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플랫폼 기업의 갑질을 막기 위해 추진했던 온라인 플랫폼법 제정을 사실상 포기하고 사전 규제 대신 사후 규제를 하기로 했다. 그동안 플랫폼 업계는 사전 규제가 플랫폼 성장을 방해하고 혁신 위축을 불러올 수 있다고 반발했는데, 이러한 의견이 일부 받아들여진 모양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시장지배적 플랫폼 기준을 완화하면서 쿠팡과 배달의민족과 같은 플랫폼 회사들은 규제 사정권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당장은 네이버와 카카오, 구글 등만 포함될 전망이다.
다만 연 매출 4조원이 넘거나 시장점유율 조건을 충족하는 즉시 규제 대상에 포함되고 야당 측에서 플랫폼 규제 법안을 발의할 가능성이 남아 있어 안심하기는 이르다는 업계 의견이 지배적이다. 여전히 해외 기업은 규제가 힘들 수 있다는 역차별 우려도 있다.
9일 공정위는 티몬과 위메프의 미정산 사태를 막고 플랫폼 공정경쟁을 촉진하기 위해 공정거래법과 대규모유통업법을 개정한다고 밝혔다.
일정 규모 이상의 온라인 플랫폼도 대규모유통업법에서 규제할 수 있게 하고 온라인 플랫폼 규제 법안 제정 없이도 기존 공정거래법을 개정해 플랫폼 기업들을 규제한다는 방침이다. 시장지배적 사업자 추정 기준을 강화해 입증책임을 부여하고, 과징금을 상향해 반경쟁행위를 신속하게 차단하겠다는 의지가 들어가있다.
그동안 플랫폼 업계에서는 당정이 추진하는 온라인 플랫폼 규제 법안 제정과 관련해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해왔다. 플랫폼 사업자의 우월적 지위 남용을 금지하기 위해 지나친 사전 규제로 플랫폼 기업 성장을 방해하고, 혁신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또한 국내 기업만 겨냥하고 있다는 역차별 문제도 지적됐다. 학계에서는 입증책임을 기업에 부여하는 것이 문제가 있다고도 꼬집었다.
공정위가 새 법안 대신 기존 공정거래법을 개정하겠다고 했지만, 개정된 내용에는 사전 규제만 빠지고 4대 반경쟁행위(▲자사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최혜대우 요구) 금지나 입증책임 등은 들어가있다. 대규모유통업 개정에는 정산기한과 에스크로(결제 대금 예치) 의무화 등도 있어 이커머스 기업들의 반발이 예상된다.
플랫폼 업계 관계자는 "티몬과 위메프 사태의 원인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며 "플랫폼 비즈니스에 대한 본질을 이해 못 한 것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단순 정산기한과 에스크로 의무화 등을 포함해 극단적이고 쉬운 방법을 선택한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플랫폼 업계 관계자는 "법안 개정 방향만 발표됐기 때문에 더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플랫폼 투자나 사업 위축이 생길 수 있다"면서 "규제가 늘어나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야당을 중심으로 플랫폼 규제 법안이 만들어질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남아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쿠팡과 배달의민족이 각각 시장점유율 조건과 연매출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규제 대상에 빠지게 되면서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별도의 플랫폼 규제 법안이 제정될 수 있다는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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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정 공정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을 포함한 야당에 대해서는 공정위가 추진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대해서 잘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노력을 할 계획"이라고 했지만 플랫폼 업계에서는 "국회가 여소야대 상태이고 민주당에서는 쿠팡이나 배달의민족 규제 의지가 강하기 때문에 법 개정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 지 알 수 없고, 민주당에서는 계속 플랫폼 규제 법안 제정을 추진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정무위원회 여당 간사인 강민국 의원이 대표발의하고, 대규모유통업법은 공청위 등을 거쳐 이달 안에 정부발의안으로 추진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