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이요? 이전 회사에서는 있었는데 깃랩에선 없었던 것 같아요. 보통 재택근무의 단점으로 업무와 삶의 분리가 어렵다고들 하는데, 저는 제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면서 업무를 할 수 있어 정말 좋다고 느껴요.”
데브옵스 플랫폼 깃랩 한국에서 일하는 한민수 영업관리팀 대리가 자택에서 원격근무 중 기자의 질문에 이같이 말했다. 그는 화상회의 서비스 줌을 이용해 각국 직원들과 게임을 하려던 차였다. 깃랩 직원들은 이처럼 가끔 시간을 정해놓고 줌을 이용해 게임을 한다고 한다. 그러나 한 대리는 직전에 아태지역 영업팀 직원들과의 화상회의가 늦게 끝나는 바람에 게임 방법을 숙지하지 못했고, 거기에 기자가 계속해서 질문까지 하니 게임에 제대로 참여하기 힘들었다. 그는 노트북에서 돌아서서 잠시 기자의 인터뷰에 응해줬다.
깃랩은 한국 기자들을 대상으로 자사 원격근무 문화에 대해 소개하는 간담회를 지난달 15일 진행한 바 있다. 한국에도 깃랩 직원이 3명 있고, 원격근무를 진행한다기에 지난달 30일 한민수 대리의 자택으로 직접 찾아가 원격근무 모습을 취재할 수 있었다.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원격근무는 더 이상 보기 드문 일은 아니지만, 깃랩의 경우는 특별하다. 회사를 상징하는 사무실이 미국 한 곳에만 있을 뿐, 전 세계 65개국에 더 이상의 사무실 없이 직원 1천300명이 원격근무를 진행 중이다. 원격근무 문화에 대한 백서가 뿌리 깊게 잡혀 있으며, 대형 IT 기업들도 아직 구하지 못한 원격근무 책임자까지 고용하고 있다.
한 대리의 이날 업무 시작은 오전 9시부터였다. 한국, 일본, 싱가포르, 동남아 국가 등을 담당하는 아태지역 영업관리 직원들이 돌아가면서 각각 상황을 보고했다. 여기서 한 대리는 한국과 일본, 싱가포르 등 동남아 국가의 영업을 담당한다. 한 대리는 거실에서 주로 일한다. 책상 위에 노트북과 PC용 모니터, 아이패드 등을 놓고 연결해 세 개의 스크린을 동시에 한 개의 마우스와 키보드로 조작했다. 다른 가족들은 보이지 않았고 고양이 한 마리만 조용히 돌아다니는 가운데 한 대리는 업무를 개시했다.
그는 일본 한 고객사의 유입 현황 및 영업 전략에 대해 영어로 발표했다. 세일즈포스를 통해 기록된 내용들을 참고하며 발표를 이어갔다. 동시에 구글닥스를 이용해 다른 직원들과 공동으로 작성하는 문서에 본인 발표 내용을 기록했다. 웹브라우저로 접근할 수 있는 깃랩을 통해서는 깃랩 직원들이라면 모두 확인할 수 있도록 투명하게 공개된 이슈들을 점검하면서 영업적으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확인할 수 있다. 슬랙과 메일을 수시로 확인하는 등 동시에 여러 가지 업무도구들을 활용했다.
약 1시간 동안 진행된 아태지역 세일즈 콜을 마친 후 직원들 간 교류를 목적으로 진행되는 게임 시간이 이어졌다. 직원 10명 정도가 모였다. 마침 할로윈 데이를 앞두고 있어 몇몇 직원들은 재미난 복장을 하고 줌에 등장했다. 부사장 급 직원은 핫도그 옷을 입고, 다른 직원들 중에는 배트맨 가면이나 경찰관 모자를 쓰고 게임방에 참여했다. 직전 회의 시간에는 직원 모두가 진지하고 엄숙하게 업무에 임했다면, 게임 시간엔 완전히 다른 분위기가 펼쳐졌다. 직원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으며 한 직원의 아기가 인사를 하고 지나가기도 했다. 이날 다같이 ‘코드네임’이란 게임을 하기로 했으나, 게임방법을 몰랐던 한 대리는 급히 유튜브로 배우려다 금방 포기하고 다른 직원들에게 못하겠다고 전했다.
이같은 원격근무가 가능한 것은 깃랩이 홈페이지에서 공개하고 있는 ‘깨알 같이 적어놓은’ 원격근무 백서가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규칙들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자면 자유엔 책임과 의무가 따른다는 인생 명제가 떠오를 정도다.
