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유럽연합(EU) 디지털시장법(DMA)과 유사한 플랫폼 기업 사전규제 법안 도입을 예고한 가운데, 글로벌 전문가들은 이런 제재가 산업 성장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국내 시장 상황에 걸맞게 규제해야 한다는 신중론도 제기됐다.
티볼트 슈레펠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자유대학교 법학 교수는 6일 김희곤 국민의힘 의원과 서강대학교 ICT법경제연구소가 공동주최하고, 한국인터넷기업협회가 주관한 ‘온라인플랫폼 규제 동향 국제세미나(Ⅱ)’에서 “DMA는 디지털 시장 경쟁 촉진하는 주요 동력인 혁신을 저해한다”며 “이는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산업 성장을 방해할 것”이라고 말했다.
DMA는 구글과 애플, 메타, 아마존 등 빅테크 플랫폼 기업들을 ‘게이트키퍼(gatekeeper·문지기)’로 지정해 사전규제를 적용하는 법안이다. DMA상 게이트키퍼는 시가총액 750억 유로(약 107조원) 이상이거나, 최근 3년간 EU 내 연매출이 75억 유로(약 10조원)를 웃돌며 월간활성화이용자수가 4천500만명를 넘어선 플랫폼을 뜻한다.
삼성전자도 게이트키퍼 지정 후보로 오르내리고 있다. EU집행위원회는 이날 게이트키퍼 기업을 최종 선정해 발표할 예정이다. 게이트키퍼가 되면, 자기 회사 서비스를 우선시하거나 광고 등 개인정보 활용에 있어 규제당국 제재를 받게 된다. 위반 시 글로벌 연매출 10%, 최대 20% 과징금을 부과받는다.
적용 플랫폼 분야는 온라인 ▲중개 ▲검색 엔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동영상 공유 ▲메신저 ▲운영체제 ▲웹브라우저 ▲가상비서 ▲클라우드 컴퓨팅 등이다. EU 3개국 이상에서 동일한 서비스를 제공하면, 곧 제재 대상에 오른다. DMA는 5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DMA에는 공정위가 시행하고 있는 온라인 플랫폼 심사지침 규정 내 경쟁사 대비 자기 상품, 서비스를 우대하는 자사우대 금지 조항이 포함됐다. 슈레펠 교수는 이를 놓고, “게이트키퍼가 경쟁력을 악용해 다른 시장에 강압적인 방식으로 진입해서는 안 된다”면서도 “자사우대는 곧 기업들 사이 건강한 경쟁을 해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사전규제가 중소규모 기업들에 이익을 돌아가고, 시장 진입 장벽을 허물 수 있는 반면 되레 산업 성장을 가로막을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다. 슈레펠 교수는 사전규제가 최근 주목받는 생성형 인공지능(AI)와 같은 업계 추세를 온전히 반영하지 못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DMA상 생성 AI 사업을 영위하는 사업자는 게이트키퍼와 무관하다”며 사전규제 적용 범위를 놓고, 실효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사전규제 대신 사후 법 집행 절차를 강화하는 방안도 나왔다. 결국 DMA를 어기는 사례가 발생할 텐데, 이때 전문 인력들은 제재사항을 모니터링한 뒤 위반 여부를 따져봐야 한다. 현재EU집행위원회도 이를 위해 250명가량 직원 채용에 나섰다.
슈레펠 교수는 “그간 누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사후 시행조치를 이해하는 동시에, 제재하고 있는 관행과 분야 등을 면밀히 살펴보면 좋을 것”이라며 “사후규제에만 의존할 수 없다면, 사전규제를 적응형으로 접근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했다. 사전규제 효과를 문서화하되, 만일 규제 영향을 책정할 수 없다면 (사전) 제재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미콜라이 바르첸테비치 영국 서리대학교 법학 교수는 상호운용성을 예로 들어, DMA 불확실성에 대한 입장을 내비쳤다. 상호운용성이란 서로 다른 시스템에서 자유롭게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특성을 의미한다. 가령 카카오톡 이용자가 네이버 라인에 가입하지 않아도, 곧바로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것이다.
DMA에도 빅테크가 상호운용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다만 바르첸테비치 교수는 “DMA는 경제성을, 상호운용성은 경쟁 증진을 각각 지향한다”면서 “DMA 내 상호운용성은 단순 EU 개인정보보호법(GDPR)을 참조하는 데 그쳤다”고 말했다.
상호운용성 특징상 개인정보 유출이나 보안 등이 있는데, DMA가 이같이 예상되는 위험성을 간과한 동시에 명확성이 결여된 법안이라는 설명이다. 바르첸테비치 교수는 "이미 보안 문제가 해결된 것으로 치부되는데 이는 잘못된 생각"이라며 "이처럼 불확실성을 해소할 규제안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현재 국내에서는 '네카쿠배(네이버·카카오·쿠팡·배달의민족)' 등을 겨냥한 20개 가까운 온라인 플랫폼 규제안이 국회 계류 중이다. 윤 정부 공정위는 올 초 ‘플랫폼 독과점 규율 개선 전문가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최근까지 제재 방안을 논의, 곧 주요 방향과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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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 부위원장을 지낸 신영선 법무법인 율촌 고문은 “EU에서 빅테크 견제 목적으로 사전규제법을 만들었다면, 한국은 자국 토종 플랫폼이 경쟁력을 갖추는 등 유효경쟁이 작동하는 분야가 많아, 딱히 제재를 필요로 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했다.
신영선 고문은 슈레펠 교수 말에 공감하며, “사후 법 집행, 다시 말해 현행 공정거래법 집행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대응하면 된다”고 했다. 신 고문은 “검색 시장에서 네이버와 구글 간 시장 점유 격차가 좁혀지고, 플랫폼 시장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며 “국가 패권 경쟁으로 치닫고 있는 만큼, 사전규제 입법은 매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