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낙태금지 공방, 구글을 정조준하다

[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개인정보 무단수집과 '지오펜스 영장'

데스크 칼럼입력 :2022/05/25 13:40    수정: 2022/05/26 12:48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미국에는 ‘지오펜스 영장(geofence warrants)’이란 것이 있다. 범죄 발생 지역과 시간대를 특정한 뒤 그곳에 있던 모든 이용자의 위치정보를 제출하도록 하는 영장이다.  

최근 미국에선 이 영장 사용이 부쩍 늘었다. 2020년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으로 촉발된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시위 때도 많이 사용됐다. 당시 연방수사국(FBI)이 시위 가담자 조사를 위해 지오펜스 영장을 대거 신청했다.

이 영장은 주로 위치 정보 기술을 갖고 있는 기업들에게 발부된다. 그러다보니 구글이 '지오펜스 영장'의 주타깃이다. 구글의 투명성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982개의 지오펜스 영장을 받았으나 2년 뒤인 2020년에는 1만1천554개로 증가했다.

사진=씨넷

■ '로 대 웨이드' 판례 파기 앞두고 구글에 시선 집중 

최근 미국에서 또 다시 ‘지오펜스 영장 공포’가 대두되고 있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여성의 임신중단(낙태) 권리를 보장한 ‘로 대 웨이드’ 판례를 뒤집을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1973년에 나온 ‘로 대 웨이드 판례’는 여성 인권의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판례 이후 미국에서는 태아가 자궁 밖에서 생존 가능한 임신 24주 이전에는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달 초 ‘로 대 웨이드’ 판례를 파기한 연방대법원 다수의견 초안이 유출되면서 미국 전역이 발칵 뒤집혔다. 판례가 폐기될 경우 여성의 임신중단 처벌 권한이 연방에서 각 주로 넘어가게 된다. 텍사스를 비롯해 공화당이 지배하고 있는 20여 개 주가 임신중단 수술을 불법으로 간주하는 법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선다 피차이 구글 CEO. (사진=씨넷)

그럴 경우 상황이 조금 복잡해질 수 있다. 응급 피임을 물색하는 개인들에 관한 정보를 요구하는 법원 명령장이 기술 기업들에게 쇄도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임신중단 권리 보장’ 판례가 뒤집힐 것이 확실해지면서 구글과 ‘지오펜스 영장’에 관심이 쏠리는 건 이런 상황과 관련이 있다. 낙태수술을 하려는 사람에 대한 정보나, 특정 의료 기관 인근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위치 정보를 구하는 수사기관들은 구글에 ‘지오펜스 영장’을 제시할 가능성이 많다.

이런 상황을 보다 못한 민주당과 무소속 의원들이 실력 행사에 나섰다. 더버지를 비롯한 외신들에 따르면 민주당과 무소속 의원 42명이 불필요한 개인정보 수집 및 보유를 중단하라고 촉구하는 서한을 보냈다.

선다 피차이 구글 최고경영자(CEO)에게 직접 발송한 이 서한은 론 와이든 민주당 상원의원이 주도했다. 여기엔 버니 샌더스, 엘리자베스 워런 등 저명한 의원들이 대거 참여했다.

론 와이든 의원

이들은 “임신중절은 건강관리라고 믿는다”면서 “모든 미국인들은 자신의 신체에 대한 통제권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권리가 불법으로 규정될 경우 구글의 휴대폰 위치정보 수집 및 보유 관행이 극우파들에게 악용될 우려가 있다고 경고했다.

의원들은 지오펜스 영장도 직접 언급했다. 수사기관들이 구글에 지오펜스 영장을 발부할 경우 수집해 놓은 개인정보가 인권 침해 수단으로 악용될 수도 있다는 것.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 구글의 위치 정보 수집 관행을 재설계하라고 촉구했다. 일단 개인 기반 정보 수집을 중단하라고 권고했습니다. 그리고 필요 이상 오랜 기간 개인정보를 보관하는 관행도 개선하라고 요구했다.

의원들은 위치정보 수집을 최소화하고 있는 애플과 구글을 비교하기도 했다.

■ 구글의 개인정보 수집관행, 이번엔 달라질까

구글이 개인정보 수집 때문에 논란에 휘말린 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그 동안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를 비롯해 크롬 브라우저, 지메일 같은 여러 프로그램을 활용해 개인정보를 무차별 수집해 왔기 때문이다. 

미국 밴더빌트대학의 더글러스 슈미트(Douglas Schmidt) 교수는 지난 2018년 ‘구글 데이터 수집(Google Data Collection)’이란 논문을 통해 구글의 치밀한 정보 수집 전략을 적나라하게 폭로한 적 있다.

이 논문에 따르면 구글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와 크롬 브라우저를 활용해 지속적으로 개인정보를 수집한다. 구글 플레이에서 앱을 내려받기 위해 만든 계정도 정보 수집의 중요한 창구다. 

일반적인 구글 서비스 이용자의 하루 (사진=더글러스 슈미트 논문)

계정 만들 때 입력하는 이름, 전화번호, 이메일 정보등이 개인정보 수집 관문 역할을 하는 것. 구글 페이 같은 서비스에 등록할 때는 신용카드, 우편번호, 생년월일 정보를 수집해 가고 있다.

여성들의 임신중단 권리를 보장했던 '로 대 웨이드 판례'가 폐기 위기에 처하면서 구글의 비즈니스 방식이 또 다시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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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은 한 때 '사악해지지 말자'는 슬로건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지금은 '21세기의 빅브라더'로 불리고 있습니다. '로 대 웨이드 판례'가 폐기될 경우엔 구글이 무차별 수집한 개인정보가 여성들을 탄압하는 데 사용될 수도 있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의원들의 '호소(혹은 압박?)'에 구글은 어떤 답변을 내놓을까? 21세기를 대표하는 구글의 다음 행보에 관심을 갖게 된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