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억눌린 수요가 확대되는 보복 소비가 끝나고 고물가, 원자재 가격 상승, 지정학적 위기가 겹치면서 가전 시장이 침체를 거듭하고 있다.
가전 시장은 연초부터 국내·외에서 경고음이 이어졌다. 시장조사업체 GfK는 국내 가전 시장 1, 2월 성장률이 전년 동기 대비 0.5%로, 지난해 3분기부터 하락세를 보였다고 분석했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가 올해 글로벌 TV 출하량을 2억 879만대로 2010년 이후 12년 만에 최저치일 것으로 전망했다.
연일 악재가 겹치자 증권가에서는 주요 대기업인 삼성전자, LG전자의 2분기 가전 실적도 하락할 것으로 보고 있다.
키움증권은 삼성전자 소비자가전(CE) 2분기 영업이익이 6천억원으로 직전분기 보다 27.6%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최도연·남궁현 연구원은 "CE 등 세트 사업부는 스마트폰 및 TV 수요 둔화로 예상 대비 부진할 전망"이라고 밝혔다.
키움증권은 LG전자도 2분기 실적 하락을 보일 것이라며 특히 TV 사업 부진을 예상했다. 김지산 연구원은 "팬데믹 홈엔터테인먼트 특수 소멸,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유럽 수요 급감 등으로 시장이 침체 양상을 보이고 있고, 업계 유통 재고가 많은 것으로 파악된다"고 설명했다.
그간 해외 판매에 공을 들여온 삼성전자, LG전자 등 국내 주요 기업의 수출도 녹록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통상적으로 원화 가치가 하락하면 수출에 도움이 되지만, 지금 세계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에 진입해 그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 교수는 이어 "한국을 포함해 전세계 경제가 연초부터 스태그플레이션에 진입해 어려운 상황이 지속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 가전 기업, 프리미엄 가전 판매 집중하고 틈새시장 공략
계속 되는 수요 침체 속에 가전 기업들은 프리미엄 제품 판매에 기대를 걸고 있다. 수익성 높은 프리미엄 제품으로 돌파구를 찾겠다는 전략이다.
삼성전자는 올해 2022년형 네오 QLED TV를 출시해 LG전자가 선두인 OLED TV 시장 경쟁에 뛰어들었다. 이달 초에는 두 기업 모두 유럽 디자인·가구 박람회에서 빌트인 프리미엄 인테리어 가전을 선보여 이미지를 제고했다.
이러한 프리미엄 전략은 지금 같이 양극화가 두드러진 상황에서 높은 수익성을 낸다는 분석이 따른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양극화 상황에서 경제 위기가 와도 소득 상위 계층은 소비에 큰 차이가 없다"며 "단순히 백색가전이면 통했던 시장을 지나 이제 소비력 있는 사람들이 맞춤 기능, 디자인 등 만족스러운 제품을 찾는다"고 설명했다.
최근 음식물처리기, 가정용 식물재배기, 전자레인지와 오븐을 합친 멀티 쿠커 등 신가전 등장도 잦아졌다. 관련 업계는 지난해 음식물처리기 국내 시장 규모는를 2천억원으로 추산하고 올해 2~3배 성장을 기대하고 있다. 가정용 식물재배기 시장에선 LG전자가 '틔운'을, 멀티쿠커에선 삼성전자가 '비스포크 큐커'를 내놓았다.
관련기사
- 식물생활가전 LG 틔운, 연암대와 '씨앗 키트 개발' 협력 체결2022.06.20
- 여름 시작...'얼음' 가전 판매 전쟁2022.06.15
- LGU+, '통신요금+가전렌탈 구독팩' 출시2022.06.10
- 마켓컬리, 에어컨·서큘레이터 냉방 가전 싸게 판다2022.06.09
이러한 소형 신가전은 TV, 냉장고 등 대형 프리미엄 가전처럼 기업 매출에 크게 기여하지 못하지만, 장기적인 고객 확보에 유리할 것으로 보인다.
이 교수는 "이들 제품은 집안일, 실내 식물 재배 등 고객들이 불편함을 느끼는 '페인 포인트(pain point)'를 분석해 틈새 시장을 공략한 것"이라며 "새로운 수익 창출에 더해 장기적으로 소비자들에게 좋은 기업 이미지를 인식시킨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