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자들은 여전히 부인하지만 애플카를 둘러싼 애플과 현대자동차그룹 간 협력설은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많은 매체가 애플과 기아의 계약이 임박했다는 CNBC 보도를 전했다. 애플 협력 상대가 기아든 다른 완성차 업체가 되든 애플카 윤곽이 드러나는 것은 시간문제다.
애플카는 전기자동차에 자율주행기술을 얹힌 전기자율주행차로 굳어가고 있다. 사실 전기자율주행차는 테슬라가 먼저 시장을 확대해 나가고 있고 구글·바이두 등 정보기술(IT) 업체가 시장 형성에 열을 올리고 있다.
업계가 애플카에 긴장하는 것은 과거 아이폰의 혁신성을 맛보았기 때문이다. 같은 전기자율주행차로 얼마나 혁신적이고 차별화한 플랫폼을 만드느냐가 새로 열릴 시장을 평정할 관건이다.
애플카 대응할만한 인포테인먼트 키운 車 업계
국내에서 가장 먼저 애플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카플레이)이 탑재된 차량은 2015년 출시된 한국GM ‘더 넥스트 스파크’다.
당시 자동차 업계와 IT업계는 카플레이 도입에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본격적으로 자동차와 스마트폰의 경계가 사라질 수 있을 것이라는 예측도 나왔다.
카플레이는 도입 초기 국내 사정과 어울리지 않은 콘텐츠를 갖췄다는 평가를 받았다. 자체 지도 앱도 국내 도로 사정을 전혀 반영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받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카플레이는 국내 소비자들에게 친숙한 존재가 됐다. 최근에는 지도와 음악 콘텐츠를 동시에 띄울 수 있는 기능이 더해졌고, 국내에서 많이 쓰이는 T맵, 카카오내비, 네이버 지도 등 모바일 내비게이션 앱과 호환되기 시작했다. 멜론과 벅스뮤직 등 국내 음악 콘텐츠 앱도 카플레이와 연동된다.
초기 카플레이는 아이폰과 차량을 USB 케이블로 연결해야 했지만, 최근에는 USB 케이블 없이도 작동되는 개념으로 발전했다.
애플카 시대가 본격적으로 개막하면 아이폰 없이도 카플레이가 제대로 작동될 수 있는 세상이 올 전망이다. 카플레이 사용자 경험이 풍부해지면 자동차 관련해 생태계를 형성해 온 다양한 국내 업체 입지가 사라질 수 있다는 걱정도 있다.
하지만 카플레이 국내 도입 후 국내 완성차 업체들은 빠른 속도로 자체 인포테인먼트 기능을 키우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카플레이 등 애플 차량용 OS에 대적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전략은 카카오 음성인식이다.
카카오 음성인식은 초기에 내비게이션 경로 검색까지 가능했지만, 최근에는 자동차 주요 기능까지 컨트롤하거나, 원격으로 가전제품을 제어할 수 있는 수준까지 발전했다.
지난해 연말 공개된 제네시스 GV70에는 카카오 음성인식 주요 콘텐츠가 센터페시아 디스플레이까지 표출되는 기술까지 적용됐다. 차량과 사용자 간 소통 영역을 넓히기 위한 시도다.
현대차그룹은 제네시스 GV70에 지니뮤직 콘텐츠도 추가했다. 스마트폰 유선 또는 무선 연결 없이 자체 통신 모듈을 활용해 새로운 음악을 지니뮤직으로 즐길 수 있다. 정기 구독으로 즐길 수 있는 애플 뮤직 등을 겨냥한 시도로 평가된다.
현대차그룹은 그랜저·카니발 등에 후석 인포테인먼트 콘텐츠 시스템을 도입했다. 뒷좌석 승객을 위해 멜론·유튜브 콘텐츠를 제공한다. 특히 카니발 후석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어린 아이들을 위한 핑크퐁 콘텐츠를 추가했다. 애플 카플레이가 지금까지 제공하지 않았던 색다른 콘텐츠를 추가해 차별화하겠다는 전략이다.
