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적 위기 때마다 재도약을 이끈 것은 디지털 분야다.”
임진국 정보통신기획평가원(IITP) 기술정책단장은 3일 서울 양재동 엘타워에서 열린 2023 ICT 산업전망 컨퍼런스에서 내년에 주목해야 할 ICT 분야 주요 10대 이슈를 꼽은 뒤 이같이 말했다.
대내외적 경제 여건이 만만치 않은 상황에 불확실성도 커졌지만 디지털 전환 흐름은 끊이지 않고, 경제 사회 문화적 대도약의 발판은 ‘디지털’에서 비롯될 것이란 뜻이다.
이날 IITP는 2023년 주목해야 할 10대 ICT 이슈로 반도체, 인공지능, 안전, 네트워크, 메타버스, 우주, 로봇, 모빌리티 혁신, 안보, 글로벌 경쟁 등의 키워드를 제시했다.
임진국 단장은 “내년 경제 여건 어렵고 디지털도 예외는 아니지만, 그 과정에서 내실을 다지는 해로 만들어야 한다”며 “글로벌 경쟁 구도 속에서 기술 패권 구도고 강해질 테지만 그럼에도 디지털 대전환의 흐름은 사회 전반에 더욱 확산될 것이기 때문에 대비해야 한다”고 밝혔다.
■ 반도체, 새 판이 열린다
IITP가 첫 번째로 꼽은 내년 10대 ICT 이슈는 반도체다. 으레 주요 ICT 이슈에 반도체가 이름을 올렸을 것 같지만 지난해 같은 발표에서 제시되지 않았던 키워드가 가장 앞으로 등장한 점이 이목을 끈다.
당장 국내 수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반도체는 메모리반도체 세계 시장 점유율 1위에도 미세공정 혁신이 한계에 이르는 어려움이 예상되고 있다. 또 경기둔화에 따른 반도체 수요 감소에 국가적 수출까지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럼에도 새로운 반도체가 내년 글로벌 ICT 판의 화두가 될 것이란 점이 주목할 부분이다.
전력소모량이나 연산처리 속도 등을 극복할 새로운 반도체가 새로운 ICT 서비스를 만들어낼 것이란 이유에서다.
이를테면 자율주행에 쓰이는 반도체는 소형화, 단순화의 흐름을 보이고 있고 AI 서비스 고도화에 따라 실시간 상황을 인지하고 처리하는 반도체가 필요해지고 있다. 컴퓨팅 인프라 고도화 측면에서 최근에는 저전력 컴퓨팅을 위한 반도체가 조명받고 있다.
이처럼 새로운 반도체 분야는 아직 지배적인 강자가 없는 초기기장으로 꼽힌다. 즉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의 경쟁은 내년에 더욱 치열해질 수 있다.
아울러 기존 반도체 기업 외에 새로운 플레이어가 등장하고 있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애플은 자체 설계 칩셋을 내세운 노트북을 선보였고 전기차 시장에 깜짝 등장한 테슬라도 362테라플룹스 성능의 자체 칩을 개발해 공개했다. 구글 역시 AI 고도화를 위해 텐서칩을 공개했고, 전자상거래기업으로 출발한 아마존도 그래비톤 칩셋 프로젝트에 도전하고 있다.
이같은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자체 설계 반도체를 내세워 자사 서비스와 인프라의 수직계열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 AI 발전 속도, 예상보다 빠르다
인공지능(AI)은 더 이상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결에 머물러 있지 않다. 광범위한 데이터 축적과 컴퓨팅파워의 발전으로 예상보다 빠르게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에 집적하는 트랜지스터 수는 1~2년마다 2배로 증가한다는 ‘무어의 법칙’과 비교해볼 때 AI는 이보다 50배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실제 과거 AI가 체스나 바둑 분야에서 대중적인 관심을 끌었다면 이제는 사람의 고유 영역으로 여긴 창작의 분야까지 들어왔다.
