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9일, 대한민국 인공지능(AI)이 새로 태어난 날이다. AI불모지나 다름없던 우리나라는 이날을 기점으로 AI의 중요성에 눈을 떴다. 바둑계 풍운아 이세돌 9단은 이날 구글이 인수한 영국 회사 딥마인드의 인공지능(AI) 바둑 '알파고'에 패배, 우리나라는 물론 지구촌에 충격을 던졌다.
이 9단은 '알파고'와 총 5번 대국을 치뤘다. 결과는 4패 1승. 이미 체스와 퀴즈 대결에서 인간을 이긴 AI였지만 사색과 창의, 판단 면에서 정점에 서 있는 것으로 여겨온 바둑마저 '기계'가 '인간 절정 고수'를 이겼다는 점에서 지구촌은 경악했다. 'AI 월드'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작이기도 했다.
하지만 '알파고 쇼크'는 우리에게 나쁘지만은 않았다. 섬광처럼 찾아온 '축복'이기도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대한민국은 AI에 무지에서 벗어나 전 국민이 AI 중요성을 인식하게 됐고, AI산업을 키워야 한다는, AI강국이 돼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세계 각국의 AI 패권 경쟁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우리 정부도 지난해 12월 'AI국가 전략'을 발표, 이 대열에 뛰어들었다. 6개월간 애면글면한 끝에 만든 'AI강국 청사진'이였다.
■산업과 사회 전반에 혁명적 변화 초래한 AI
AI는 그 자체가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신산업이다. 뿐만 아니라 기존 산업의 경쟁 구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원천이기도 하다. 맥킨지가 2018년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기업 70%가 오는 2030년까지 AI를 활용하고, 글로벌 GDP가 AI로 13조 달러 정도 추가 성장할 전망이다.
글로벌 기업 가치도 AI가 좌우하는 시대가 됐다. 10년전과 달리 현재 글로벌 시가 총액 1~5위 자리는 데이터와 플랫폼을 가진 AI관련 기업이 차지하고 있다. 세계 시총 1위 미국 애플은 구랍 27일 뉴욕 주식시장에서 주당 289.9달러로 마감, 기업가치(시총)가 1조2900억달러(약 1497조원)에 달했다. 애플에 이어 마이크로소프트(1조2100억달러)가 2위를 차지했고 아마존(9270억달러), 알파벳(9336억달러), 페이스북(5935억달러)가 뒤를 이었다.
이들 5대 미국 테크 기업의 시총을 합치면 약 5조달러다.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1조6556억 달러)의 3배로, 우리나라 국민 모두가 3년간 일한 총생산량과 맞먹는다.
■대한민국 여건 나쁘지만은 않아...5G, 메모리 반도체 등 세계 1위
AI는 4차산업혁명의 기반 기술이다. 모든 사물이나 기기가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사물인터넷 시대에는 인간의 인지 능력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데이터가 쏟아진다. 정제되지 않은 이들 데이터를 어떻게 분석하고 해석해 정보로 만들어내는냐가 기업과 국가 경쟁력을 가른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등 유명 인사들도 AI 중요성을 잇달아 피력하고 있다. 중국 바이두 라옌홍 회장은 "AI시대에는 인류와 기계가 공동으로 세계를 혁신할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기술면에서 우리나라는 아직 AI강국과 거리가 멀다. 과기정통부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우리나라 AI 기술 수준은 미국을 100으로 했을때 81.6점이다. 오는 2030년까지 95점으로 높인다는게 정부 계획이다.
AI특허도 미국 기업이 상위 순위를 거의 싹슬이 하고 있다. 독일 시장조사기관 아이플리틱스(IPlytics)가 지난해 발표한 AI기술 특허 보유 기업 현황을 보면 1위는 마이크로소프트(1만8365건), 2위는 IBM(1만5046건)이다.
구글(9536건), 퀄컴(1만178건), 인텔(4464건) 등 미국 기업이 10위권에 들었다. 한국은 삼성전자만 체면을 세워 3위(1만1243건)에 랭크됐다.
우리는 AI강국이 되기 좋은 여건을 갖고 있다. 높은 교육 수준과 신기술 수용성, 세계최고의 ICT 인프라를 갖고 있다.
AI와 데이터를 실어 나를 5G 통신 인프라는 세계 최고다. AI를 구현하는 중요한 디바이스인 스마트폰도 보급률이 95%로 세계 1위다. 미국(81%), 영국(76%), 일본(66%)을 훌쩍 뛰어 넘는다. 메모리 반도체 역시 세계 1위다. 세계시장 점유율이 58%나 된다. 미국(28%), 일본(9%), 대만(5%)을 저만치 따돌렸다. 청년층 고등교육 이수율도 69.6%로 OECD 국가중 1위다.
전문가들은 AI에 대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것이 있다. "AI는 아직 세계적으로 초기 단계"라는 것이다. 결국, 'AI강국 코리아'는 꿈이 아니다. 이를 달성할 정밀한 설계도와 강력한 실행력이 필요하다.
