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가상자산 운용 업체 하루인베스트와 델리오가 돌연 출금을 중단하면서 잠재적인 피해 규모가 상당하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이 업체들은 전체 투자금 규모를 밝히지 않고 있지만, 수백억원 어치를 웃도는 가상자산이 묶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럼에도 이런 업체들이 법적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점에서 투자자 우려가 크다. 특히 델리오의 경우 당국에 신고한 사업자임에도, 주요한 사업 모델인 운용 서비스에 대해선 신고하지 않은 사실이 조명되면서 제도 허점이 부각됐다.
가상자산 시장에서 한 번 투자자 피해가 발생하면 규모가 상당한 점을 고려할 때 당국의 관리감독 체제가 보다 강화돼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가상자산 기업의 사업 모델을 검토할 때 사각지대가 있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때문에 현재 특정금융정보법 상 가상자산사업자 신고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21일 가상자산 업계에 따르면 하루인베스트와 델리오가 출금을 기약 없이 중단하면서, 서비스 이용자들은 집단으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 준비에 들어간 상황이다.
이번 사태는 하루인베스트의 자금 위탁 운영사인 B&S홀딩스가 경영 보고서를 허위 제공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촉발됐다. 뒤늦게 이런 사실을 파악한 하루인베스트가 지난 13일 자산 출금을 정지했다. 유사 서비스를 제공하는 델리오도 하루 만인 14일 시장 혼란을 이유로 출금을 제한했는데, 이후 이용자 예치 자산 일부를 하루인베스트에 위탁했다고 실토했다.
그 동안 하루인베스트와 델리오는 가상자산을 맡기기만 하면 은행 예금 금리 평균치를 뛰어넘는 이자율을 적용하겠다며 홍보해왔다. 그러나 실상은 타 업체에 자산 운용을 맡겨왔던 것이다. 실제 가상자산을 운용하던 업체가 수익을 내지 못한 채 자본잠식 상태가 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연쇄적으로 서비스를 정상 운영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이는 예상 가능한 수순이었다는 지적이 많다. 가상자산 상승장이 영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상승장일 땐 운용 기업이 투자 차익 중 일부를 예치 이자로 지급하면서 사업을 영위하기 쉽지만, 시장이 횡보하거나 하락장일 때에는 예치 이자 이상의 수익을 창출할 가능성이 줄어든다. 실제로 상승세가 강했던 2021년에 비해, 최근 1년여간 가상자산 시장 침체기가 길어지면서 해외 가상자산 기업들도 파산에 이른 사례가 적지 않다.
현재 금융 당국은 특정금융정보법 상 가상자산사업자 제도를 통해 기업들의 사업 모델을 점검하고 있다. 그러나 운용 서비스처럼 현 제도가 다루지 않는 영역에서 투자자 피해가 발생하는 것을 예방하긴 어렵다.
가상자산 사업 전반에 대한 허가제가 주목받는 이유다. 이미 허가제를 적용 중인 국가도 다수다. 유럽연합(EU)은 지난달 회원국 재무장관 월례 회의인 경제재정위원회에서 '가상자산시장법(MiCA, 이하 미카)'을 승인했다. 미카는 가상자산 사업을 위한 라이선스를 요구하고, 이를 획득하려면 가상자산 백서, 자본 요건과 법제 준수 여부, 투자자 보호 조치 추진 여부 등을 점검받아야 한다.
일본도 자율규제기구인 일본암호화폐거래산업협회(JVCEA)를 중심으로 회원사에 사업 라이선스를 발급하는 체제다. 사업뿐 아니라 상장 가능한 가상자산의 조건도 협회가 규정하고 있다.
황석진 동국대 교수는 "현재 가상자산사업자 신고제는 허가라는 표현을 쓰고 있진 않지만 사실상 허가제로서 운영되고는 있는데, 신고 사업자들이 가상자산 거래업자와 보관업자 정도로만 분류돼 있는 게 문제"라며 "운용 서비스를 해온 미신고 사업자들을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이 거의 없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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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현재 특금법은 자금세탁 방지에 초점을 맞춰 법제화를 급속히 추진하다 보니 투자자 보호 조치가 많이 부족하다"며 "'동일 위험, 동일 규제'라는 원칙에 맞춰 가상자산 운용뿐 아니라 파생상품 등까지 시장 전반에 대한 위험성을 점검하고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가상자산 운용 업체 관계자는 "현재는 가상자산 관련 법제화가 진행되는 과도기로 인식하고 보안 강화 등의 준비를 해왔다"며 "전통자산처럼 금융 당국의 감독 하에 서비스가 제공되길 바라는 건 업계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