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코딩 교육 플랫폼 엘리스는 2015년 11월 출범했다. 회사를 세운 건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전산학부 대학원생 3명. 설립 이듬해 네이버D2SF 등으로부터 시드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코딩 교육은 물론, 평가와 채용까지 ‘올인원’으로 서비스하고 있다.
공동 창업자 세 명은 현재 엘리스의 김재원 대표와 김수인 최고제품책임자(CPO), 그리고 박정국 최고기술책임자(CTO)다. 지난 1일 서울 성동구 엘리스랩에서 만난 박정국 CTO는 “언론사 인터뷰는 처음”이라며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가벼운 정적이 흐르던 찰나에, 한 가지 특징점을 발견했다. 여러 CTO를 인터뷰했지만, 박정국 CTO는 유망 기업 기술 수장으로 보기엔 비교적 앳됐다. 조심스레 나이를 물었다. 박 CTO는 1993년생으로, 만 29세다. 원래 박 CTO는 창업가가 아닌, 카이스트 교수가 되고 싶었다고.
“회사원으로 일하는 걸 선호하진 않았다. 그렇다고 창업가도 아니었다. (웃음) 연구하다 보면 결국 유용한 제품과 서비스로 연결하는 것이 중요한데, 엘리스 창업도 이와 유사했다. 김재원 대표, 김수인 CPO와 박사과정 당시 연구실에서 함께 조교로 일했다. 엘리스의 출발이었다.”
엘리스가 시작됐던 7년 전만 해도, 지금처럼 기업들이 개발자를 ‘모시는’ 형국은 아니었다. 박 CTO가 카이스트 전산학부에 입학한 2012년, 동기들은 30명 내외였다. 작년 기준 카이스트 전산학부 신입생은 200~300명으로 불어났다. 비전공자를 포함하면, 인력 규모가 몇 년 새 10배 가까이 늘어난 것.
“카이스트에선 전교생이 듣는 CS101 기초 프로그래밍 과목이 있다. 조교로 일할 때 학생들이 제출한 프로그램을 받아 채점하는 업무를 맡았다. 반복적이면서도, 다양한 데이터가 쌓였다. 이를 활용해 학생들을 위해 교육적으로 도움을 줄 방법이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엘리스가 만들어진 시초다.”
"코딩 교육 시장 급속도로 성장…엘리스도 '우뚝'"
엘리스는 온라인을 매개로 한다. 교육자는 학습자 문제 풀이 과정을 실시간 확인하며 라이브 프로그래밍, 자동 채점, 화상 강의실, 1대1 원격 코드 튜터링 등 여러 실습 교육 과정을 거쳐 학습 효과와 이수율을 제고한다.
SK, LG, 현대자동차 등 유수 기업과 서울대학교, 카이스트 등 100여개 대학교에서 엘리스를 통해 교육의 디지털 전환을 꾀했다. 정부, 공공기관에서도 마찬가지다. 누적 교육 이수자 20만명, 평균 이수율 80% 이상을 상회했다. 지난해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관한 ‘글로벌 ICT 미래 유니콘 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철저히 온라인 중심으로 운영되다 보니, 초창기 어려움을 겪었다. 기업들이 오프라인 기반의 테스트를 선호한 까닭이다. 그러다 코딩 교육 시장이 급속도로 커지면서, 이 추세에 맞게 회사들의 개발자 시험, 인재 영입 방식 등도 변화를 맞았다. 엘리스도 함께 성장했다.”
포브스가 인정한 리더…"문과생도 코딩? '컴퓨테이셔널 씽킹' 중요"
박 CTO는 올해 포브스가 선정한 ‘아시아에서 영향력 있는 30세 이하 리더’에 뽑혔다. 한국인으로 유일하게 소비자 기술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그가 수상한 소비자 기술은 포브스가 새로운 앱 개발 최전선에 있다고 강조한 분야다.
문득 부러웠다. 그가 가진 역량과 전문성을 문과생인 기자도 일정 수준 함양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근래 정보기술(IT) 업계 내 문과 계열 학생들이 파이선·C·자바 같은 컴퓨터 언어를 학습하며 기초 코딩 지식을 갖추려는 움직임과 맞물려, 박 CTO 견해를 물었다.
“파이선보단, ‘컴퓨테이셔널 씽킹’이 필요하다고 본다. 어떤 문제 상황에 직면할 때, 일반·추상화하는 사고다. 1 더하기 4가 5라는 정답보다, 두 숫자 간 합이 특정 수치로 나타난다는 개념으로 접근(추상화)하는 것이다. 컴퓨터 언어를 할 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제 내포한 문제가 무엇인지 궁리해보는 게 어떨까.”
"못 짠 코드도 배울 점 多"
개발자 교육 플랫폼에서, 사내 개발 첨병으로 있는 박 CTO. 엘리스 개발 문화는 어떨까. 3~4주 단위로 기획 디자인, 개발, 배포, 피드백까지 속도감 있는 스프린트 방식을 추구하며, 디자이너와 프론트·백엔드 개발자 등이 전 과정에 참여한다. 소통, 협업을 가장 중요시한다. 난도 있는 ‘코드리뷰’는 덤이다.
“백엔드 팀의 경우 ‘코드리뷰’에 특히 힘을 준다. 팀장들은 개발 비중이 40%, 나머지는 코드 검토에 시간을 쏟는다. 개인적으로 동료평가를 강조한다. 석사 논문도 관련 내용을 다뤘다.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접근법을 단시간 파악할 수 있으며, 아무리 못 짠 코드라도 배울 점이 많다.”
교수를 꿈꿨던 박 CTO는 창업가, CTO로서 ‘무언가 되고 있다’는 성취감이 만족스럽다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박 CTO 부모님이 지인으로부터 엘리스에 대해 전해 들을 때, 또 컴퓨터 수리기사가 엘리스를 통해 코딩을 배우고 있다는 일화를 접할 때마다 세상을 조금씩 바꾸고 있는 게 느껴진다고 박 CTO는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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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플랫폼으로서 사회 기여…코딩 교육 기회 쉽게 접하길"
지난해 회사 매출액은 110억원을 웃돌았다. 플랫폼을 내놓은 후, 재작년 30억원 영업수익을 거둔 데 이어 연신 성장곡선을 그리고 있다. 박 CTO는 엘리스가 지금보다 더 성장할 것으로 확신했다. 대학생, 회사원을 대상으로 한 코딩 교육이, 최근 초등학생들로 확장하면서 잠재적 이용자가 증가할 것이라고 그는 전망했다.
“기술 고도화. 엘리스가 나아갈 방향이다. 부정행위 방지 기능을 탑재하거나, 어떤 문제를 제시해야 최적화한 개발자를 선별할 수 있을지 등에 대해 지금도 골몰하고 있다. 교육 플랫폼으로서 시설 기부 등 사회에 기여할 방법도 모색하고 있다. 더 많은 사람이 쉽게 코딩 교육 기회를 제공받도록 힘쓰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