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은 EMC 인수를 통해 엔터프라이즈 기업 고객들이 필요로 하는 IT인프라를 통합 솔루션으로 제공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서버와 스토리지 그리고 네트워크 인프라를 합친, 이른바 컨버지드 인프라 시장에서 HP, IBM, 시스코 등을 상대로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게 됐다.
델과 EMC의 합병이 완료되면 전통적인 기업 IT인프라 솔루션 시장은 델, HP, IBM, 시스코 4강 체제로 재편되게 된다. 서버가 강점인 델과 스토리지를 주특기로 하는 EMC는 제품 포트 폴리오 측면에서 상호 보완적이다. 네트워크 장비 부문에서 빈틈이 있기는 하지만 소프트웨어 정의 데이터센터(SDDC)로 치고 나가는 VM웨어가 이를 보완해줄 수 있다. VM웨어는 서버 가상화를 넘어 SW정의 네트워킹(SDN)쪽에서도 시스코와 일대일로 경쟁하고 있다. SW중심으로 돌아가는 SDN에선 네트워크 하드웨어보단 SW가 갖는 영향력이 커질 수 밖에 없다.
델과 EMC의 통합은 전통적인 IT인프라 업체들에겐 위협이다. 특히 HP와의 경쟁이 주목된다. 델과 HP는 x86서버 시장에서 맞수 관계다. 이런 상황에서 델이 스토리지 시장을 틀어쥔 EMC를 손에 넣게 됐다는 것은 HP 입장에선 부담일 수 밖에 없다. 스토리지 사업 자체도 타격을 입을 수 있을 뿐더러 핵심인 서버 사업도 흔들릴 수 있다. EMC의 스토리지 시장 장악력은 델이 서버 시장 점유율을 늘리는 데도 큰 힘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큰틀에서 보면 델과 EMC가 합병을 통해 클라우드 중심으로 전환되는 IT환경에서 헤게모니를 강화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델과 EMC는 합병을 통해 엔터프라이즈 기업들에게 클라우드를 위한 통합 인프라를 제공할 수 있게 됐다.
엔터프라이즈 기업들이 델과 EMC 인프라를 원할지는 장담하기 힘들다. EMC와 델은 퍼블릭 클라우드 서비스 회사인 아마존웹서비스(AWS), 마이크로소프트, 구글과도 경쟁해야 한다. 시장 분석 업체 크레딧 수세에 따르면 아마존웹서비스가 1달러를 벌면 전통적인 IT인프라 공급 회사들은 4달러의 손실을 입는 것으로 추정된다. 아마존웹서비스의 경우 매면 빠른 성장세를 구가하고 있다. AWS 2분기 매출은 18억2천만달러에 달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10억달러에서 큰 폭의 성장이다.
EMC는 그동안 데이터센터 인프라 시장 공략을 위해 자회사들 솔루션과 연동하는 '페더레이션' 전략을 강조해왔다. 클라우드 플랫폼은 VM웨어, 빅데이터는 피보탈이 역할을 맡는 식이었다. 그러나 개별 제품들이 정말 하나인 것처럼 돌아갔는지는 확실치 않다는 것이 지디넷은 지적했다. EMC가 델로 넘어간 후에도 VM웨어는 지금처럼 계속 독립적으로 운영된다. 델의 간판아래 상황이 달라질지는 미지수다.
EMC가 아니라 델이 VM웨어를 소유하게 된다는 것도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다. EMC가 VM웨어를 소유했다는 것은 시스코, HP, 레노버 등 글로벌 서버 회사들에겐 큰 위협이 아니었을 수 있다. EMC의 주특기는 서버가 아니라 스토리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델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델은 서VM웨어 서버 가상화를 활용하는 HP나 레노버 같은 회사들과 일대일로 경쟁하는 회사다. 지금 당장 HP나 레노버가 VM웨어와 거리를 두기는 힘들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MS나 오픈소스 기반 가상화 기술에 힘을 실어줄 가능성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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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C는 델과의 합병에 동의하면서 60일간의 고숍(Go-shop) 조항을 포함시켰다. 60일안에 델보다 좋은 조건을 내미는 회사가 있다면 EMC는 이번 합병을 무산시킬 수 있다. 외신들에 따르면 현재 시점에서 EMC를 인수를 위해 과감한 베팅을 할 회사가 등장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럼에도 델의 EMC 인수는 연쇄적인 인수합병(M&A) 레이스로 이어질 수 있다. 이미 시스코가 스토리지 업체 인수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돌고 있다.
HP의 경우 11월부터 기업용 솔루션을 담당하는 HP엔터프라이즈와 PC 및 프린터를 담당할 HP Inc로 쪼개진다. HP엔터프라이즈가 델과 EMC 합병의 직접적인 영향권안에 놓이게 된다. HP엔터프라이즈를 이끌 맥 휘트먼 CEO는 직원들에게 "델의 EMC 인수는 HP에겐 좋은 일"이라며 개의치 않는다는 입장을 보였다. HP가 일찌감치 추진해온 컨버지드 인프라 전략이 맞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것이다. 휘트먼 CEO는 "HP가 2년을 앞서 있기 때문에 다른 회사가 따라오기는 힘들 것이다"고 자신했다. 휘트먼 CEO는 또 델이 빚을 내서 EMC 인수에 나섰다는 점도 걸고 넘어졌다. 1년에 이자로만 25억달러 가량을 내야 하는데, 이렇게 하려면 연구개발이나 다른 핵심 비즈니스에 공격적으로 투자하기는 힘들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