이같이 AI의 발전 속도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지만 국내 기업의 AI 도입을 살펴보면 실제 서비스 활용 비율은 15%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마저 단편적 고객 응대에 AI를 활용하고 있다. 기술 혁신 속도에 비해 국내 AI의 완성도나 내실은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때문에 내년의 AI 발전을 눈여겨 봐야 한다는 것이다.
임진국 단장은 내년에 벌어질 AI의 혁신으로 알고리즘과 연산속도를 꼽았다. 알고리즘은 초거대AI 기반으로 사람 지능에 근접할 정도로 발전하고 있고, 엑사스케일급 컴퓨팅으로 AI를 뒷받침할 연산처리 속도가 획기적으로 개선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멀티 모달리티 AI라는 새로운 양상이 전개되고, 과거 언어모델 중심으로 발전한 AI는 사람의 감정을 담고 유연한 사고를 통해 사회 경제 전반에서 활용도를 높일 것으로 전망됐다.
아울러 AI의 확산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인 신뢰성의 문제도 내년에 주목할 분야다. 신뢰할 수 있는 인공지능 구현을 위해 기술 제도적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고 노코드, 로우코드 등으로 AI의 접근성도 높아지고 있다.
■ 디지털 전환 시대, 안전성 화두
디지털 재난은 현재 시점의 한국에서 간과할 수 없는 화두다.
과거에도 여러 디지털 재난이 발생했지만 당시에는 일부 지역의 네트워크 먹통이나 일부 서비스의 차질 수준에 머물렀지만 디지털 연결이 극대화된 디지털 초연결 사회에서 최근 카카오 장애와 같이 거대 플랫폼 기업의 마비는 사회 전반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친다는 것이 확인됐다.
특정 기업의 서비스 중단을 넘어 디지털 주권 경제안보 측면에서 더욱 고민하게 된 이슈다.
임 단장은 “성능 중심으로 달려온 디지털 대전환은 앞으로 안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 잡아야 할 때가 됐다”며 “신뢰성과 안정성 확보는 이제 비용이 아니라 투자의 개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디지털 서비스의 안전 외에도 일상의 안전을 디지털로 지키는 방안도 고민할 때다. 예컨대 최근 벌어진 이태원 참사도 디지털이 안전 사각지대를 없앨 수 있도록 발전시켜야 한다는 뜻이다.
■ 지상 중심의 이동통신망, 우주를 품다
그동안 통신 네트워크 기술은 약 10년 단위로 발전을 해왔다. 휴대전화가 등장했고, 이후 문자 서비스가 결합됐고, 동영상 시청이 가능한 수준에서 최근 5G 시대에는 통신 기술이 다양한 이종 산업과 융합되는 형태다.
여기서 앞으로의 통신 발전은 공간의 구조적 확대로 내다보게 됐다. 지상 중심의 이동통신망에서 우주 공간과 결합된 3차원 구조의 통신망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우주인터넷 시대가 본격화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스페이스X나 아마존과 같은 기업은 우주인터넷 세대를 선점하기 위해 저궤도 통신 위성 발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주인이 없는 우주를 두고 이같은 경쟁은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아울러 최근에 출시된 애플 아이폰과 같이 위성통신 단말은 내년에 보급이 본격화될 전망이고 동시에 관련 서비스도 다양하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우주인터넷은 또 지상망 중심의 네트워크가 가진 서비스 확장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다는 점이 주목할 부분이다. 도서산간 지역의 네트워크 연결을 비롯해 지상의 재난 상황에서 연결성을 담보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네트워크 분야에서 양자를 빼놓을 수 없다.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실험실을 넘어 세상 밖으로 나오는 기술이 됐다는 이유에서다. 우선 양자암호통신은 의료, 항공, 우주 분야에서 본격적으로 상용화가 시작됐고 양자센서도 의료, 국방 분야에서 활용을 넓히고 있다.
■ 메타버스, 시장 안착 내실화 시도 본격화
메타버스를 두고 뜬구름이란 냉소도 오간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었다는 비판이다. 코로나 시기 비대면 문화의 확산 속에 메타버스가 가장 핫한 이슈로 꼽혔지만 대중의 기대에는 못 미쳤다는 것이다.
