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의민족(배민) 운영사 우아한형제들이 자체 개발한 배달로봇 ‘딜리’로 지난달부터 서울 삼성동 테헤란로에서 배달을 시작했다. 딜리는 실내외 배달을 목적으로 개발됐다. 음식에 전해지는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6개 바퀴에 각각 독립 서스펜션(현가장치)을 장착했다.
로봇 업계는 특정 형태의 로봇을 만든 뒤에 사용 목적에 맞게 응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로봇 개발 비용이 상당한데다가 시장 수요가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라 이런 전략이 보편적이었다. 배민의 음식 배달용 로봇 개발이 유독 주목받는 이유다.
지디넷코리아는 딜리 개발을 담당했던 두 담당 직원을 만나 개발 과정과 향후 계획에 대해 들어봤다. 박진석(42) 로봇하드웨어팀 매니저와, 이동현(39) 로봇시스템소프트웨어팀 매니저가 인터뷰를 도왔다.
"서스펜션, 음식 안전하게 배달하는 핵심 기술"
박진석 매니저는 삼성테크윈(현재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서 약 11년간 근무하며 로봇을 개발해왔다. 자율주행 이동로봇 ‘스타-1(STAR-1)’ 등 자율주행 이동로봇과 무인수색차량 설계 업무에 참여한 이동 로봇 전문가다. 이후 2019년경 배민에 합류해 딜리 설계를 맡았다.
박 매니저는 “자율이동로봇이 구동부 자체만 본다면 기술적으로 유사한 점이 있다”며 “어떤 목적으로 무엇을 태우는지가 관건인데 딜리는 음식 배달에 초점을 맞추고 개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딜리의 가장 큰 특징은 서스펜션이다. 지면 충격에도 음식이 최대한 흔들리지 않도록 설계됐다.
박 매니저는 “6개 서스펜션을 독립적으로 구성했고, 로봇이 수동 형태로 바닥에 딱 붙어 수평을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며 “지면에 맞게 반력으로만 움직이지만, 지면에 맞게 미리 대응하는 능동 형태와 비슷하게 움직이게끔 구현했다”고 말했다.
이어 “자동차 업계에서 앞서 검증된 다양한 구조 중 로봇에 맞는 컨셉을 정하고 적절한 규모에 맞게 리뉴얼 하는 작업을 거쳤다”며 “다만 자동차보다 바퀴가 훨씬 작기 때문에 작은 충격에도 흔들림이 클 수 있어 서스펜션이 더욱 중요했다”고 강조했다.
바퀴가 6개나 달린 것도 이런 배경이 작용했다. 각 바퀴마다 모터를 달아 실외에서 울퉁불퉁한 지면을 지나더라도 충분한 추진력을 낸다. 또 바퀴는 개별 조향이 가능해 좁은 길에서도 민첩하게 주행할 수 있다.
"기술은 준비됐다…제도·인식 함께 나아가야"
로봇 제어·관제 관련 질문에는 이동현 매니저가 답변했다. 이 매니저는 LG전자 CTO부문(선행기술원)에 12년 간 재직했다. 각종 가전제품을 스마트폰으로 제어하는 백엔드 개발에 약 4년, 자율 주행을 위한 머신 비전 시스템 개발에 8년을 몸담았다.
딜리는 로봇 전면에 부착된 라이다(LiDAR)와 카메라 등 센서를 활용해 자율 주행이 가능하다. 라이다 기반 스캔 매칭 기법을 활용해 현재 위치를 추정하고 목적지까지 이동한다. 장애물을 감지하는 것뿐만 아니라 신호등을 확인하고 엘리베이터에도 탈 수 있다.
신호등을 건널 때에는 로봇 전면에 부착된 카메라를 이용한다. 주변에 사람이 많아서 시야가 가려지는 경우에는 어떻게 신호를 건널 수 있는지 이 매니저에게 물어봤다.
이 매니저는 “로봇이 조금씩 움직이며 신호등을 볼 수 있는 위치를 찾는 방법이 있고, 그 다음으로는 사람들이 건너기 시작하면 신호가 바뀌었다고 인지하도록 할 수도 있다”며 “추후 신호등 상태가 전산화되고 로봇과 연동할 수 있는 상황이 된다면 인식 품질이 훨씬 좋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로봇의 엘리베이터 탑승과 관련해서는 “기술적인 부분보다도 제도와 인식이 함께 바뀌어야 하는 부분이 많다”며 “로봇 이용이 늘어나는 만큼 발맞춰서 사회적인 수용성이 늘어날 차례”라고 말했다.
"저전력·경량화 등 개선할 점 남아있어"
딜리가 당면한 과제도 많다. 기기 개발 작업도 현재 진행형이다. 박 매니저는 “로봇을 더 가볍게, 저렴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 더 적은 전력으로 더 많이 이동할 수 있는 방법 등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누군가 로봇을 훔쳐갈 위험은 없겠느냐는 질문에 박 매니저는 “무게가 약 100kg에 달하기 때문에 그럴 걱정은 없을 것 같다”며 “(로봇을 훔치려고 하면) 아마 주변에서 큰 소란이 일어날 것”이라고 답했다.
로봇 무게도 고민거리다. 최근 개정된 지능형로봇법의 실외 이동로봇 안전인증 기준에 따르면 실외이동로봇은 무게 100kg 이하인 경우 15km/h 속도를 낼 수 있지만, 100kg을 초과하면 10km/h로 제한 속도가 뚝 떨어진다. 특히 이 무게 기준은 로봇 본체에 적재물까지 포함한 수치라, 추후 로봇이 최대 속도를 내기 위해서는 본체 무게가 약 80kg까지는 내려와야 한다.
기기 성능뿐만 아니라 주변 환경에 맞게 녹아드는 일도 중요하다. 법적으로 영상물을 저장하지 못하는 점도 아직까지는 어려움이다.
다만 지난 9월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으로 이동형 영상정보처리기기 운영 기준이 마련되면서 로봇 촬영물 활용에 물꼬가 트였다. 추후 주행 영상을 확보할 수 있게 되면 딥 러닝 기술을 고도화하는 데에도 도움을 받을 전망이다.
이 매니저는 “지금은 영상물을 법적으로 저장하지 못하고 있지만, 앞으로 샌드박스 신청을 하면 개발 용도에 한해서 영상을 쓸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배민에서 로봇을 개발한다는 의미는…"
우리나라는 로봇 이용도가 세계적으로 높으면서 동시에 로봇을 서비스하기에 악조건도 산재한 환경이다. 특히 여러 공동주택을 드나드는 배달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개발 과정에서 살펴야 할 부분이 많다. 그럼에도 두 매니저는 열정에 찬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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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매니저는 “어려운 도전을 하고 있다”며 “이전까지는 왜 로봇을 개발하는지에 대해 대답을 잘 못했는데, 배민에 온 뒤로 배달이라는 확실한 목적을 가지면서 일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 매니저는 “높은 수준의 연구·개발을 추구하는 조직에서 훌륭한 팀원들과 일하고 있어 뿌듯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