현재 국내외 판매 중인 테슬라 차량은 애플 카플레이와 구글 안드로이드 오토 등이 연동되지 않는다. 자체 소프트웨어(SW) 속 스트리밍 콘텐츠를 활용해 운전자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한 목적이다. 향후 애플카 시대를 대비하기 위한 순차적인 대응체계로 풀이가 된다.
테슬라코리아는 지난해 커넥티비티 구독 서비스를 시작했다. 1년간 무료 체험 기간을 거쳐 유료로 전환한다. 월 7천900원을 내면 실시간 교통정보, 위성 지도, 비디오 스트리밍, 음악 스트리밍, 인터넷 브라우저 등을 쓸 수 있다.
테슬라는 현재 유튜브·넷플릭스·트위치 등 국내외에서 널리 쓰이는 콘텐츠를 차량 내에서 즐길 수 있다.
미국 전기차 전문 매체 일렉트렉에 따르면 테슬라 내부에서도 애플 뮤직 콘텐츠를 즐길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테슬라가 자체 SW로 애플 뮤직 콘텐츠를 적용한다면 앞으로 애플카 내부 OS와 대등한 경쟁을 펼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애플이 배터리 업계에 던진 숙제 ‘애플카’
글로벌 전기차 업계는 주행거리가 길고 생산단가는 낮으며, 안정적인 배터리 수급에 사활을 걸고 있다. 애플도 이러한 꿈의 배터리를 애플카에 탑재할 것으로 보인다. 주행거리는 배터리 밀도에, 생산단가와 안정성은 배터리 소재 원료에 달렸다. 가격경쟁력이 높은 원재료로 더욱 고도화한 배터리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애플카를 바라보는 배터리 업계 숙제다.
애플이 원하는 배터리가 무엇일까. 대략적으로라도 알아보기 위해 시리즈 1회에서 언급한 ‘로이터’ 보도를 다시 확인했다. 로이터는 지난해 말 ‘애플이 2024년 애플카를 내놓을 가능성이 있다’며 ‘모노셀(Monocell)’을 예로 들었다. 모노셀은 배터리 팩에서 파우치와 모듈을 없앤 디자인이다. 팩 내부 공간을 여유 있게 확보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더 넓은 공간에 더 많은 활성물질을 넣을 수 있어 주행거리도 늘릴 수 있다.
모노셀 디자인과 함께 언급되는 설 가운데 하나는 애플이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사용을 검토한다는 것이다. 값비싼 코발트 대신 철을 사용하는 LFP는 다른 배터리보다 과열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아 안전하고 경제적이라는 평가다. LFP는 최근 리튬이온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 화재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대안으로 꼽힌다.
LFP는 테슬라가 최근 일부 전기차 모델에 적용하기 시작한 배터리다. 공급은 중국 CATL이 맡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한술 더 떠 “애플이 이미 CATL과 협력관계를 구축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외신과 업계가 이 배터리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 성능보다 가격경쟁력, 그리고 안전성이 애플카의 우선순위에 있지 않을까 하는 추측도 해볼 수 있다.
그럼에도 전기차배터리의 지향점은 에너지밀도 고고익선(高高益善)이다. 대표적인 예가 국내 업계가 주력해온 니켈코발트망간(NCM), NCA 배터리다.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이노베이션 등 국내 3사는 ‘어떻게 하면 에너지밀도를 높일까’라는 질문을 해결하는 데 집중하는 모양새다.
LFP를 바라보는 업계 시선도 비슷하다. 삼성SDI와 LG에너지솔루션은 LFP배터리를 두고 ‘미래 성장 가능성이 제한적일 것’으로 평가했다. 코발트를 사용하지 않아 값싸고 화재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건 장점이지만 무겁고 에너지밀도와 순간 출력이 약한 점이 전기차배터리로는 치명적인 단점으로 작용한다. LFP가 앞으로도 주행거리가 짧은 전기차 모델이나 배터리를 많이 탑재하는 전기버스 등에 제한적으로 사용될 것이란 관측이다.
