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이 블록체인 기술을 탐구하는 단계를 넘어, 실제 사업에 본격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블록체인으로 내부 프로세스를 개선하는 것은 물론 새로운 사업을 발굴해 추가적인 수익 모델을 창출한다는 전략이다.
26일 서울 용산구 LG유플러스 본사에서 '블록체인이 이끄는 금융의 미래'를 주제로 세미나가 개최됐다. 오픈블록체인산업협회가 주최한 이번 세미나에는 KEB하나은행, 신한은행, NH농협은행, 코스콤 등 금융권 관계자들이 참석해 블록체인 사업 전략에 대해 발표했다.
■ KEB하나은행 "글로벌 결제 플랫폼으로 간편결제 시장 노린다"
이성웅 KEB하나은행 글로벌 디지털센터 블록체인 신서비스팀장은 질문을 던졌다. "블록체인을 구현하는 게 목적입니까, 비즈니스를 구현하는 게 목적입니까." 그는 "정답은 없다"면서도 "블록체인을 이용해야 마치 4차산업혁명에 동참하는 것 같아서 하는 보여주기식의 프로젝트는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팀장에 따르면 실제로 은행권에서 블록체인 도입 시 가장 많이 부딪히는 부분은 블록체인의 필요성과 그에 따른 수익성의 문제다. 왜 꼭 블록체인을 사용해야만 하는지에 대한 답이 명확해야 하고, 또 블록체인을 사용했을 때 기존 시스템보다 수익성이 떨어져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사실 이 문제는 은행뿐 아니라 비즈니스를 하는 모든 기업들이라면 당연히 거쳐야 하는 질문이자 검증해야 하는 절차라고 할 수 있다.
이 팀장은 특히 은행의 블록체인 적용을 가로막는 3가지 허들로 ▲비용 ▲속도 ▲규제를 꼽았다. 그는 "기존 시스템으로도 잘 돌아가는 게 있는데, 이걸 굳이 다 걷어내고 블록체인으로 바꾸는 게 꼭 정답은 아니"라며 "기존 시스템 방식으로도 저렴하고 빠르게 운영할 수 있게 여전히 많다"고 설명했다.
또 "블록체인은 아직 결제 속도가 빠르지 않은 부분이 존재하며, 결제 속도가 빠른 블록체인은 그만큼 합의자가 적기 때문에 안정성이 떨어진다는 위험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신기술 블록체인에는 맞지 않는 현행법으로 인한 규제 문제도 존재한다. 현재 은행이 적용받는 전자금융거래법, 개인정보보호법 등의 규정 자체가 중앙 집중식 시스템을 전제로 마련돼 있기 때문에 공개분산원장을 이용하는 블록체인에는 적용하기 어려운 부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르면 목적을 달성하고 난 데이터는 삭제해야 하는데, 블록체인에 기록된 정보는 위변조나 삭제가 불가능하다는 문제도 있다.
그렇다면 현재 은행은 어느 부분에 블록체인을 접목하고 있을까.
이 팀장은 "은행은 정부 정책상 더더욱 블록체인 비즈니스를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며 "토큰 이용은 현재 할 수 없기 때문에, 실제로 블록체인을 활용할 수 있는 부분은 분산원장을 활용해 내부 프로세스를 개선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현재 은행권에서의 블록체인 기술 적용 현황을 소개했다.
이어 "은행은 학교나 연구소가 아니기 때문에 비즈니스 중심으로 진행돼야 한다"며 "진짜 필요한 부분에 블록체인을 적용하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KEB하나은행이 찾아낸 블록체인을 활용한 비즈니스는 바로 '간편결제'다.
이 팀장은 "간편결제 시장이 중요한 이유는 돈과 데이터가 쌓이기 때문"이라며 "스타벅스의 경우, 간편결제가 가능한 선불카드에 미리 적립돼 있는 금액이 1조원 가까이 된다"고 설명했다. 은행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은행처럼 예금을 적립해 둘 수 있는 비즈니스가 간편결제라는 것이다. 또 결제 정보가 기록에 남기 때문에 기업은 이용자의 거래 내역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다. 이는 이용자의 행동·취향·이동 반경 등을 알 수 있는 데이터로 비즈니스 관점에서 봤을 때 매우 중요한 데이터다.
이 팀장은 "예금과 데이터를 모을 수 있는 굉장히 중요한 비즈니스 시장을 외국에 주도권을 뺏기면 안 된다고 생각해 간편결제 시장에 적극 진출하려 한다"고 덧붙였다.
