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업무 효율성을 높이려면 부처간 데이터 내로남불을 벗어나야합니다."
엄석진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겸 4차산업혁명위원회(4차위) 데이터특위 위원이 진단한 데이터 기반 국가행정체계 개편 방향이다. 엄 교수는 다음달 6일 지디넷코리아가 주관해 코엑스D홀에서 3일 일정으로 열리는 '4차산업혁명 페스티벌' 오후 세션에서 '데이터 기반 국가 행정 체계 개편 방향: 데이터 공동 이용 체계 구축을 중심으로"를 주제로 강연한다.
이 행사는 4차위와 과기정통부, 방통위, 국토부, 공정거래위원회 등이 후원했다.
한국행정학회 전자정부연구회 연구이사 등을 지낸 그는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와 행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1년부터 2004년까지 2년여간 LG EDS(현 LG CNS)에서 컨설턴트로 일하며 실무 경험도 쌓았다. 2017년 서울행정학회 학술상을 수상했고, 미국 디지털 거번먼트 소사이어티(Digital Government Society)가 주관한 'DG.O 2020 컨퍼런스' 프로그램 공동 의장(2019~2020)으로 활동했다. 주요 연구 과제는 정부 디지털 혁신과 지능정보시대의 민주주의다.
발표를 앞두고 27일 지디넷코리아와 사전 인터뷰를 한 엄 교수는 발표 주제에 대해 "메타버스나 정보기술이 제공하는 기회를 활용해 국가행정체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켜보자는게 요지"라고 밝혔다. 특히 엄 교수는 부처간 '데이터 사일로(장벽)' 해소를 강조했다. 지난 수십년간 정부가 전자정부를 꾸준히 추진해왔지만 부처간 데이터 사일로가 여전하다는게 엄 교수 생각이다. "그동안 전자정부를 꾸준히 추진, 성과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부처별, 기능별로 추진하다 보니 사일로 현상이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서로 다른 정보를 활용해 정책 효과를 높일 수 있는데 사일로 때문에 이를 놓치고 있습니다."
각 부처가 데이터를 많이 축적하고 있고 또 데이터 품질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이걸로는 부족하다면서 "각 부처의 데이터 플랫폼을 연결해 부처간 데이터 사일로 현상을 극복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어 자기 부처만을 위해 데이터를 축적하다보니 데이터가 부족하다는 말이 나온다면서 "전자정부에 있는 데이터베이스(DB)도 그렇고, 부처에서 데이터 플랫폼을 분야별로 구축하고 있는데 데이터 매쉬 같은 기술을 적용해 각 부처별 데이터를 연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엄 교수는 영국이 이런 개념을 갖고 분야별 플랫폼이나 DB를 연계, 성과를 내고 있다면서 "지금 우리는 자기 부처 데이터는 물론 다른 부처 데이터를 자유롭게 볼 수 없다. 기밀 정보나 민감한 정보를 제외하고 다른 부처 데이터도 볼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노력은 중앙정부 뿐 아니라 지자체에도 해당한다.
엄 교수는 "데이터도 없는데 무슨 데이터 기반 행정이냐는 소리가 공무원들 사이에서 나온다"면서 "데이터를 공유하지 않아 부족한 거지, 데이터를 공동 이용하면 데이터가 부족하다는 소리는 많은 부분 해소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데이터 정책을 총괄하는 거버넌스 문제도 언급했다. "어떤 부처가 뭘 해야 한다고 지금 이야기하는 건 소모적"이라면서 "정보기술이 한 부처 단위에서 구현되기보다 범 국가단위에서 구현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어 "모든 부처를 아우르지만 접근 방식이 톱다운이 돼서는 안된다"면서 "각 부처가 데이터를 자율적으로 공개하고 협력하게 유도하는, 필요하면 인센티브를 주는, 그런 퍼실리레이터(촉진자) 역할을 하는 거버넌스가 마련돼야 한다"고 밝혔다. 요즘 관심이 높은 메타버스를 정부 업무에 적용하는 메타버스 정부도 기본은 데이터 공유라면서 "지금처럼 데이터 사일로가 있으면 메타버스 정부를 구축할 수 없고 비용도 많이 든다"면서 "메타버스 정부 첫 단계도 데이터 공동 이용이며, 이런 체계로 전환하자는 게 이번에 내가 발표하는 핵심 내용"이라고 말했다.
공공 부문 데이터 활성화를 위해 지난해 12월부터 '데이터 기반 행정 활성화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고 있다. 이 법에 따라 각 지자체는 4급 이상 공무원을 데이터 기반 행정 책임관으로 지정하고 데이터 기반 행정 활성화 시행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엄 교수는 "법안 마련은 최소한"이라면서 "데이터로 행정을 혁신하려면 잘 운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디지털 정부 전공인 그는 지난해 11월 '정부의 디지털 혁신'이라는 책을 공저로 내놓았다. 전자정부 등 정보기술 도입과 활용을 통해 나타난 정부의 디지털 혁신에 대한 이론과 역사, 다양한 응용과 분석 및 전망을 다뤘다. 이어 올 2월에는 'AI와 미래행정 이라는 책도 공저로 발표했다. AI 도입이 가져올 행정의 변화를 진단하고, AI 도입을 위한 제반 조건과 도전을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