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복철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이사장이 정부 R&D 예산 축소와 관련, 현장과 소통하는 합리적 조정이 필요했다는 아쉬움을 표했다. 또 출연연의 연구과제중심제도(PBS) 개혁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복철 이사장은 17일(현지시간) 독일 뮌헨 사이언스콩그레스센터에서 기자들과 만나 "예산 삭감의 방향은 맞지만 방식은 잘못됐다"라며 "예산이 비효율적으로 사용되면 현장과 소통하면서 합리적으로 조정해야지, 일괄적으로 깎으면 혼란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국민 세금을 적재적소에 잘 배치해서 효과를 높여야 하겠지만 모든 과학자들이 특정 카르텔처럼 비춰지는 지금의 상황은 아쉬울 뿐"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22일 주요 R&D 예산 연구비를 14% 삭감한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김 이사장은 출연연 비효율 개선이 필요하다는 정책 방향에는 동의했다. 국가 R&D 예산은 2019년 20조원에서 4년 사이 30조원으로 급격하게 증가했다. 이 과정에서 연구 과제가 두 배 이상 급격히 늘어나며 특정 R&D 사업에 지나치게 편중되는 문제가 나타났다. 그는 "지금은 학생이 없어서 연구를 못하지 돈이 없어서 연구를 못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라며 "예산이 늘어난 만큼 효율적 배분을 고민할 시점이기 때문에 예산 비효율을 개선해야 한다는 정부의 정책 방향은 맞다"라고 했다.
그는 출연연의 근본 문제로 연구과제중심제도(PBS)를 꼽았다. PBS는 연구자나 연구 기관이 경쟁을 통해 과제를 수주해 연구에 필요한 비용을 제공받는 체계다. 김 이사장은 "PBS로 큰 연구들이 각각의 과제로 파편화되다보니 연구자들이 장기 관점에서 연구를 책임지기보다 일부 과제 한 두 개만 맡아서 적당히 기준에 맞는 성과만 내는 문화가 형성됐다"라며 "과제가 잘게 쪼개지다보니 나오는 결과물도 큰 의미가 없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했다.
정부가 지적한 연구비 나눠먹기나 불투명한 예산 집행 등 예산 낭비 문제도 PBS 개혁으로 풀어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PBS에는 과제마다 사용할 수 있는 인건비나 직접비 등의 비중이 정해져 있다. 연구에 필요한 인건비를 거둬들이려면 과제 하나로는 충당할 수 없기 때문에 한 번에 많은 과제를 수주해야 하고, 그럴수록 직접비가 남아 당장 활용성이 적은 연구 장비를 구입하는 등 낭비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는 "결과적으로 예산 낭비의 주범은 PBS"라며 "과제당 인건비 비중을 높이는 등 제도적으로 풀어갈 수 있는 것에는 손대지 않고 예산을 일괄 삭감하는 방식을 선택한 것은 현장에 책임을 떠넘기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예산이 제대로 배분되고 있는지, 배분 과정이 적정한지 등에 대한 정확한 분석을 토대로 혁신 방향을 잡아갔다면 현장에서도 충분히 이해했을 것"이라며 "지금은 국민 세금을 낭비하는 카르텔 집단처럼 비춰지면서 연구자들이 상당히 위축된 상황"이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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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0년대 초 독일에서도 과학기술 발전이 정체되고 있다는 우려와 함께 연구 혁신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때 독일이 선택한 길은 범부처 통합 전략 수립이었다. 김 이사장은 "당시 독일 정부는 4년 동안 범부처 협의체를 만들어서 연구 현장의 소리를 들었고, 이를 토대로 만든 정책 방향이 연구 자율성을 극대화하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위한 더 많은 자유(igniting ideas, more freedom for new ideas)'"라며 "우리는 PBS 등 연구 개혁 논의를 20년 넘게 반복하고 있지만 한 발짝도 나아가고 있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뮌헨(독일)=한국과학기자협회 공동취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