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프린팅이 혁신할 것으로 기대되는 분야 중 하나가 바로 의료다. 가볍고 통기성 좋은 깁스부터 탄탄하면서 기존 제품보다 저렴한 전자의수, 신체 속에 삽입돼 무너진 뼈를 대신하는 맞춤형 인공지지체, 수술 전 효과적인 수술 계획을 짤 때 사용하는 환자 장기 모형 등까지 모두 3D프린터로 제작할 수 있다.
의료 3D프린팅 분야에서 특히 부가가치와 환자에 줄 수 있는 긍정적 효과가 큰 것으로 기대되는 것이 임플란트 의료기기다. 환자 몸에 부담이나 부작용을 주지 않는 소재와 정밀한 맞춤형 설계, 정교한 삽입 시술 능력을 요하기 때문에 얼굴, 두개골처럼 민감한 부위를 대상으로 한 3D프린팅 임플란트 이식 사례는 세계적으로 매우 드물다.
심규원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신경외과학교실 부교수는 이처럼 어려운 3D프린팅 두개골 임플란트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다. 2013년부터 말 이미 티타늄 소재와 3D프린터를 이용해 두개골 임플란트를 제작해 환자에게 시술한 바 있다.
본인이 한국 의료 3D프린팅 최전방에 있는 심 교수는 최근 기자와 만나 “미국을 포함해 다른 나라에서는 3D프린팅 임플란트 의료기기 상용화가 완전히 자리 잡지 못 했다”면서 “우리나라는 맞춤형 의료기기 제작까지 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환자에게 더 안전한 임플란트 시술 방법을 고민해온 심 교수는 5년 전 3D프린팅 기술을 알게 된 후 의료 영역에서 매우 쓸모가 있을 것이란 생각에 시간을 쪼개 직접 공부하기 시작했다.
“2013년부터 3D프린팅 기술에 대해 스스로 공부했다. 사비를 털어 3D프린팅 관련 해외 컨퍼런스 현장에도 갔다. 2013년 말에 이미 3D프린터로 만든 티타늄 두개골 임플란트 이식 수술에 성공했는데 세계적으로 봐도 매우 빠르다. 기존에는 플라스틱을 이용해 만들었는데 맞춤형도 아니다 보니 모양이 울퉁불퉁하고 무엇보다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어 환자에게 좋지 않다.”
첫 시술 작업을 진행할 때 세계적으로는 물론 국내서도 사례가 없다 보니 어려움도 많았다. 심 교수는 전문의로서의 수술 역량과 스스로 공부한 3D프린팅 기술 지식을 더해 국내 3D프린팅 업체와 적극 협력하며 환자 맞춤형 티타늄 두개골 임플란트를 제작했다.
심 교수는 “당시 국내서는 3D프린팅 산업 자체가 초창기라 의료 분야 활용에 제대로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업체도 기술을 가지고 있지만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였다”며 “본인이 직접 엔지니어를 데려다 두개골 성형에 대해 가르치면서 임플란트를 제작했다”고 설명했다.
심 교수가 개발한 두개골 임플란트는 환자의 손상된 두개골의 빈 부분을 모두 채우는 것이 아니라 뚜껑으로 빈 공간을 덮는 식으로 제작됐다. 시간이 지나면 환자 신체 부위가 직접 빈 공간을 채운다는 사실을 전문의로서 알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디자인이다.
심 교수는 현재까지 400개 이상의 두개골 임플란트 시술 사례를 쌓아왔다. 100개 이상 시술 사례가 있다는 것은 상용화에 성공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현재 국내에선 맞춤형 골반 임플란트까지 가능한 단계에 이르렀다.
그는 “2013년 말 첫 시술 사례 후 미국에서 3년 늦게 안면 임플란트 시술 사례가 나왔다. 본인의 두개골 임플란트 시술과 같은 원리인데 즉 한국이 (의료 3D프린팅 임플란트 시술 부분에서) 한참 앞선 것”이라며 “해외서는 맞춤형 임플란트 시술 사례 자체가 거의 없다”고 강조했다.