국내 업계는 일찍부터 NCM 등 삼원계 배터리가 장기적으로 시장 주류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니켈 함량을 높여 에너지밀도를 극대화하는 ‘하이니켈’ 양극재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가격 변동성이 큰 코발트 비중을 낮추고 알루미늄을 추가해 출력을 높인 LG에너지솔루션의 ‘니켈코발트망간알루미늄(NCMA)’, 망간 대신 알루미늄을 넣은 삼성SDI의 ‘NCA’가 대표적인 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하반기부터 NCMA 배터리를 고객사에 공급한다. 테슬라가 생산하는 ‘모델 Y’에 이 배터리가 탑재될 예정이다. 코발트 비중을 5%로 낮추고 니켈 함량을 90%로 높여 1회 충전으로 600km 이상 주행이 가능하다.
삼성SDI도 올해 출시하는 젠5(Gen.5, 5세대) 배터리에 니켈 함량 88%의 하이니켈 NCA 양극재를 적용한다. 삼성SDI는 앞서 같은 기술을 전동공구용 원형배터리에 적용해 성능과 양산성을 검증한 바 있다.
앞서 언급한 배터리들은 저마다 한계점을 지닌다. 에너지밀도가 높으면 안정성이 다소 떨어지거나 안정성을 높이고 가격을 낮추면 성능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다.
업계는 한계점을 최소화하는 ‘꿈의 배터리’인 전고체전지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전고체전지는 배터리 3대 요소 가운데 하나인 전해액이 고체여서 성능과 안정성을 높일 전망이다. 삼성SDI는 전고체전지 양산 목표 시점을 2027년으로 잡았다. 2023년과 2025년에 각각 소형 셀과 대형 셀 검증을 마칠 계획이다.
LG에너지솔루션도 상용화 시점을 2028~2030년으로 내다봤다. 애플의 전통적인 협력사인 폭스콘도 전고체전지 기술 상용화 시점을 2024년으로 설정했다.
애플이 완성차 시장에 진입한다는 것은 배터리 업계에도 커다란 시장이 열릴 기회다. 애플카 등장으로 완성차 OEM이 확대된다는 측면은 배터리 업계에 긍정적인 신호이기 때문이다. 완성차와 배터리 업계 간 합종연횡도 더욱 활발하게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완성차 업계가 너 나 할 것 없이 전기차 생산에 몰두하는 상황에서, 전기차 핵심 부품인 배터리의 원활한 수급을 위해 국내 업계와 협력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테슬라와 일본 파나소닉, BMW와 삼성SDI 등이 대표적 예다.
애플카를 둘러싼 이 같은 다양한 추측에 배터리 3사 관계자들은 “업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분명한 것은 업계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목표는 배터리 공정 혁신이다. LFP·NCM 등 배터리 화학·설계 측면을 넘어 배터리 전극공정과 셀조립 공정에 새로운 공정을 도입해 품질을 높이고 가격경쟁력도 높이겠다는 게 국내 업계의 전략이다.
국내 차량용 반도체 아직 걸음마…선택과 집중 통한 경쟁력 키워야
애플이 전기자동차에 완전 자율주행기술을 더한 애플카로 과거 아이폰처럼 스마트혁명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애플과 우호적인 협력관계를 구축해온 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 업계에는 새로운 고부가가치 산업의 과실을 따먹을 수 있는 기회가 오는 셈이다.
특히, 애플은 운전자 개입 없이 차량 스스로 모든 주행 상황을 제어하는 ‘레벨5(국제자동차기술자협회 분류 기준)’ 자율주행 기술을 애플카에 접목할 것으로 예상된다.
레벨5 완전 자율주행차를 개발하려면 주행환경을 빠르게 인식할 수 있는 ‘센서’부터 차량 위치를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게 도와주는 ‘맵핑’, 센서로부터 수집된 방대한 데이터를 빠르게 저장·처리할 수 있는 ‘프로세서’, 도로 환경에 따라 주행경로를 제어하고 운전자에게 필요한 각종 정보를 제공하는 ‘커넥티비티’ 등 핵심기술이 필요하다.