KEB하나은행은 이와 관련해 2017년과 2018년에 걸쳐 해외 주요 은행과 2건의 개념증명(PoC)을 진행했다. 2017년에는 대만 타이신 은행과 이종 포인트 간 송금을 지원하는 PoC를 진행했으며, 2018년에는 또 다른 은행과 이더리움 기반 블록체인 스마트 컨트랙트를 구현하는 PoC를 진행했다. 2건의 PoC는 별도로 데이터를 정리해 정산하지 않아도, 블록체인을 이용해 자동으로 정산이 이뤄지는 형태다.
이 팀장은 "현재 간편결제 시장을 보면 국내보다 해외 지급 결제 비중이 증가하고 있고, 전자지갑 이용이 확대되고 있다"며 "새로운 디지털 자산을 가지고 새로운 결제를 사용하는 글로벌 여행객을 위한 새로운 글로벌 결제 허브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KEB하나은행은 GLN이라는 글로벌 결제 허브 플랫폼을 만들어, 전 세계 주요 금융기관, 유통회사, 포인트 사업자들이 포인트, 마일리지와 같은 디지털자산을 자유롭게 송금·결제부터 ATM출금까지 할 수 있게 한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이미 지난 4월에는 태국에, 5월에는 대만에 GLN서비스를 런칭했다. 앞으로도 로컬 파트너를 적극 활용해 '글로벌 최대 쿠폰 플랫폼'이 되겠다는 전략이다.
■ 신한은행 "플랫폼 비즈니스로 간다"…NH농협 "업무 효율화에 먼저 적용"
신한은행은 블록체인 기술 실사용 사례 구축에 집중하며, 플랫폼 체계를 구축한다는 목표다.
유병설 신한은행 디지털R&D센터의 블록체인랩 수석은 "2017년에는 블록체인 신기술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힘을 썼으며, 2018년과 올해에는 새로운 블록체인 모델을 찾는 데 초점을 맞췄고, 내년에는 플랫폼 비즈니스를 만들 것"이라고 신한은행의 블록체인 추진 전략을 발표했다.
신한은행도 KEB하나은행과 마찬가지로 내부 업무 프로세스 효율화를 블록체인 기술 활용의 한 축으로 삼고, 또 다른 한 축은 제휴 업체와 새로운 비즈니스 플랫폼 구축으로 삼는다.
2016년에는 골드바 보증서 정보이력을 블록체인에 올려 골드바를 인증해주는 서비스를 기획에 상용화했으며, 2017년에는 골드바 선물 서비스를 상용화했다.
현재는 ▲글로벌 컨소시엄과 국내 파트너사와 협력한 해외송금·무역금융 서비스 ▲디지털 자산 보관 서비스 ▲장외파생상품(IRS)거래 플랫폼 ▲블록체인 자격검증 서비스 등을 진행한다.
그중에서도 신한금융그룹 차원에서는 통합인증서비스 '올패스(가칭)'를 추진하고 있다. 올 하반기에 오픈 예정인 올패스는 신한은행과 신한금융투자, 신한카드, 신한생명 앱 어느 곳에서 로그인을 해도 나머지 3개 앱에서도 자동으로 로그인이 되는 통합인증서비스다. 신뢰 인증을 위해 스마트컨트랙트를 사용한다.
유 수석은 "저희의 목표는 많은 유저들이 참여하는 플랫폼 비즈니스로 확대해 나가는 것"이라며 "향후에 뱅크사인과의 통합된 모습을 기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그는 "결국은 플랫폼 비즈니스로 가야 고객이 편의성을 느끼며, 블록체인 생태계를 꾸려나갈 수 있다"며 "내년부터는 플랫폼화 체계를 구축해 디지털 서비스를 전개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NH농협은행은 올해부터 블록체인 사업을 막 시작했다. 류창보 NH농협은행 디지털기술파트장은 "저희는 제로 상태에서 이제 막 블록체인 기술에 접근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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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H농협은행은 지난 4월 블록체인을 활용한 첫 번째 사업 모델을 진행했다. 원리금수취권증서를 블록체인화 시킨 것으로, 기존 원리금수취권증서를 메일이나 팩스로 보내줬다면 이제는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P2P 금융사에 제공하고 있다.
류 파트장은 "블록체인을 활용한 여러 PoC를 연내 3개 이상 추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블록체인 기술을 농협은행의 특성에 맞게 어떻게 활용할지 사업 모델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