터넷전문은행 6곳 중 4곳이 ICT 기업이 대주주로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다.
가장 빠르게 성장 중인 중국 역시 산업과 금융자본 여부에 상관없이 인터넷전문은행 지분을 30%까지 보유할 수 있고, 이를 통해 마이뱅크의 경우 알리바바와 푸싱그룹이 55%의 과반 지분을 소유해 은행을 운영하고 있다. 다만, 외국계 산업자본만 기업 당 20% 내로 지분 제한 규정을 두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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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산분리 규제가 존재하는 미국도 산업자본 유입을 위해 최대주주가 아닐 경우 25% 미만에서 보유가 가능토록 하고 있으며, 산업자본의 은행주식취득제한에도 불구하고 ‘산업대부회사(ILC, Industrial Loan Company)’ 제도를 마련해 7개 주에서 ICT 기업 등 산업자본의 인터넷전문은행 소유를 허용하고 있다.
안효조 대표는 “인터넷은행이 금융 혁신의 메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규제환경의 지속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석근 교수도 “은산분리나 금산분리 규제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다른 나라에 없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규제가 걷어진다고 해서 5~6년의 차이를 당장 쫓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규제가 걷어지는 것이 전제돼야 쫓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