■휘청거리는 경제...AI로 선진국에 올라서야
국내 경제가 최근 몇년간 휘청거리고 있다. 우리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이였던 수출은 지난해 5424억 1000만달러를 기록, 전년(6048억 달러)보다 10.3%나 감소했다. 수출 두 자릿수 감소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일어난 2009년이후 10년 만에 처음이다.
내수도 사정이 안좋다. 기업을 옥죄는 각종 규제로 중소기업인이 신음하고 있고, 내수 경제를 떠받치는 중산층도 옅어지고 있다. 내수 경기를 훈훈케 하는 외국인 투자도 저조하다.
새해도 기업 경기 전망이 여전히 부정적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이 매출액 기준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기업경기실사지수(BSI)를 조사한 결과, 올 1월 전망치는 90.3으로 여전히 100을 밑돌았다. BSI 전망치는 100이 넘어야 경기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걸 뜻한다.
미중 무역갈등 지속으로 세계 경기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들은 내년 세계 경제가 올해보다 같거나 더 나빠져 성장률이 3% 언저리를 밑돌 것으로 전망했다. 국내 경제 성장률 전망은 더 어둡다. 민간연구소는 2% 이하를, 정부 입김이 강한 국책연구소만 2%대 성장을 예상했다.
이웃나라 중국과 일본 견제도 만만치 않다. 중국은 값싼 제품의 대량생산국가에서 완전히 벗어나 기술 혁신 주도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일본은 수출 규제로 우리를 견제하고 있다. 반면 우리의 기존 주력 산업은 글로벌 수요 포화와 불확실성 증가로 하강중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AI가 돌파구가 될 수 있다. 우리 경제는 경제성장율 3%대에 목말라 있다. 1인당 국민소득 4만, 5만 달러도 달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 제조업을 고도화해야 하고 서비스산업을 육성해야 한다.
이의 촉매를 AI가 할 수 있다. 정부가 제조 등 기존 산업을 고도화하기 위한 'AI+X' 전략을 마련한 이유다. 사실 미중 무역 갈등도 내면을 들여다보면 기술 갈등이다. 실제 미국 블룸버그 통신은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을 '기술 냉전(Tech Cold War)'이라고 평했다. 미중 무역전쟁이 단순한 관세 전쟁이 아니라 국가 안보가 걸린, 미중간 기술 우위 다툼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미중 무역전쟁은 '테크 전쟁'이고 '테크'의 핵심에 AI가 있다.
■공짜 점심은 없어...꾸준한 투자가 AI강국 만들어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공짜는 '쥐덫'에나 있다. 지구촌 AI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AI인재양성이 절대적이다. 특히 교육이 중요하다. 현재 우리는 AI고급인력부터 전문인력, 실무인력이 모두 부족한 편이다.
외국 조사에 따르면 AI 고급 인력이 가장 많은 곳은 미국과 중국으로 각각 2만8000여명과 1만8000명에 달한다. 우리나라는 이에 한참 못 미친다. 2600여명 정도다.
우리나라 소프트웨어(SW) 싱크탱크인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세계 100위에 드는 AI 고급인력에 한국인은 한 사람도 없다. 이런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정부는 지난해 AI전문 대학원을 5곳 선정한데 이어 올해도 최소 3곳을 지정할 예정이다. AI 전문인력과 실무인력 양성을 위한 직군별, 맞춤형 AI 교육도 시행할 예정이다.
초중고등학교에 AI 소양을 기를 수 있는 교육과정도 도입한다. 내년에 AI교육 중점고 34개교를 선정하고, 인정 교과서도 개발한다. 또 2022년 교육과정 개정 전까지 비교과 중심으로 소프트웨어(SW) 코딩과 데이터 과학 등 AI 기초가 되는 수업 시수를 확대할 계획이다. 앞서 정부는 중고등학교와 초등학교에 SW 교육을 필수화, 초등학교는 17시간, 중고등학교는 34시간 이상 SW교육을 의무적으로 받도록 했다.
AI강국이 되기 위한 예산도 올해 크게 늘었지만 주요 경쟁국에 비하면 여전히 '쥐꼬리'다. 올해 정부 전체가 투입하는 AI 예산은 1조 원이 넘는다. AI 전담부처인 과기정통부의 AI국 예산은 2453억으로 올해(1162억)보다 두배 증액됐지만 여전히 '소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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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경우 MIT의 AI 및 컴퓨터 연구소(CSAIL)의 연간 연구 예산이 750억 원(6500만 달러)에 달한다. 미국 대학의 한 개 AI 연구소 연간 예산이 우리나라 전체 AI예산의 60~70% 정도에 해당하는 것이다.
AI강국이 되려면 꾸준한 지원이 중요하다. 장병탁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AI연구원장)은 "현재 딥러닝 AI의 선구자들은 대부분 튼튼한 기초 교육을 받고, 자기 분야에서 장기간 고집스럽게 연구해온 사람들"이라며 "세계적 AI 전문가로 평가받는 제프리 힌튼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도 지난 30년간 꾸준히 연구해왔기 때문에 성과를 인정받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