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셀 파일 아닌 빅데이터·AI로 금융 감독한다

[이슈진단+] 이제는 섭테크·레그테크 시대(상)

금융입력 :2020/04/22 16:27    수정: 2020/04/23 09:03

인공지능·빅데이터·분산원장기술 등 신기술을 접목한 테크핀 기업이 늘어나면서 금융감독도 기술에 주목하고 있다. 기술 기업과 소통을 강화해 '섭 테크(Sup-Tech)'로 감독 업무를 바꿔나간다는 방침이다. 금융사들은 컴플라이언스·리스크·자금세탁방지·이상거래탐지 등 준수해야하는 의무에 기술을 입힌 '레그 테크(Reg-Tech)'로 변환 중이다. 정교하고 빈틈없이 법 규정을 지켜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두 편에 걸쳐 국내 금융감독의 섭 테크, 금융사의 레그 테크의 현주소를 진단해본다.[편집자주]

■ 디지털전환 전담반 구성...6월 우선과제 선정 예정

금융감독원은 21일 금융감독 디지털 전환을 위한 전담반을 만들고 첫 회의를 열었다. 데이터 3법(개인정보보호법·신용정보법·정보통신망법) 개정 시행과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 19)로 인한 비대면 문화로 디지털 경쟁이 가속화될 것으로 보여, 금감원 역시 기술 기반의 감독 방향과 비전을 수립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됐기 때문이다.

디지털 전환 전담반은 유광열 수석부원장이 전담해서 맡는다. 전담반 하위조직은 디지털 전환 총괄반과 디지털 전환 작업반으로 구성됐다. 작업반은 각 업권별 부원장보가 각 부서에서 필요로하는 빅데이터·인공지능 등 신기술을 활용해 어떤 새로운 시스템 구축이 필요한지를 파악하는 역할을 맡는다. 총괄반은 정보화전략국·IT핀테크전략국·핀테크혁신실이 중심이 돼 작업반이 제출한 과제를 검토하고 우선 순위를 배정하는 일을 도맡는다.

이와는 별도로 금감원이 올해 3대 추진과제로 내세웠던 ▲섭 테크를 통한 감독업무 혁신 ▲레그 테크 가속화 ▲핀테크 혁신 지속도 진행한다.

2018년 8월에도 윤석헌 금감원장은 섭 테크 기법을 개발하고 활용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로부터 2년여가 흘러 전담반이 만들어진 것이다. 과거 시범 프로젝트로 추진됐던 것을 목표가 명확한 방향으로 바꾸기 위해 전담반을 세웠다는 게 금감원 측 설명이다.

금감원 장경운 정보화전략국장은 "예산이 타이트하게 주어지다 보니 추진력이 떨어졌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디지털 전환)작업반에서 도출한 과제를 잘 모아서 6~7월 우선순위 배정을 할 예정이며 내년도 사업도 미리 잘 선정해 잘 추진될 수 있도록 금융위원회에 협업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감원은 과제 중 우선순위 배정은 ▲기술 가능성 ▲효과성 ▲시급성에 따라 중점과제를 선정하고 중장기 추진계획을 수립한다는 방침이다.

■ 인공지능 머신러닝으로 시스템 고도화·RPA 도입 예정

금감원은 2019년부터 섭 테크 일환으로 '머신 리더블 레귤레이션(MRR)'을 시범적으로 도입한 바 있다. MRR은 형태소를 분석해 문장구조를 기계가 해석, 불완전판매나 약관을 어긴 내용을 잡도록 한 섭 테크의 일환이다. 그러나 MRR은 그리 성과를 내진 못했다.

장경운 국장은 "처음에 중점적으로 추진했고, 사모펀드 약관 심사에 이를 적용해보려고 했지만 아직까지는 문장구조 해석 기술력이 떨어지는 상황"이라며 "영국 금융감독청도 이런 문제 때문에 포기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금감원은 그래서 실제 성과가 난 불법 채권추심과 보험 불완전판매 감독에 적용된 음성 문자 변환기술(STT)의 고도화를 가장 먼저 추진할 예정이다.

장 국장은 "5개 시스템을 인공지능 기반으로 구축했는데, 불법 채권추심과 보험 불완전판매는 의심 건만 음성파일을 들어보면 돼 검사가 수월해졌다"고 말했다.

검사나 감독 업무에 효율성을 꾀하기 위해 로봇자동화프로세스(RPA)도 도입된다. 예를 들어 중소기업 및 자영업자 등 소호대출의 여신 건전성 분석 시 휴·폐업 여부를 검사역이 일일이 국세청에 들어가 조회해야했는데 이를 자동화해 시간을 단축시킨다는 것이다. 업무 시간을 줄이고 수기로 작업했던 번거로움을 단축시킨다는 것이 금감원 방향이다.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사진=뉴스1)

■ "섭 테크, 시장 조기 경보와 소비자 피해 막기 위한 것"

이 같은 섭 테크는 영국과 미국 등 일부 국가에서도 도입 중이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는 인공지능 머신러닝으로 투자자문사의 위법 행위 적발 비율을 높이기도 했으며, 영국 금융감독청도 투자자문사의 금융상품 불완전판매 가능성을 예측하기도 했다.

금감원은 섭 테크로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한다는 목표다. 하나는 소비자 보호를 최대화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시장 상황에 대한 조기 경보 기능을 제대로 해내겠다는 것이다. 금융 투자 상품이 나날이 복잡해지고, 시장 상황도 돌변하고 있어, 전통적인 방식만으로는 검사와 감독의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장 국장은 "해외 금리 파생결합펀드(DLF)나 라임펀드 사태 등을 빨리 포착해 소비자에게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 빅데이터 분석을 통한 상시 감시를 수월하게 하고 조기 경보를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단순히 업무 효율성에만 목적을 둔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관련기사

다만, 금감원이 다른 기술 기업에 비해 기술 이해도와 숙련도가 떨어진다는 점은 해결해야할 과제로 보인다. 장 국장 역시 "인력 부분이 관건"이라며 "검사역을 대상으로 한 검사역아카데미서 디지털 인재를 양성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답했다. 또 금감원은 금융사나 통신사, 전자상거래의 데이터를 모아 협업 플랫폼을 개발하는 방안도 고려 중이다.

☞섭 테크란? 섭 테크는 금융 감독 (Supervision)과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로, 최신 기술을 활용해 금융감독 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기법을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