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보스턴 인근에 사는 5살 소녀 이펙 쿠주는 모세혈관 확장성 운동실조 증후군(A-T, ataxia-telangiectasia)이라는 희귀병을 안고 태어났다.
A-T는 자발적 운동을 조절하는 능력이 손상되고 모세혈관이 영구적으로 확장되어 점막과 피부에 붉은 병변이 생기는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 유전성 복합신경 퇴행성 질환이다. 1-4세 사이에 발병하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몸을 가누기 어려워지고 면역이 약해져 암 발생 위험이 크다.
이같은 희귀 질환은 사망률이 높더라도 환자 수가 적어 제약 회사들이 치료제 개발에 좀처럼 나서지 않는다.
하지만 이펙은 병의 원인이 된 자신의 유전자 변이를 교정할 수 있는 맞춤형 치료제 덕분에 증상 악화를 막고 있다. 이 약은 이펙의 특정 유전자를 겨냥해 오직 이펙만을 위해 만든 치료제이다. 유전체 분석에 기반한 초고도 개인 맞춤형 치료제를 개발하려는 시도의 일환이다.
김진국 KAIST 의과학대학원 교수는 A-T 환자를 지원하는 재단인 미국 'A-T 환아 프로젝트(A-T Chinldren's Project)' 및 하버드대 의과대학과 협업해 이펙을 위한 맞춤 치료제 '아티펙센(atipeksen)'을 개발했다.
DNA에서 단백질로 유전정보를 전달하는 메신저(m)RNA와 결합해 문제가 되는 유전자의 발현을 막거나 오류를 교정하는 '안티센스 올리고핵산염(ASO)'를 활용했다.
김 교수는 앞서 2019년 하버드 의과대학 박사후연구원으로 근무하며 희귀 뇌질환을 앓는 밀라라는 어린이를 위한 환자맞춤형 치료제 '밀라센(milasne)'을 개발하기도 했다.
김 교수 등 공동연구팀은 이같은 연구 성과를 반영한 논문을 12일(현지시간) 학술지 '네이처'에 게재했다.
희귀 질환 환자에 대한 맞춤형 치료제 개발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유전체 기반 진단으로 발병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증상이 시작되기 전 선별하는 방법을 보였다. 희귀 질환 환자 맞춤형 치료에 가이드라인이 되리라는 기대다.
연구팀은 질환이나 약물에 대한 반응에 유전적 요인이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기 위해 유전체 내 모든 염기서열을 한번에 분석하는 전장유전체 분석을 활용, 환자 맞춤형 치료제 개발이 가능한 환자가 전체의 10% 정도 된다는 것을 밝혔다. 기존 유전자패널 검사로 찾을 수 있는 치료 가능 환자는 전체의 4.3% 정도였다. 유전성 희귀 질환 환자 중 맞춤형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을 2배 늘인 것이다.
또 이같은 유전체 검사를 통해 증상이 나타나기 전 미리 환자들을 찾아내는 체계를 제시해 검증했다. 조기에 치료를 시작할 수 있어 치료 효과를 높일 수 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증상이 나타나기 전 발견하고, 환자맞춤형 치료가 가능한 돌연변이를 확인하여 치료를 시작할 것이 이펙의 사례이다.
지금까지는 진단이 되더라도 대부분의 경우 치료제가 없었다. 그러나 이번 연구로 같은 질환이라도 돌연변이에 따라서 환자맞춤형 치료가 가능할 수 있음이 확인됐다. 이에 따라 유전체 기반 진단이 확산돼 환자를 조기 진단하고 하고 치료를 고려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앞으로 유전체 기반 진단 비용이 크게 떨어지면 이를 환자뿐 아니라 신생아에게도 적용, 증상이 시작되기 전 진단하고 환자맞춤형 치료가 시작되는 사례가 많아질 것으로 언구진은 기대했다. 희귀 질환 진료가 진단 중심에서 치료 중심으로 바뀌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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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교수는 "환자맞춤형 치료 전략은 현재 기술적 이유로 뇌, 눈, 간에 영향을 미치는 질환들에만 적용할 수 있지만 추후 기술 개발을 통해서 다른 질병들에도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라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한국연구재단 해외우수과학자유치사업Plus(Brain Pool Plus) 사업, 기초연구실 사업, 국가바이오빅데이터 사업, 의사과학자양성 사업, 아산사회복지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논문 제목은 A FRAMEwork for individualized splice-switching oligonucleotide therapy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