■ 韓 대표 전문가로 국제표준 제정 무대서 활동
3D프린팅의 파급효과를 몸소 경험한 심 교수는 의료 현장에 3D프린팅 기술을 도입하는 것을 넘어 3D프린팅 분야 국제 표준 전문가로서 뛰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이 3D프린팅 활용 면에서는 미국과 유럽, 일본 등과 비교해 후발주자지만 국제 표준에서는 주도국이 돼야 향후 국제 무대에서 국내 기업들이 밀리지 않고 경쟁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심 교수는 국제표준화기구(ISO)와 국제전기표준회의(IEC)가 3D프린팅 국제 표준을 만들기 위해 합작해 설립한 공동기술위원회 ‘ISO/IEC JTC 1/WG 12’와 ISO 산하 3D프린팅 관련 국제 표준 조직 ‘ISO TC 261’에서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 WG 12가 ISO TC 261보다 상위기구며 심 교수는 주요 조직 2곳에서 모두 국내 대표 전문가로서 참여하고 있다.
“‘ISO/IEC JTC 1’은 정보통신(IT) 분야 국제표준을 논의하며 그중 WG 12는 3D프린팅과 관련 스캐닝 분야 국제 표준을 다룬다. 본인은 워킹그룹(WG) 이전 단계엔 스터디그룹(SG)에 2016년부터 참여해 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3D프린팅과 스캐닝 표준에 대해 공부하고 보고서를 작성해 ISO/IEC JTC 1에 제출해왔다. 지난해 10월 ISO/IEC JTC 1에서 독립된 국제표준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인정해 WG 12 설립 승인이 났다. SG 때부터 전문가들이 꾸준히 참여하며 표준 제정을 주도해온 국가는 다름 아닌 대한민국이다.”
심 교수는 WG 12에서 3D프린팅 소프트웨어 국제표준을 제안했다. 3D프린팅 두개골 임플란트를 제작하면서 3D프린팅이 산업에 적용되려면 소프트웨어가 필수라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그는 “WG 12은 여러 국제기구와 전문가들이 모여 논의하고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자리다. 혼자서는 시장이 필요로 하는 표준을 만들 수 없다”며 “본인도 3D프린팅 소프트웨어 국제 표준을 제안했으며 중국에서도 서비스 플랫폼 제안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심 교수는 의료 3D프린팅 국제 표준에 대해서도 1년 넘게 직접 개발해 제안했으며 WG 12에서 이를 받아들여 표준 개발에 들어갔다. 심 교수가 국제 표준 초안자가 된 것으로 의료 3D프린팅 국제 표준 역시 대한민국이 주도하게 된 셈이다.
■ 의료수가 문제로 현장 도입 활성화 어려워
이처럼 우리나라는 의료 3D프린팅 분야에서 다른 나라보다 앞서고 있지만 우수한 기술 수준만큼 의료 현장에 도입되는 사례는 많지 않다. 기업들이 치아 임플란트부터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해 시장에 내놓으려 하지만 의료수가 책정이 안 돼 수익을 낼 수 없는 상황이다. 의료수가가 적용되지 않으면 정부로부터 의료 행위에 대한 수가를 지원받을 수 없다보니 병원에서 3D프린팅 임플란트 같은 의료기기를 선택할 확률은 낮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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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 교수는 “환자에게 더 좋은 기술이 나왔는데도 의료수가 문제 때문에 현장 도입이 무척 더디다. 기업은 수익을 내야 더 계속 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다. 정부가 이점을 알아주면 좋겠다”며 “의료 3D프린팅은 신기술인데 기존 잣대로만 평가하려는 접근 방식도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현재 3D프린팅 국제 표준 작업에 해외 3D프린팅 전문기업들은 사비까지 들이며 꾸준히 참석하지만 국내 기업은 소수만 종종 참석할 뿐”이라며 “수익을 내고 사업이 활성화되면 더 자주 참여하고 국제 표준에도 관심이 생길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