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이 전기요금 인상과 맞물려 사면초가 신세에 내몰렸다. 그간 누적돼온 적자와 한전공대 감사 은폐의혹 등 수많은 악재가 한전을 짓누르는 양상이다. 당정은 연일 한전을 강도높게 비판하는 가운데 한전 책임론만으로는 직면한 경영난을 해결할 수 없다는 소리도 나온다.
당정은 이르면 이번주 내에 올 2분기 전기요금을 Kwh당 7원으로 인상하는 방안을 확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지난달 국민의힘과 정부는 네 차례에 걸쳐 당정협의회를 개최하고 인상안을 조율했지만 서민 물가 부담을 고려해 연기한 바 있다.
현재 한전이 마련한 자구방안 20조원에 더해 소폭 인상안만으로는 한전의 경영난 타개가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한전의 누적 적자는 32조6천500억원으로 하루 이자만 40억원씩 새어나가고 있다.
한전의 영업적자가 누적된 데에는 여러가지 요소가 얽혀 있다. 우선 이른바 팔수록 적자를 보는 역마진의 전력 판매 구조다. 한전은 발전사업자로부터 전력을 도매해 민수·산업용으로 다시 전력을 되파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실제 지난 1월~2월 전력도매단가와 소매단가는 kWh당 각각 165.6원, 149.7원이었다. 도매 요금을 반영하지 못한 판매 구조 탓에 팔수록 적자를 보는 구조가 고착화된 셈이다.
에너지당국은 도매요금과 국제 액화천연가스(LNG) 가격 등을 고려해 3개월마다 인상 인하 폭을 조절할 수 있는 연료비 조정단가를 시행 중이지만 이 역시 무용지물이다. 전력 도매가격은 지난해 8월 ㎾h당 198원에서 ㎾h당 200원대까지 치솟은 반면 연료비 조정단가는 상하한선 모두 5원으로 묶여 있어서다. 다시 말해 국제 에너지 가격을 유연하게 온전히 반영하지 못하는 전력 판매 구조를 손 보지 않는 한 한전의 고질적인 경영난 해결도 요원할 수밖에 없다.
당정은 이런 구조적 원인들은 외면한 채 연일 '한전 책임론'을 거론 중이다. 실례로 여권은 한전의 조직 규모가 비대하다고 지적하지만 다소 착시가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과 GDP, 인구규모가 비슷한 이탈리아의 Enel(이탈리아전력공사)는 전력 민영화 시장인 여건에도 불구하고 약 6만 여명의 임직원을 갖추고 있다. 약 2만 여명 수준인 한전의 3배에 육박한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지난달 '전기·가스요금 관련 산업계 민·당·정 간담회' 브리핑에서 "한전 직원들이 가족 명의로 태양광 사업을 한전 내 수천억 내부 비리 적발 자체감사 결과를 은폐하고 방만한 경영과 부패로 정상화하는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뿐만 아니라 한전공대 감사 은폐 의혹이 불거지며 여권에서는 도덕적 해이와 방만경영에 정승일 사장이 책임을 지고 사퇴하라는 목소리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정치권이 임직원들의 도덕적 해이와 방만 경영을 희생양으로 세워 근원적인 문제 해결책 없이 면피하려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강천구 인하대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는 "한전 경영난 타개를 위한 제도적 뒷받침은 없는 상황에서 한전의 방만경영, 도덕적해이를 원인으로 내세우는 건 옳지 못하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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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국제에너지 동향을 반영하는 요금 제도 개편과 함께 최소 두 자리 수 이상의 요금 인상이 병행되지 않으면 현재 한전의 경영난 타개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9일 출입기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전기요금 인상 폭은 아직 결정된 게 없다"면서도 "전기 요금 결정 체계에 대해서 용역을 맡겼다. 5월 내지 6월에 용역 결과가 나오면 이를 기반으로 국민적 이해 폭을 넓혀 제도와 관행을 개선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