이는 킬러서비스의 부재로 꼽힌다. 즐길 거리는 많지만, 취미활동 수준에 머물러 있고 경제적 영역으로 확산되는 데 제대로 자리를 잡은 서비스가 없다는 것이다. 단순히 웹 기술의 발전 뿐만이 아니라 복합적인 기술의 동반 혁신이 필요한데 기술력이 제 궤도에 오르지 못했다는게 임 단장의 지적이다.
이에 따라 메타버스 분야에서는 시장 안착을 위한 내실화 시도가 내년에 본격화될 것으로 봤다.
우선 콘텐츠와 디바이스 분야의 발전이 주목된다. 국내에서는 게임, 엔터, 컬쳐 등 K소프트파워를 주목할 분야다. 경제 산업적으로 확산시킬 때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문화라는 설명이다. 또 콘텐츠가 아무리 많아도 이를 볼 수 있는 디바이스가 필요한데 이 부분의 경쟁이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됐다.
NFT는 메타버스와 함께 근 관심을 받다가 기대감이 줄어드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메타버스 분야에서 가상의 공간을 현실로 이어줄 주된 무기로 꼽힌다. NFT는 초기 예술작품과 같은 희소성의 특징을 내세웠지만 최근에는 멤버십, 부동산 투자증명과 같은 현실과 연동되는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임 단장은 “메타버스는 미래플랫폼으로 의심의 여지가 없으나 경제적 영역으로 확장시키기 위해서 NFT 역할이 커졌다”면서 “NFT가 유동성과 실용성을 강화해 나가면서 활용이 본격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 우주 시대, 데이터-SW 주목
지난 1992년 최초로 우리별 1호 위성이 우주에 오른 뒤 30년 만에 우리 기술로 만들어진 발사체 누리호가 우주 궤도를 돌고 있다. 이처럼 올해는 어느해보다 우주산업의 성장 토대가 마련된 해로 꼽힌다.
우주 기술은 발사체와 위성 등의 기술도 중요하지만 디지털 기술의 총 집약체로 꼽힌다.
우선 우주 데이터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점을 놓칠 수 없다. 위성산업 성장에 따라 우주 빅데이터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우주를 바라보는 데이터 뿐만 아니라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의 데이터 양도 만만치 않다는 뜻이다.
이같은 데이터를 수용하기 위해 클라우드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구글, AWS, MS 등이 이미 우주 클라우드 구축에 뛰어든 것은 크게 놀랄 일이 아니다.
아울러 우주와 지구 사이의 거리라는 물리적 한계 극복을 위해 엣지컴퓨팅의 활용이 필수적이다. 우주 데이터를 지상으로 끌어온 뒤 컴퓨팅 작업을 거칠 게 아니라 우주공간에서 직접 실시간 데이터 분석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우주 개발로 소프트웨어(SW) 발전도 비약적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발사체 설계 SW부터 발사제어 SW 등 제작과 발사 운용 단계에 필요한 SW와 탐사 데이터 영상처리 SW나 심우주 탐사체제어 SW 등 우주산업 가치사슬 내에 SW의 새로운 시장이 가득하다는 것이다.
아울러 우주산업 특성상 고비용과 고위험이 수반되기 때문에 공공과 민간의 협력이 필수로 꼽힌다. 이에 따라 공공과 민간의 매개체로 오픈소스 SW의 중요성도 점차 확대될 전망이다.
■ 로봇의 기능·공간 한계돌파
로봇의 발전도 내년에 주목할 이슈로 꼽혔다. AI와 클라우드가 결합되면서 기계적인 로봇의 발전을 넘어 기능적인 발전이 본격화됐다는 이유다.
기술적 안정성과 도입 장벽을 낮추는 경제성 확보가 여전히 과제로 남아있지만 이를 해결한다면 휴머노이드 로봇의 상업적 활용이 확산 될 것으로 예상됐다.
아울러 IITP는 로봇의 개념을 공간으로 확장시켜 눈길을 끈다.
