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5년 전인 2012년. 구글이 스마트폰 제조업체 모토로라 모빌리티를 깜짝 인수했다.
좀처럼 초대형 합병에 나서지 않는 구글에겐 이례적인 거래. 더구나 거래 금액 역시 125억 달러로 구글 역사상 최대 규모였다.
당시 구글을 이끌던 래리 페이지 최고경영자(CEO)는 “고객과 파트너, 개발자 모두의 이익을 위해 안드로이드 생태계 전체에 생기를 불어넣을 놀라운 이용자 경험을 만들어내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밝혔다.
모토로라 인수 이후 구글은 미국에 제조공장을 건립하는 등 발빠른 행보를 보였다. 특히 모토X 스마트폰에 최적화된 옵션을 제공하면서 ‘구글 폰’의 위세를 보여주겠다는 야심도 강하게 드러냈다.
구글의 이런 행보에 안드로이드 동맹업체들은 걱정어린 시선을 보냈다. 구글이 안드로이드폰 제조에까지 직접 손을 뻗칠 경우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단 우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2년도 채 지속되지 못했다. 구글은 2014년 1월 모토로라를 중국업체 레노버에 넘긴다고 공식 발표했다.
당시 매각 가격은 29억1천만 달러. 모토로라 특허권을 대거 확보한 점을 감안하더라도 성공적인 거래였다고 보긴 힘든 결과였다.
■ 성급했던 2012년…그 때와는 많이 달라진 2017년
그랬던 구글이 3년 만에 또 다시 하드웨어 업체 인수를 단행했다. HTC 스마트폰 인력과 지적재산권을 11억 달러에 인수하기로 한 것. 한번 실패했던 경험을 갖고 있던 구글로선 의외의 행보로 보일 수도 있다.
일부에선 HTC가 ‘제2의 모토로라’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이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구글은 왜 HTC를 인수한 걸까? 또 HTC 인수와 모토로라 인수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일단 3년 사이에 IT 시장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구글이 모토로라를 인수할 당시만 해도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간 시너지가 지금처럼 강조되진 않았다.
특히 당시 구글은 안드로이드 동맹업체들을 최대한 많이 끌어모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모토로라를 통해 스마트폰 사업을 강화할 경우 오히려 동맹 와해의 빌미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때와는 조금 다르다.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증강현실(AR)을 비롯한 각종 소프트웨어와 서비스를 결합하는 것이 새로운 추세로 떠오르고 있다. 애플, 삼성 등 스마트폰 시장 경쟁자들은 전부 그런 행보를 보인다.
■ 2014년 네스트 인수+2016년 모토로라 출신 영입 등 준비 착착
구글도 최근 몇 년 동안 비슷한 행보를 보였다.
구글은 2014년 스마트홈 전문업체 네스트를 인수했다. 네스트는 ‘아이팟의 아버지’ 토니 파델이 만든 회사다. 깔끔한 디자인을 겸비한 하드웨어 쪽에선 일가견이 있는 업체다.
지난 해엔 모토로라 출신인 릭 오스터로를 영입했다. 하드웨어 사업을 정비하기 위해서였다. 가상현실(VR) 과 증강현실(AR) 역시 구글이 최근 공을 들이는 분야다.
소프트웨어 쪽엔 강력한 포트폴리오를 갖고 있는 구글 입장에선 하드웨어를 보강할 필요가 적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런 점에선 픽셀폰 제작 파트너인 HTC는 가장 적절한 인수 대상이 될 수도 있었다.
인수 규모 면에서도 그 때완 조금 다른 부분이 있다. 구글은 모토로라를 통째로 손에 넣었다. 125억 달러란 거액을 지불한 건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인력만 보충하는 선에서 거래를 마무리했다. 대형 인수에 따른 리스크를 줄이면서도 하드웨어 사업을 보강하겠다는 의도가 그대로 담겨 있는 행보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글에게 HTC는 양날의 검이 될 수도 있다. 자체 스마트폰 사업이 강화될 경우 삼성, LG, 화웨이 같은 안드로이드 단말기업체들을 긴장시킬 수도 있다. 직접 경쟁 관계로 돌아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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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입장에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간 시너지’란 미래 가치와 ‘동맹 와해 우려’란 현재 상황을 놓고 저울질한 끝에 미래 쪽에 승부를 걸기로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런 측면에서 구글의 HTC 인수는 2012년의 모토로라 때와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고 봐야 한다. 물론 상황이 다르다고 해서 꼭 성공한다는 보장이 있는 건 아니다. 그건 또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