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서적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인공지능(AI) 반도체 분야 세계적 석학인 김정호 KAIST 전기 및 전자공학부 교수가 최근 '공학의 미래'라는 신간을 발간했다. 1996년부터 KAIST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는 그는 고속 반도체 설계 전문가이자 AI 반도체 분야 선구자다. AI 반도체로 주목받고 있는 'HBM(High Bandwidth Memory)'을 개척했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는 그를 HBM 메모리 반도체 분야 세계 1위 연구자로 선정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외국에서 반도체 관련 책을 낸 적은 있지만 대중서는 '공학의 미래'가 처음이다. 27일 전화 인터뷰에서 책을 낸 이유를 묻자 그는 두 가지라고 했다. "첫째, 대한민국은 디지털 급변과 코로나19로 사회적·문화적·기술적 문명 교체 위기에 직면해 있다. 실업·빈곤·교육 고령화 디지털 격차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 위기이자 기회다. 이들 문제를 디지털 기술과 제대로 된 공학으로 헤쳐나갔으면 해서다. 둘째, 사회경제적으로 영향력 있는 서적들이 대부분 외국책을 번역한 거다. 우리나라 사람이 직접 쓴 책은 드물다. 이를 파괴하고 싶었다. 영문 버전도 생각하고 있다."
애초 그가 쓴 내용은 500페이지의 방대한 분량이였다. 대중서임을 감안해 페이지를 줄였다. 책에서 그가 특히 강조한 건 '공학의 변화'다. '도그마'에 빠진 현재의 공학을 뜯어고쳐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 디지털 강국이 될 수 있다는 거다. "현재의 공학은 너무 쪼개져 있다. 칸막이가 있고 분절적입니다. 자기 분야만 사수하려고 하니 논문만 양산한다. 융합이 중요하다. 미래로 가려면 융합을 해야 한다." 물리와 반도체를 전공한 그는 현재 면역학 책을 열심히 읽고 있다. 그 자신이 '융합'에 열심이다.
김 교수는 융합과 창조, 원천을 기반으로 우리 공학이 궁극적으로 '플랫폼'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플랫폼으로 구성한 기술이 미래를 해결하고 부가가치도 창출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가 말하는 플랫폼은 수직계열화를 통한 시너지다. 반도체와 부품, 소프트웨어, AI, 콘텐츠, 서비스를 수직적으로 긴밀히 연결, 고부가 시너지를 내자는 거다. 즉, 맨 밑에 반도체와 부품을 놓고 이 위에 AI와 SW, 콘텐츠, 서비스를 차례로 올려 세계 제일의 플랫폼을 만들자는 거다.
김 교수는 "지금이야말로 대한민국이 4차산업혁명 시대의 `퍼스트무버'로 치고 나갈 최적기"라며 "우리나라는 자동차와 가전, 스마트폰 등 제조 기반이 탄탄하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하다"고 해석했다. 오늘날과 같은 변화무쌍한 시대에는 '창조성'과 '원천성'이 중요하다면서 우리 공학이 '빠른 추격자' 성장 모델에서 벗어나 "정해진 이론과 규칙을 뛰어 넘는 과감한 도전에 나서야 한다"면서 "제도 보다 먼저 우리 의식과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김 교수는 오래전부터 AI와 SW인력 10만명을 양성해야 한다고 주창했다. 인력 양성에 성공하면 우리나라가 미국, 중국에 이어 세계 3위 디지털 강국이 될 수 있다면서 "모든 대학에서 AI를 배워야 한다"면서 "세계 최고 수준 AI 코어(핵심) 인력이 100명은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2명 밖에 없다"며 아쉬워했다.
AI와 수학은 뗄 수 없는 존재다. AI는 '수학 덩어리'나 마찬가지다. 김 교수도 책에서 수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디지털 공학이 기초로 돌아가면 전부 수학"이라면서 중고등학교와 대학교 수학 커리컬럼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가 무인자율차에서 세계 1등이 됐으면 좋겠다면서 한글을 잘 하는 인공지능과 AI반도체를 한국이 집중해야 할 아이템으로 꼽았다.
김 교수는 1994년부터 96년까지 2년간 삼성전자 D램 설계팀에서 일했다. AI반도체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안다. 특히 AI는 메모리가 중요하기에 우리나라가 충분히 승부를 걸어 볼만한 분야다. 김 교수는 "10년안에 우리가 엔비디아 등을 제치고 세계 1위 AI반도체 국가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서울대 전기공학과에서 학부와 석사과정을 마치고 미국 미시건대학에서 박사를 한 그는 책에서 미국 유학 시절도 소개했다. "미국에서 나를 지도한 교수가 2년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노벨상 받는 거 간단하다. 원천성과 오리지널리티(독창성)를 가지고 꾸준히 하면 된다. 아무도 안하는 원천성에 호기심과 즐거움이 있으면 된다. 남들 따라하면 절대 노벨상을 받을 수 없다"며 독창성과 호기심, 즐길 것을 강조했다. 이어 "할리우드에 유학갔다 와서 할리우드 영화를 만들면 안된다"면서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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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교수는 지난 25년간 KAIST에서 약 80명의 석박사를 지도했다. 이들 대부분은 테슬라·애플·구글·엔비디아·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세계적 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김 교수는 "최근에도 테슬라에서 우리 학생 한 명을 데려갔다"면서 "일년에 한번은 제자들과 한국과 미국에서 전체 모임을 한다"고 들려줬다. 작년에는 코로나 때문에 줌으로 모임을 가졌다.
미국전자공학회 석학회원(IEEE Fellow)이기도 한 그는 현재 KAIST의 글로벌전략연구소(GSI) 소장도 맡고 있다. 세계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2월 그가 주도해 만들었다. KAIST 총장 후보에도 올라가 있는 김 교수는 "KAIST가 한국은 물론 인류 문제를 해결하는 곳이 됐으면 좋겠다"면서 "조만간 백신 문제 해결을 위한 글로벌 포럼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