최근 국내에서 본격화되고 있는 이음5G의 경우 빌딩 자체가 플랫폼화된 새로운 형태의 업무공간이 되고 이를 로봇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 하늘을 넘나드는 모빌리티
모빌리티의 혁신은 수년간 ICT 핫이슈로 꼽힌다. 자율주행차, 전기차 등이 모빌리티 이슈를 끌어왔다면 UAM이 새롭게 주목할 분야에 이름을 올렸다.
UAM은 하늘길을 여는 각축전을 벌이게 했다는 점이 주목할 부분이다.
임 단장은 “거리 25km 기점으로 UAM이 자동차보다 빠르다”며 “도심 반경이 현재 20km 정도로 구성돼 있는데 UAM이 도심의 반경을 100~150km로 넓힐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도심의 반경이 이처럼 넓어지면 모빌리티의 혁신에 그치지 않고 생활 전반의 풍경을 바꿀 수 있게 된다. 오는 2025년 수도권에 UAM 도입이 예정됐다. 제한적 자율운항 형태로 시작될 계획이지만 그럼에도 아주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뜻이다.
항공교통의 특성에 따라 안전이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힌다. 이에 따라 하늘길 각축전에 앞서 제도적인 준비가 선결 요건으로 꼽힌다. 내년에 무엇보다 주목해야 하는 이슈다.
■ 국방 제1요소...디지털
디지털이 전쟁 양상을 바꾸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드론이 공격을 감행하고 있고, 러시아의 침공에 앞서 우크라이나 기반시설 해킹부터 이뤄졌다. 전쟁 시뮬레이션 워게임에서도 디지털 전쟁이 재래식 무기를 앞세운 군대를 압도한다는 결과가 끊임없이 나온다.
중국과 대만의 분쟁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고 한반도 역시 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디지털 안보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사이버 공격술의 고도화로 육해공 전투중심에서 사이버 영역으로 전장이 확대되고 있다. 완벽한 보안은 없다는 제로트러스트도 재조명을 받게 됐다. 인구 감소에 따른 병력 감소도 가시화됐다.
국방 분야에서 더 이상 디지털을 좌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임 단장은 기술이 이동 방향이 과거와 달라졌다는 점을 주목했다. 미국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 사례를 들었다.
DARPA는 미 국방부 소속 연구개발기관으로 인터넷(알파넷)이 탄생된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외에도 PC 마우스, 전자레인지, 음성인식기술 등이 DARPA에서 시작됐다. 이처럼 DARPA에서 만들어진 기술이 국방 분야에 적용을 검토하다 완성도가 검증된 기술은 민간에서 쓰였다.
반대로 최근의 디지털 전환과 기술 혁신의 속도는 국방 분야가 따라올 수 없는 수준이다. 즉, 민간의 기술이 국방 속으로 들어가 디지털 기반의 혁신을 이끌어야 한다는 뜻이다.
■ 계속되는 패권경쟁...디지털 주도권은 더욱 심화
미국의 중국 견제는 계속되고 중국 또한 자국중심주의가 강화될 전망이다. 특정 품목의 수출통제를 넘어 디지털 분야의 패권경쟁도 심화될 전망이다.
기업서비스 중심의 패권 경쟁은 생산장비 분야로 옮겨갔고, 이제는 디지털을 비롯한 지식재산권(IP) 등 모든 분야가 국가 간 주도권 싸움의 도구와 목적이 됐다.
동시에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희토류와 같은 자원도 패권경쟁 무기가 됐다. 자원의 민족주의도 계속해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원자재 공급망 위기는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자원독립을 위한 국가적 대응책 요구가 더욱 거세질 수밖에 없다.
패권경쟁에서 가장 큰 전장은 기술에서 인재 분야로 옮겨가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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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단장은 “기술은 완성된 결과라면, 인재는 경쟁력을 지속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며 “디지털 전환 확산으로 디지털 인재 수요는 지속적으로 커지고 주요 국가의 인력 전쟁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각국이 인재 육성과 함께 유치 경쟁을 본격화할 것이란 설명이다. 또 글로벌 기업이 막대한 자본을 내세워 인재를 끌어모을 것이란 점도 대비할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