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하반기부터 시작된 PC 그래픽카드 수급난이 게임 수요 폭증과 암호화폐 채굴 등 영향으로 역대 최악의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코로나19로 각국 정부가 봉쇄 조치를 취하자 게임을 즐기기 위해 그래픽카드 수요가 증가한 데다 단기 투자처를 잃은 돈이 암호화폐 시장으로 몰리면서 시세 차익을 노린 채굴 수요까지 동시에 폭발했다.
그러나 양대 그래픽카드 제조사인 엔비디아와 AMD는 그래픽칩셋 생산량을 더 이상 늘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교착상태가 언제 개선될 지도 아직 불투명하다.
■ 게임 수요·암호화폐 채굴 수요 동반 상승
올해 2월 현재 벌어지고 있는 그래픽칩셋 수급난은 2017년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당시에도 암호화폐 채굴 수요가 치솟으면서 엔비디아 지포스 시리즈 대비 연산 효율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던 AMD 라데온 그래픽카드가 품귀현상을 빚었다.
그러나 2017년 말부터 암호화폐 채굴이 소강상태에 들어가자 그래픽카드의 전통적인 수요처인 오버워치, 배틀그라운드, 포트나이트 등 FPS(일인칭시점슈팅) 게임이 부상했다.
특히 대표적인 고사양 게임으로 꼽히는 배틀그라운드는 그래픽카드 업그레이드 수요를 부채질했다.
또 코로나19 범유행 이후로는 집 안에서 안전하게 즐길 수 있는 게임이 인기를 얻었다. 시세가 요동치는 비트코인 대비 변동폭은 적지만 안정적인 수익을 거둘 수 있는 이더리움 채굴에 많은 자원이 투입되고 있다.
■ 생산 즉시 채굴장 끌려가는 그래픽카드
현재 생산되는 엔비디아 지포스 RTX 30 시리즈 그래픽카드와 AMD 라데온 RX 6800/6900 등 최신 그래픽카드 생산량 중 상당 부분은 중국이나 러시아 등지로 대량 흡수되고 있다.
특히 주요 그래픽카드 제조사 시설이 있는 중국에서는 이더리움 채굴 성능이 다른 제품 대비 우수한 지포스 RTX 3080 탑재 그래픽카드가 공장 문 밖을 나서는 즉시 대량으로 팔려나가고 있다.
지난 해 말에는 중국 소재 MSI 공장에서 시가 3억 8천만원에 달하는 지포스 RTX 3090 그래픽카드 220여 장이 도난당하는 일도 벌어졌다. 그래픽카드 단품을 구하지 못하자 게임용 노트북까지 암호화폐 채굴에 동원되는 실정이다.
■ 구형 그래픽칩셋 재생산...수요 분산 안간힘
상황이 이렇다보니 일반 소비자에게 공급되어야 하는 그래픽카드 물량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엔비디아는 초반 물량 확보를 위해 지포스 RTX 3060 탑재 그래픽카드 출시일을 한 차례 연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익명을 요구한 외국계 제조사 국내 유통사 관계자는 "각 업체가 받아 든 물량은 두 자릿수를 약간 넘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엔비디아는 2019년 출시한 지포스 RTX 2070, 2016년 출시한 지포스 GTX 1050 Ti 등 잠시 생산을 멈췄던 그래픽칩셋까지 다시 생산하며 수요를 분산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또 이번 주 출시될 지포스 RTX 3060 그래픽카드에서 이더리움을 채굴할 때는 효율을 절반으로 떨어뜨리는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그래픽카드 제조사들은 이런 엔비디아의 조치가 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 공급 확대도 난항.."수요 감소 기다릴 뿐"
현재 그래픽칩셋 시장은 수요가 공급을 지속적으로 넘어서는 상황이다. 엔비디아 역시 삼성전자 뿐만 아니라 TSMC 등으로 칩셋 생산 확대를 고려하고 있지만 현재 TSMC의 생산 물량을 추가 확보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특히 삼성전자 8N 공정에서 생산중인 물량을 소화할 수 있는 7nm 공정 중 대부분은 AMD가 활용하고 있다. AMD 역시 플레이스테이션5와 X박스 시리즈X 등 콘솔게임기용 프로세서 생산을 우선하고 있어 라이젠 프로세서·라데온 그래픽칩셋 생산량 확보에는 무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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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 대신 콘솔로 게임을 즐기거나, 혹은 클라우드 기반 게임 스트리밍을 선택하는 소비자들도 적지 않다. 이르면 3분기 이후 출시될 또다른 대작인 '디아블로 2: 레저렉션'도 업그레이드 수요를 부채질할 복병으로 꼽히고 있다.
취재에 응한 각 제조사·유통사 관계자들 역시 입을 모아 "게임 수요나 채굴 수요 중 한 쪽이라도 줄어야 상황이 개선될 수 있지만 이런 일이 언제 일어날 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