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법감시위원회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삼성에 꺼내기 힘든 '승계'와 '노조' 금기어를 깼습니다. 준법위 권고로 이재용 부회장이 파격 변화를 다짐, 변화를 향한 걸음을 이미 시작한 것은 분명합니다. 새해에도 더 불신의 벽을 허물어 나가겠습니다."
31일 김지형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이 송년사를 통해 지난 2월부터 이어온 준법 활동에 대한 소회와 새해 다짐을 이 같이 밝혔다. 올해 향후 과제를 리스크 별로 유형화하고 정리해 준법 활동을 진행한 점도 강조했다. 최근 준법위 활동에 대한 일부 평가들에 따른 발언으로 풀이된다.
준법위는 지난해 12월 이재용 부회장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재판부 요청으로 만들어진 삼성 준법 감시기구다. 준법위 활동 실효성이 이 부회장의 양형 판결에 일부 반영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최근 재판에서 지정된 3명의 전문심리위원의 엇갈린 평가에 관심이 쏠리기도 했다.
■ "준법위評 '죽비 소리'로 느껴져…앞으로 가능성 지켜봐달라"
김 위원장은 "전문심리위원의 최종보고서에 혹평이 없지 않았지만, 그래도 상당 부분 긍정평가가 들어있었다"며 "그러나 평가 결과가 어떤지보다 더 큰 의미는 위원회를 되돌아볼 기회가 됐다는 것이다. 혹여 자신도 모르게 느슨해진 마음에 정신 차리고 화두를 놓치지 말라 내리치는 죽비(竹篦) 소리 아닐까 여겨졌다"고 말했다.
또 "위원회가 할 일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분명하다"며 "올 한해 위원들과 만나 논의를 시작하면 일고여덟 시간을 끄떡없이 머리를 맞대기 일쑤였다. '삼성뿐만 아니라 기업 전반의 준법문화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불어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등 생각이 이어져 산파역을 기꺼이 맡았다"고 전했다.

이어 "하지만 갓 태어난 첫 돌도 지나기 전에 완전체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할 만큼 어리석지 않았다"며 "그래서 부족한 점에 대한 지적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위원회가 할 일을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점검하고 확인하게 된다. 아직 미진하지만 앞으로 해나갈 더 많은 일, 그 가능성을 더 눈여겨 봐주실 것을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 "출범 초기 그룹·계열사 준법 과제 리스크별로 유형화"
특히 김 위원장은 준법위 출범 초기에 관계사와 최고경영자 등 향후 과제를 리스크 별로 유형화하고 정리하는 일이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최근 준법위 활동을 두고 일각에서는 관련 리스크를 미리 유형화하지 않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내놓은 바 있다.
김 위원장은 "위원회가 맨 처음 한 일은 향후 과제를 리스크 별로 유형화하고 정리하는 일이었다"며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이기 이전에 당연히 가장 기본적인 일이었고, 준법 리스크 유형을 ▲그룹 차원의 준법 이슈 ▲계열사 차원의 준법 이슈' 두 가지로 크게 나눠 보았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그룹 이슈의 경우 그룹 차원의 사업 활동에 필요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준법 리스크, 이른바 '오너 리스크'가 있는 것을 감안해 대외후원금 지출, 내부거래, 거래·합병 등에 대한 상시 감시를 주요 준법 대상으로 삼았다"고 말했다.
또 "계열사 이슈는 계열사 준법감시 체제 미비점을 보완하고 새 제도를 신설하는 개선방안을 권고해 보자는 차원이다. 계열사 내부에서 준법리스크가 높은 위법행위 전형적인 유형을 상정했고 노동이슈 등 준법 리스크를 해소할 수 있는 정책 권고도 검토했다"고 언급했다.

■ "이재용의 승계·노조·소통 약속, 변화을 위한 첫걸음"
아울러 준법위가 정한 승계·노조·소통을 핵심 의제에 대해 "핵심 의제 관련 7개 관계사에 권고했고 이 부회장이 5월 대국민 발표를 통해 파격 변화를 다짐했다. 이런 커다란 약속이 삼송 최고위 경영자의 진정한 의지에 따른 것일지 총수 개인이 양형과 맞바꾸기 위해 꾸며낸 일일지는 본인과 삼성 역사가 증명해낼 일이다. 분명한 것은 변화를 위한 걸음을 시작했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승계 문제는 더 면밀히 들여다보겠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승계 문제에서 파생된 지배구조 개선 의제가 가장 더딘 편"이라며 "그룹 전체의 명운이 걸린 어려운 사안이고 복합적인 조건이 얽혀 있다. 삼성은 보스턴컨설팅그룹에 지속가능한 준법경영체제 컨설팅을 의뢰하는 등 세부 의제를 면밀하게 들여다보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 "위원회 '겉치레 면피용' 등 평가 있어…불신의 벽 허물겠다"
준법위를 둔 엇갈린 평가에 대해서는 "위원회를 힘들게 한 것은 삼성 안팎의 날 선 시선들 때문이기도 했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위원회가 재판에서 유리하게 쓰기 위해 급조한 '겉치레 면피용' 꼼수라고 보고 있다"며 "양쪽의 관점은 극단으로 다르지만 존재를 부정하는 점에 맞닿아 있어 새해 과제를 엿보게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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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위원회는 세부 준법 의제를 꾸준히 다루고 조금이라도 더 불신의 벽을 허물어 나가겠다. 우리가 틀릴 수도 생각하고 비판과 질책도 귀 기울여 듣겠다"며 "위원회 출범을 앞두고 ▲'독립성과 자율성을 생명으로 삼겠다' ▲'준법경영의 파수꾼 역할을 다 하겠다' ▲'준법감시와 통제가 두루 실효적으로 작동하는 구체적 실행방안을 구현하겠다' ▲'준법감시 분야에 성역을 두지 않겠다'는 다짐은 새해에도 유효하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김 위원장은 "위원들과 하나 돼 의연히 이 다짐을 견지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세밑이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