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다수를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로 끌어들인 'n번방'과 유사한 범죄가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가운데, 미성년자에 대한 유해물 차단 정책이 사실상 유명무실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법은 이동통신사로 하여금 청소년 유해매체물과 음란정보에 대한 차단 수단을 제공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이통사들은 청소년 가입자 기기에서 사용할 수 있는 유해물 차단 앱을 제공 중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런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 앱 설치율이 낮을 뿐더러, 이런 현황을 개선하기 위한 사업자와 정부 노력도 부족한 상황이다.
앱 설치율을 끌어올리고, 관리·감독이 강화된다 하더라도 빈틈이 존재한다. 유해물로 신고된 콘텐츠만 차단된다는 점이다. 유해물 판별 주체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준비 중인 영상 DNA 기반 필터링도 신고된 콘텐츠와 원본이 동일한 영상들을 걸러내는 방식이라 이같은 한계가 극복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이통사·방통위, 유해물 차단 앱 우회한 청소년 방치"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르면 이통사는 청소년의 이동통신 단말에 유해물 차단 수단을 제공해야 한다. 이에 SK텔레콤은 'T청소년안심', KT는 'KT자녀폰안심', LG유플러스는 'LGU+자녀폰지킴이' 앱을 통해 유해물 차단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통사는 청소년 사용자가 유해물 차단 앱을 삭제하거나 앱 작동이 15일 이상 되지 않을 경우 매월 부모 등 법정대리인에게 해당 사실을 통지해야 한다. 방송통신위원회도 이에 대한 정기 점검 의무가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런 관리·감독이 제대로 되지 않아 유해물 차단 앱 설치율이 절반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작년 국정감사에서 정필모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유해물 차단 앱 설치율이 평균 38%라고 밝혔다. SK텔레콤은 54.8%, KT는 24.7%, LG유플러스는 17.7%로 조사됐다. 차단 부가 서비스 가입율은 3사 모두 거의 100%에 육박했으나, 실제로 앱을 통해 보호를 받는 청소년 이용자 비중은 괴리가 있다는 것이다.
정필모 의원은 "방통위는 정기적으로 점검을 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으나, 차단 앱 설치율을 보면 이통사의 안내와 정부의 점검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신고 기반 유해물 차단으론 한계…텔레그램·다크웹 대응도 기대 어려워
유해물 차단 앱이 제대로 보급되더라도 문제가 남아 있다. 이는 각사 앱에서 활용하는 유해물 데이터베이스(DB)가 방심위에서 제공하는 정보를 토대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방심위는 불법·유해정보 및 디지털 성범죄 신고를 받고 있다. 심의를 거쳐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최종결정되면 이 DB에 등록이 되는 식이다. 방심위에 따르면 현재 청소년유해매체물로 등록된 건수는 약 수백만건 수준이다.
이는 청소년을 유해물로부터 완벽히 차단하긴 어려운 방식이다. 신고되지 않은 유해물은 미성년자에게 계속 노출된다. 신고가 되더라도, 심의 단계를 거치기 때문에 유해물로 최종결정이 되기까지의 시차가 발생한다. 이 시간 동안 해당 콘텐츠에 접근하는 미성년자를 보호하기가 어렵다. 또 방심위가 현재처럼 정쟁 등의 이유로 심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을 경우 유해물 차단도 미뤄지게 된다.
특히 불법촬영을 비롯한 디지털 성범죄물 유포 문제가 심각해지자 방심위, 방통위, 여성가족부, 경찰청은 지난 2019년 11월 '공공 DNA DB'를 구축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는 각 기관별로 보유한 성범죄물 영상에서 DNA 값을 추출해 이와 동일한 DNA를 가진 영상을 웹하드 사이트에서 일괄 차단하겠다는 계획이다. 기존 해시값 기반 차단은 파일 속성이 조금만 바뀌어도 성범죄물을 걸러내지 못한 반면, DNA값 기반 차단은 이런 문제를 극복한 방식이다. 그러나 이 또한 신고된 영상물에만 적용된다는 한계를 동일하게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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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후 규제가 고도화돼 웹하드 외 사이트로 적용 대상이 확대되더라도 해외 사이트의 경우 원활한 협조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도 한계로 꼽힌다. 특히 n번방 사건 범죄자들이 보안 메신저 '텔레그램', 특수한 브라우저를 통해 접근할 수 있는 '다크웹' 등을 이용한 점도 n번방 재발 방지책이 효과적일 것으로 기대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하)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