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통제 복용량이 늘어나던 시기 엄마는 '연명의료계획서'라는 말을 꺼냈다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2022년 연명의료결정제도 체험수기 18편 선정

헬스케어입력 :2022/09/20 18:10

# 언제부턴가 엄마가 투여받는 항암제가 더 짧은 주기로 바뀌고 있었고 중독이 될까 두려워 먹지 않았던 마약성 진통제의 복용량이 늘어나고 있었다. 바로 그 시점에 엄마는 ‘연명의료계획서’라는 말을 꺼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냥 무서웠다. 연명(延命), 겨우 목숨을 이어 살아간다는 것. 그동안 어떤 식으로든 생각하지 않으려 했던 두려움의 실체와 맞닥뜨린다는 생각에 나는 엄마에게 왜 그런 소리를 하느냐고 대뜸 언성을 높였다. 아직 멀었다고, 그런 말하지 말라는 나에게 엄마는 담담한 얼굴로 말씀하셨다. “제정신일 때, 내 스스로 결정하고 싶어.”라고.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착용, 혈액투석 같은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고. 충격으로 얼어붙은 나와 관계없이 엄마는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평소보다 많은 얘기를 하셨다. “오늘 이 결정에 너무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우리 딸, 대학 졸업할 때까지도 잠이 많아서 엄마가 깨워줬었는데. 이제 엄마가 우리 딸한테 온갖 보살핌을 받고 있더라. 마치 내가 딸이 된 것 같다. 딸내미가 엄마 밥 차려주고, 약 갖다 주고, 병원 태워다주고, 집안일 다해주고……. 더 나약해지기 전에 우리 딸 앞에서 ‘부탁’이 아닌 ‘선택’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일반인 부문 최우수상 ‘엄마의 선택’ 전샛별 씨 수기 중 일부 발췌)


# 아빠! 아빠라고 오랜만에 불러보네. 아빠 있는 그곳은 어때? 아마 여기보다는 조용하고 평안하겠지? 어느덧 그곳으로 간지도 16년이 흘렀네. 요즘 내 꿈에 젊은 새엄마랑 나오더라! 너무 밝게 웃는 아빠 모습. 아픈 모습으로 나오는 것보다 좋아서 나도 마냥 웃어버렸어. 이제 곧 추석이네!! 아빠 기일이 다가오니 더 생각나서 처음으로 이렇게 편지를 써. 아빠가 그곳으로 가기 전, 일주일을 중환자실에만 있었을 땐 우리가족은 정말 끔찍했어. DNR(심폐소생거부) 서류에 큰딸이라는 이유로 사인했던 그때의 상황은 아직도 생생해. 그 세상으로 앞장서서 밀어낸 장본인이 나인가? 아빠는 하루라도 더 있고 싶어하는데 몰라주는 건 아닐까? 하는 죄책감에 몇 년이 힘들었어. 의식이 잠깐 돌아왔을 때 아빠는 “몸에 박혀있는 호스들 빼달라고! 너무 아프다고! 집에 가자고!”눈물 맺힌 눈으로 이야기 하는 거 같았어. 그때 울기만 하고 그렇게 못 해줘서 미안해. 지금 생각하니 결국 아빠 뜻대로 해준 것은 아무것도 없었네. 정말 미안해. 그때 한없이 미숙하기만 했던 신규간호사 큰딸이 지금은 보건소에서 일하고 있어. 아빠 돌아가시고 한참 후에 ‘사전연명의료의향서’라는게 생겼어. 단어가 길지? 그런데 아빠한테 꼭 알려주고 싶어. 내가 하는 일이기도 하거든. 국가에서 이제는 개인 삶의 마지막을 준비, 선택하게 하고 그 결정을 존중해주고 있어. 하루는 아빠 닮은 어떤 아저씨가 보건소에 오셨어. 그 아저씨는 대뜸 “다 알고 왔으니까, 죽을 때 쓰는 거 빨리 써줘! 마누라 자식새끼 고생 안하게”말투며 성격 급하신 것까지 딱 아빠더라고.(종사자 부문 최우수상 ‘아빠에게’ 조경진 씨 수기 중 일부 발췌)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은 '2022년 연명의료결정제도 체험수기 공모전'(이하 공모전)에서 수상작 총 18편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8월 한달 간 전 국민을 대상으로 연명의료결정제도의 의미를 널리 알리고, 현장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실시한 이번 공모전에는 ‘연명의료에 대한 본인 또는 가족 지인들의 체험 수기' 등을 주제로 공모했으며, 10대부터 9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와 기관의 종사자 등이 응모해 제도에 대한 국민들의 뜨거운 반응을 확인했다.

이번 공모전에는 일반인뿐만 아니라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의료기관, 비영리기관, 보건소, 노인복지관, 건강보험공단)의 상담사 및 연명의료결정제도 이행을 위한 의료기관의 의료인 등 종사자들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참여했으며, 일반인‧종사자 각 부문별로 최우수상 1편, 우수상 3편, 장려상 5편 등 총 18편을 선정했다.

공모전 수상작은 일반인 부문 ‘엄마의 선택’, 종사자 부문 ‘아빠에게’가 최우수상으로 선정됐다. 최우수상 수상자에게는 보건복지부 장관상 및 상금 100만원, 우수상 수상자에게는 국가생명윤리정책원장상과 상금 50만원, 장려상 수상자에게는 국가생명윤리정책원장상과 30만원을 수여한다.

이번 공모전의 수상자 중에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한 30대 청년부터 손글씨로 사연을 보낸 70대 노인, 의료인과 상담사 등 다양했다. 특히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이 지난해 시범기간을 거쳐 올해부터 운영하는 노인일자리사업 관련 상담사도 수상하며 노익장을 과시했다.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조정숙 연명의료관리센터장은“이번 공모전 작품들의 사연은 각자 달랐지만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존중 받기 위한 마음은 같았다”며 “연명의료결정제도 시행 이후, 사회·문화적으로 죽음을 미리 준비해 존엄한 결정을 해야한다는 인식이 형성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번 공모전 수상작은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홈페이지 및 SNS 채널을 통해 선보이게 되며, 연명의료결정제도의 이해와 공감대를 확산하기 위해 오는 10월 체험 수기집으로 제작해‧배포할 계획이다.

한편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에 따르면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자는 142만2천434명(남성 22만2천915명, 여성 97만9천519명, 2022년 8월 기준), 연명의료계획서 등록자는 9만5천699명(남성 5만9천698명, 여성 3만6천1명, 2022년 8월 기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