애플카로 촉발할 완전 전기·자율주행차 시장에서 먼저 핵심기술을 확보해야 한다.
문제는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한 국내 디스플레이 업계와 달리 반도체 업계는 자율주행 관련 기술력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LG디스플레이는 2019년 차량용 디스플레이 시장(LCD, OLED 포함)에서 20.4% 점유율로 세계 1위를 기록한 이후 화면을 자유롭게 구부렸다 펼 수 있는 플라스틱OLED(POLED)를 앞세워 후발주자와의 격차를 벌리고 있지만, 반도체 업체는 차량용 반도체 시장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 애널릭스트에 따르면 글로벌 차량용 반도체 시장은 인피니언 테크놀로지스, NXP반도체, 르네사스, 텍사스인스트루먼트,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등 주요 해외 업체가 전체 시장의 49%(2019년 기준)를 차지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2018년 차량용 프로세서 ‘엑시노스 오토’와 차량용 이미지센서 ‘아이오셀 오토’를 출시하며 차량용 반도체 시장에 진출해 아우디와 테슬라 등에 공급하는 성과를 냈지만 아직 시장에서 차지하는 존재감이 미미하다는 게 업계 평가다.
한국자동차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자율주행 기술 확대로 차량용 반도체 수요가 급증할 전망이지만, 국내 차량용 반도체 관련 산업 생태계는 미미한 상황”으로 진단했다. 보고서는 “차량용 반도체 산업은 범용 제품에서 맞춤형 제품 중심으로 전환되고 있다”며 “국내 업계가 잠재적 경쟁력을 보유한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등 차세대 품목 중심으로 산업 생태계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자동차용 반도체는 자동차가 전자화하면서 자동차 한 대에 들어가는 반도체 수가 200~300개까지 늘어났다. 앞으로 전기자율주행차 시장이 활성화하면 적용되는 반도체 수는 다시 10배 가량 늘어 2000개 이상이 될 전망이다. 더불어 관련 시장은 2019년 418억달러 규모에서 2022년 553억달러, 2024년 655억달러로 급격한 성장이 예상된다.
국내에서는 삼성전자를 필두로 AP, 텔레매틱스(TCU) 등 일부 차량용 반도체 분야에 새롭게 진출하고 있으나 아직 산업 생태계 기반이 미약하다. 완성차 업계의 해외 업체 의존도가 높은 이유다.
이지형 자동차연구원 연구전략본부 연구원은 “우리나라가 잠재적 경쟁력을 보유한 AP, 셀룰러-차량·사물통신(C-V2X)용 칩셋 등을 중심으로 산업 생태계(설계→생산)를 구축하고 미래 핵심 시장인 자율주행 AI 반도체 시장에도 도전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눈여겨볼 부분은 최근 삼성전자가 차량용 반도체를 포함한 비메모리 반도체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는 측면이다.
삼성전자는 자율주행기술과 관련, 하만과 협업해 5G 기반 텔레매틱스 솔루션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고 5나노미터급 차량용 파운드리 플랫폼 도입을 검토하는 등 차량용 반도체 관련 포트폴리오를 지속 확장하고 있다.
최근 실적발표에서는 3년 안에 의미 있는 인수·합병(M&A)를 추진하겠다고 언급, 삼성전자가 NXP반도체, 텍사스인스트루먼트, 르네사스 등 차량용 반도체 선도 기업을 중심으로 M&A에 나설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는 초미세 공정 기술을 무기로 파운드리 시장에서 세계 2위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애플이 아이폰처럼 애플카에서도 TSMC와 삼성전자를 핵심 파트너사로 두고 협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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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주요 완성차 업체와 차량용 반도체 업체는 현재 레벨2~3 수준 자율주행기술을 개발하는 수준”이라며 “완전 자율주행기술을 적용할 애플카는 기술적인 한계로 일러야 2030년께에나 시장에 나올 것”으로 내다봤다.
이 관계자는 “애플카 출시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있는 만큼 삼성전자와 같은 후발 주자의 시장 진입이 예상되고, 특히 삼성전자가 자율주행기술의 핵심인 고성능 프로세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어 성장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