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증이 유전체 영역의 변이에서 비롯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연구가 나왔다. 자폐증 원인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치료법 계기의 전기를 마련했다.
KAIST(총장 이광형)는 자폐증을 일으키는 유전 변이가 유전체 중 단백질을 암호화하는 기능을 수행하지 않는 비-부호화 영역에서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규명했다고 19일 밝혔다.
KAIST 의과학대학원 이정호 교수와 바이오및뇌공학과 최정균 교수, IBS 김은준 단장, 분당서울대병원 유희정 교수, KISTI 공동 연구팀은 아시아 최초로 한국인 자폐증 가족 코호트를 대규모로 모집하고 전장 유전체 분석을 실시해 이같은 결론을 얻었다.
자폐증은 사회적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반복적이거나 틀에 박힌 행동 문제가 유아 시절 시작돼 거의 평생 지속되는 뇌 신경 발달장애다. 발병의 근본 원인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고, 공식적으로 인정된 치료 약제가 없다.
연구진은 자폐증의 원인을 찾기 위해 유전체 중 비-부호화 영역에 주목했다. 비-부호화 영역은 유전체 데이터의 98%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나, 그간 자폐증 유전체 연구는 단백질을 부호화하는 영역에 초점을 맞춰왔다.
연구진은 3차원 공간상의 염색질 상호작용(three-dimensional chromatin interaction)이라는 새 분석 방식을 사용, 비-부호화 영역에서 발생한 유전 변이가 멀리 떨어져 있는 자폐 유전자의 기능에 심각한 이상을 초래할 수 있음을 보였다.
이들은 한국인 자폐증 환자 가족으로부터 인간 줄기세포를 만들고 태아기 신경세포를 재현, 이를 연구함으로써 비-부호화 영역에 유전변이가 생길 경우 최대 50만 염기쌍(base-pair, 유전체 거리 단위) 떨어진 유전자가 비정상적으로 발현될 수 있음을 보였다.
이 연구는 자폐증의 근본 원인을 규명한 획기적 결과라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기존 연구의 한계를 넘어 그간 유전체 분야의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비-부호화 영역에 초점을 맞춘 혁신적 발상을 통해 자폐증 치료의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리란 기대다.
연구진은 IBS와 한국연구재단, 국가바이오빅데이터 사업단의 지원을 받아 2011년부터 3천 708명에 달하는 자폐 환자와 그 가족들로 구성된 대규모 한국인 코호트를 구축하고 유전체 분석을 진행하고 있다. 이번 연구는 이중 813명의 전장 유전체 염기서열을 분석한 결과를 바탕으로 이뤄졌다.
논문 공동 제1저자인 KAIST 의과학대학원 졸업생 김일빈 박사는 "신경발달장애 중 자폐증은 특히 치료가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발병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는 유전체 영역의 이상을 한국인 고유의 데이터를 사용해 순수 국내 연구진들의 힘으로 발견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라며 "이 성과가 언젠가 이루어질 자폐증 치료제 개발의 작은 발판이 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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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서울대병원의 유희정 교수는 "자폐증 발병 기전을 완전히 이해하고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아직 연구해야 할 것이 많다"라며 "유전체 연구에 대한 국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하며, 자폐증을 가진 분들과 가족들의 관심도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서경배과학재단, 한국연구재단, 보건산업진흥원사업을 통해 수행됐으며, 연구 결과는 정신의학 학술지 '분자 정신의학(Molecular Psychiatry)' 15일 자에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