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X 파산 사태와 가상화폐에 대한 재인식

[이균성의 溫技] 가능성과 현실의 차이

데스크 칼럼입력 :2022/11/17 13:50

사토시 나카모토가 비트코인을 개발한 계기 중 하나는 2007년부터 시작된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subprime mortgage) 사태로 알려졌다. 주택시장 거품이 꺼지자 모기지론 대부업체들이 파산하기 시작하고, 그 여파는 이듬해인 2008년에 미국 투자은행 리먼 브라더스(Lehman Brothers) 파산으로 이어졌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불러왔고 세계 경제는 1929년 대공황 못잖은 혼란에 빠졌다.

사토시는 중앙은행의 화폐 발행 독점이 세계 경제를 주기적 공황에 빠트리는 원인 중 하나로 이해했다. 특히 미국의 달러를 가장 큰 문제로 생각했다. 거품이 생기고 거품이 터지는데 미국의 무제한적인 달러 발행과 일방적인 금리조절이 결정적이라고 본 것이다. 그리고 그로 인한 경제 위기가 닥치면 그 피해는 엉뚱한 곳에서 보게 된다. 주로 미국 중심부와 거리가 먼 약자들의 피해가 큰 것.

비트코인은 중앙집중이 갖는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고안된 P2P 방식의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탈(脫)중앙화가 핵심 철학이고 기술이다. 암호화폐로서의 비트코인은 특히 발행량을 사전에 제한해 발권기관의 남용 가능성을 없애버렸다. 하지만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현재 가상화폐를 중심으로 하는 가상자산 시장에 사토시의 이런 철학이 제대로 구현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샘 뱅크먼 프라이드 전 FTX CEO

세계 3위 가상화폐 거래소인 FTX의 파산은 가상자산 시장이 도리어 세계 경제를 더 위험에 빠뜨리는 골칫거리가 될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최근 세계 경제의 위기는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무책임한 행위 탓이 적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코로나19 대유행 때 상상을 초월할 만큼 달러를 풀어 거품을 키워놓고 급작스럽게 금리를 올려 세계 경기를 급격히 냉각시키고 있다.

세계 모든 경제 주체가 1년 넘게 미국 연준의 입만 쳐다보며 일희일비하고 있을 정도다. 사토시가 리먼 사태 때 진단했던 우려가 15년 만에 정확히 재현되고 있고, 세계 각국의 경제 주체들은 그 파고 위를 위험하게 떠다니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FTX를 비롯한 일부 가상자산 시장 주체들의 행태가 FED를 뺨칠 정도로 무책임하다는 사실이다. 무책임을 넘어 범죄에 가깝다는 것이 진실이겠다.

암호화폐에 대한 불신의 힐난은 아주 거칠지만 가끔은 그게 진실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유시민 작가는 “암호화폐는 도박”이라며 “멀쩡한 진짜 돈을 주고 왜 가짜 돈을 사냐”는 귀에 쏙 들어오는 말을 한 바 있다. ‘투자의 귀재’로 알려진 워런 버핏의 단짝이자 사업 파트너인 찰리 멍거 버크셔해서웨이 부회장은 디지털 가상자산을 두고 “사기와 망상의 나쁜 조합”이라고 혹평했다.

그들의 판단이 맞을 수도 있다. FTX와 창업자 샘 뱅크먼 프리드의 몰락은 그들의 판단이 맞았음을 입증하는 사례다. FTX를 통해 가상자산을 거래하고, FTX가 발행한 FTT를 구매하고, 비즈니스 모델을 보고 FTX에 투자한 모든 행위는 유시민 작가의 말처럼 판돈 다 잃고 일어서야 하는 도박처럼 되어버렸다. 찰리 멍거의 지적처럼 그들은 고객이 맡긴 돈까지 빼돌렸다는 사기 의심까지 받는다.

문제는 그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가상자산 시장은 엄연한 실체로서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또 메타버스를 비롯한 기술적 진보방향을 고려할 때 이 실체는 시간이 갈수록 커질 가능성이 더 높다는 사실이다. 사건이 터진 뒤에야 비로소 사법기관이 응징에 나선다고 될 일이 아니다. 그 사이에 벌어진 피해는 구제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사건이 터지지 않도록 사전 규제가 더 촘촘히 정비돼야 한다.

가상자산 거래소에 맡겨진 고객 예치금을 다른 용도로 빼돌려 사용하지 못하게끔 신뢰할 만한 예탁기관에 의무적으로 신탁하게 하는 것은 규제 중에서도 가장 시급하다. 또 가상자산 거래소에 대한 성격 규정도 새롭게 해야 한다. 특히 FTX처럼 거래소가 코인을 발행하는 것은 금해야 한다. 상장되는 코인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심사과정의 엄밀성과 객관성도 더 높이는 방법이 강구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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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도 이참에 코인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한다. 코인에 대한 투자 이유 가운데 빠지지 않는 것은 변동성이 크다는 점이다. 위험하다. 투자는 해당 코인의 생태계 확장 가능성을 제대로 파악한 뒤에 해야 한다. 문제는 전문가도 심지어는 생태계를 만드는 당사자조차 그 판단이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일반 투자자로선 더 알기 어렵다. 꼭 하고 싶다면 다 잃어도 견딜 수 있는 소액만 투자하자.

코인 생태계를 만들고 그것이 토큰경제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여러 주체들이 제대로 결합되어야만 하며 중앙 집중을 원하는 각국 정부의 온갖 규제도 슬기롭게 헤쳐나아가야 가능한 일이다. 해당 생태계 미래 성장 가능성을 판단한다는 것은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을 섣불리 예단하고 한 쪽에 올인하는 일처럼 늘 위험한 일이다. 그 위험성을 잘 인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