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프온리] 친구 따라 MIT 간 늦깎이 로봇공학도 실패 성공담

석상옥 네이버랩스 대표 “실패서 성공 보는 눈 갖고파”

인터넷입력 :2019/03/21 07:51    수정: 2019/03/21 14:33

많은 청춘들이 부푼 꿈을 안고 생활 전선에 뛰어듭니다. 대부분은 직장생활을 택하고, 일부는 창업을 결심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울타리 밖 세상은 사면이 절벽이고 찬바람이 쌩쌩 불기 일쑤죠. 그럼에도 그 외로운 길을 묵묵히 걸어간 선배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묻고 싶었습니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 때도 알았더라면’ 싶은 팁 하나만 알려달라고 말이죠. ‘이프온리’(If Only, 부제: 나의 실패 성공기)는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전하는 소망의 메시지를 하나씩 담으려 합니다. 그들의 실패 속에서 성공을 발견하길 바라는 마음에서요. [편집자주]

‘친구 따라 강남간다’는 말처럼 친구를 잘 둔 덕에 늦깎이 나이에도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로 유학을 떠난 공학도가 있습니다. 친구 따라 좋은 학교로 진학한 것뿐만 아니라, 국내외에서 인정받는 로봇공학자로 성장했고 세계 어디에 내놔도 자랑스러운 기술 회사의 수장까지 맡고 있으니 이야말로 인생역전 드라마 아닐까요.

친구 따라 성공한 반전 드라마 속 주인공은 바로 석상옥 네이버랩스 대표입니다.

석상옥 네이버랩스 대표(왼쪽)가 직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석 대표는 대단한 꿈을 가진 청년이 아니었습니다. 지금이야 존경받는 로봇 공학자였지만, 그가 이 길을 선택한 계기는 다소 엉뚱해 보입니다. 고등학생 시절 같은 반 친구가 당시 스탠포드 대학 박사 과정을 마치고 MIT 교수직에 지원한다는 얘길 듣고, 본인이 제자가 되면 어떨까를 생각했다고 합니다. 이 친구가 바로 MIT 김상배 교수입니다.

이미 결혼도 하고 애까지 있는 상황에서 유학생활이 쉽지 않다는 친구의 조언에도 석상옥 대표는 결국 아내의 지원 속에 유학 길에 올랐습니다. 같은 또래의 친구들이 박사가 되고 교수가 되는 시기, 석 대표는 다니던 직장을 관두고 돌연 학생의 신분이 된 것입니다.

최고령 학생으로 입학을 한 그가 오랜 사회 경험과 학식으로 MIT에서 순탄한 학창 시절을 보냈을까요. 석 대표는 고등학생 때 배웠던 수학 정석의 내용조차 떠오르지 않는 기억력 탓에 큰 어려움을 겪은 당시를 솔직히 털어놨습니다.

“죽을 것 같이 열심히 공부를 해도 시험을 봤을 때 성적이 중간 이내로 들어오기 힘들었어요. 치열하게 공부해도 성적도 안 나오고, 영어도 안 되고… 사실 유학 간다고 했을 때 와이프가 굉장히 부추겼거든요. 그 때 아내를 원망하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매일같이 아내에게 그 때 유학 보내줘서 감사하다고 (원망해서) 죄송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친구 때문에 MIT 박사 과정을 밟은 석상옥 대표가 겪은 가장 큰 실패담은 ‘보스톤 다이내믹스’라는 세계적인 로봇 기업과 치타 로봇을 만들던 때였습니다. 자신이 속한 MIT 팀은 5명 남짓 되는 인력이었던 데 반해, 보스톤 다이내믹스는 쟁쟁한 글로벌 개발자들이 60여명이나 속해있었습니다. 두 팀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치타 로봇을 만들어, 2년 뒤 좋은 성과를 거둔 팀에 나머지 팀이 흡수되는 방식으로 연구가 진행됐습니다.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 같았습니다.

애초부터 말도 안 되는 경쟁이기도 했지만, MIT 팀이 마주한 현실은 더욱 냉혹했습니다. 평가 직전 석상옥 대표가 속한 팀이 만든 로봇이 너무 빨리 달리다 폭주해 터졌기 때문입니다. 평가고 뭐고 그냥 게임이 끝난 것과 다름없었죠. 그런데 기적은 그 때 찾아왔습니다.

네이버랩스가 만든 3차원 공간정보 스캔 로봇 'M1'과 기념촬영 하고 있는 석상옥 대표.

“프로젝트 매니저가 저희 로봇이 터지는 영상을 보더니 이렇게 로봇이 폭주할 정도면, 이렇게 힘센 다리를 너희들이 만들었으면 이건 분명히 뛰겠다면서 연구를 계속하게 해줬어요. 어떻게 보면 그게 가장 큰 실패였는데, 다시 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됐죠. 이 때부터 실패에서 성공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돼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려운 시기를 지나오면서 석상옥 대표가 얻은 깨달음이 또 있습니다. 나이가 아무리 어려도 자신에게 가르침을 줄 수 있다면 스승처럼 여겨야 한다는 점입니다. 덕분에 10살, 심지어 띠동갑인 어린 학생들에게 많은 걸 배웠다고 합니다.

“누군가 나를 기꺼이 가르쳐 줄 수 있게, 그런 사람이 되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로봇은 굉장히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서 일을 해야 돼요. 설계하는 사람도 있고, 가공하는 사람도 있고, 제어하는 사람들도 있죠. 이들이 다 모여서 조화롭게 일해야 좋은 로봇이 나오거든요. 이런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서 일할 수 있는 구심점 역할을 제가 잘 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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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상옥 대표는 친구인 김상배 교수가 MIT 교수에 지원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MIT 유학길에 올랐다.

석상옥 대표 박사 논문에는 함께 참여하고 도움을 받은 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같이 적혀 있습니다. 협업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내가 알고 있는 것을 혼자만 감춰두는 것이 아니라, 남들과 공유했을 때 더 큰 성과와 결과물이 나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서입니다.

“내가 아는 걸 아낌없이 남한테 다 알려줘야 된다고 생각해요. 네이버랩스가 앞으로 도전적인 일을 많이 할 텐데, 남들이 다 실패라고 생각했을 때 그 안에서 성공의 가능성을 찾아내고, 그것에 도전할 수 있도록 지원해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영상=유회현·김지학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