이외에도 깃랩의 원격근무 문화로 파생된 여러 가지 복지 제도들도 파격적이다. 일단 연차가 무제한이다. 보통 신입 직원들은 1년 만근 시 기본적으로 연차 15일을 부여받으며 사회생활을 시작하지만, 깃랩은 연차를 제한하지 않는다. 쉬고 싶다면 연차신청서 결재 과정 없이, 팀에 알린 후 슬랙에 쉰다고 공지하기만 하면 된다. 해외 여행을 가더라도 정해진 시간에 일만 하면 되니 굳이 연차를 소진하지 않아도 된다. 업무 시간 또한 제한하지 않으나, 팀이 정한 목표를 초과한다면 상사가 ‘PTO(페이 타임 오프)’라며 빨리 쉬라고 독려한다.
워낙 직원들을 만날 일이 없다보니 다른 나라에 출장이나 여행을 갔을 때 해당 국가 직원을 만나면 회사가 150달러를 준다. 이는 ‘트래블 그랜트’라는 제도로, 돈은 그 나라에 방문한 직원에게 준다. 식사를 하거나 함께 레저를 즐기는 등 자유롭게 써도 무방하다. 회사가 사무실 임대료로 비용을 아낄 수 있다 보니, 이같은 제도로 직원들 간 면대면 교류를 장려하고 있다. 한 대리의 경우 작년 12월에 자신의 상사를 만나러 호주에 갔는데, 거기서 직원 10명 이상을 만나 꽤 많은 돈을 받았다고 한다.
깃랩은 1년에 한번씩 직원 1천300명이 다 같이 만나는 '콘트리뷰트'라는 행사를 가진다. 매해 다른 대륙을 돌아가면서 정하며, 동료들과 일주일 가량 머문다. 올해 3월에는 프라하에서의 만남이 예정돼 있었으나 코로나19로 취소됐다.
한 대리는 “콘트리뷰트 앞뒤로 휴가를 붙여서 가거나, 거기서 만난 직원들과 다른 국가나 지역으로 함께 여행을 가기도 한다”며 “이와 별개로 세일즈 킥 오프(SKO)라고 해서 영업이나 마케팅 조직은 또 따로 1년에 한번 모인다”고 말했다.
직원 교류를 위해 트래블 그랜트와 비슷한 ‘커피 챗’이란 문화도 있다. 이는 슬랙에 있는 기능으로 직원들을 랜덤으로 매칭해 대화를 나눠야 하는 기능이다. 깃랩에선 신입 직원이 회사 온보딩(회사 적응 생활)할 때 무조건 5명 이상 커피 챗을 해야 한다.
한 대리는 “원격근무로 인해 사람들이 고립되고 외로움을 느낄 수 있는 문제가 있을 수 있는데, 이런 문화들이 있어 아직까지 나는 한번도 고립감 같은 건 느껴보지 못했다”며 “한국에 있는 팀원들은 정기적으로 만나 저녁을 먹기도 한다”고 말했다.
사무실 임대료 비용을 아낄 수 있기 때문에, 회사는 직원들에게 원격근무에 필요한 기자재 또한 아낌 없이 지원한다. 먼저 구입한 뒤 비용을 청구하는 식이다. 한 대리의 경우 맥북을 250만원정도 주고 샀다. 다른 회사였다면 퇴사 후 반납해야 하는데 일정 기간 지나면 직원이 소유할 수 있다. 한 대리는 이제 2년차 직원으로, 맥북은 이제 그의 것이 됐다. 노이즈캔슬링 에어팟 프로, 키보드, 마우스, 의자 등을 구입하면서 회사로부터 눈치 받은 적이 없다고 한다. 원격근무 백서 규칙들에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격근무가 일상인 회사의 신입 직원 온보딩 과정은 어떨까. 이에 대한 지침도 모두 원격근무 백서에 ‘첫째 날’, ‘둘째 날’ 같은 식으로 직무마다 완수해야 할 일들이 적혀있다. 온보딩을 도울 친구 직원(버디)도 붙여준다. 한 대리의 버디는 일본 직원이었다. 신입은 한 달 동안 아무런 성과 목표(KPI) 없이 적응하고 온보딩 이슈에 나와 있는 것들을 해나가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온보딩 후에도 계속해서 성과가 좋지 않다면 사무실에 책상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일명 ‘책상 빼야 하는’ 순간이 올 수도 있다.
한 대리는 “통신비는 물론 웬만한 것들은 다 영수증으로 비용을 청구할 수 있고, 저는 (미혼이라) 쓸 일이 없지만 임신휴가가 매우 긴 것으로 안다”며 “건강검진 비용도 제공받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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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회사에서는 자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사람을 선호하고 본인 성과에 대해서는 완벽히 책임을 지도록 하는 체계다”면서 “회사 홈페이지에 회사의 목표가 그래프로 투명하게 공개돼 있는데, 채우지 못한 영역을 위해 모두 다같이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깃랩 원격근무 제도에 대해 설명된 '플레이북'은 깃랩 홈페이지에서 다운로드 가능하며, 한민수 대리(mhan@gitlab.com)에게 이메일을 보내 문의할 수 있다. 아직 깃랩 한국 블로그나 SNS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