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AI, 선진국보다 10년 이상 뒤져"

설립 한돌 아이리(AIRI) 김진형 원장…"AI전문가 양성 교육 실시"

컴퓨팅입력 :2017/07/27 11:18    수정: 2017/07/27 11:53

“우리나라 인공지능(AI) 경쟁력이요? 문제해결 능력, 소프트웨어(SW) 엔지니어 수, 공공 및 민간 투자액 등 여러 요인이 있기 때문에 한마디로 뭐라하기 힘듭니다. 굳이 계량화한다면 세계 최강인 미국과 비교했을때 10년 이상 뒤져있다고 생각합니다”.

판교 글로벌R&D센터에 있는 지능정보기술연구원(AIRI, 아이리)이 28일로 법인 설립 1년을 맞는다.

지난해 3월 전국을 강타한 ‘알파고 쇼크’이후 출범한 ‘아이리’는 7개 기업(삼성전자LG전자현대자동차SK텔레콤KT네이버한화생명)이 30억원씩 210억원을 출자, 주식회사 형태로 운영하고 있는 연구소 기업이다. 당초 정부도 150억 원을 출자하려 했지만 국회 등의 반대로 무산됐다. 주식회사지만 정관 1조에 ‘국가의 공익을 위해 일하며 중소기업과의 상생을 도모한다’고 명시했다. 공공성을 강조한 것이다.

김진형 아이리 원장.

지난해 8월 김진형 전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장이 초대 원장으로 부임했고, 이어 10월 11일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하며 정식 개소했다. 연구원은 김 원장을 포함해 총 19명이다. 독일 프라운호퍼 연구소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3년 단위 계약제로 연구원을 운영하고 성과와 연계한 탄력적 보상을 실시한다.

■연구원들에 최고의 자율성 부여

27일 판교 연구원에서 만난 김 원장은 “국내 어느 연구원 보다 나은 최고의 자율성을 연구원들에게 주고 있다”면서 “연구원 개개인이 업계 최고 인재로 인정받을 수 있게 지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이리’가 주력하는 인공지능 기술은 미국에서 이미 50년전 나온 컴퓨팅 기술이다. 그런데 최근 컴퓨팅 파워가 엄청 좋아지고, 데이터가 충분히 쌓이면서 다시 활용할 가치가 높아졌다. 김 원장은 “최근 5~6년간 AI 트렌드가 지식기반형에서 데이터베이스 기반으로 확 바뀌었다”면서 “국내에는 아직 AI 전문가가 태부족한데 학계와 연구소에 최소 30명, 많게는 100명 정도 되는 것 같다”고 내다봤다.

김 원장은 국내 ‘AI박사 1호’이자 1세대 프로그래머다. 서울대 공대를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뽑은 프로그래머에 선정, 1세대 프로그래머로 활동했다. KIST 프로그래머로 있으면서 “더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미국 유학을 떠났다. 미국 UCLA에서 전산학 석,박사 학위를 받으며 인공지능을 공부했다. 그가 박사학위 논문에서 쓴 ‘베이시안 네트워크(Basian Network)’라는 말은 당시 그가 세계에서 처음으로 사용한 말로, 현재는 두루 사용하고 있다.

박사 학위 후 휴즈항공사의 인공지능연구센터에서 4년간 근무한 후 재미과학자 초청 케이스로 한국에 돌아왔다. 카이스트(KAIST)에 정착한 그는 인공지능연구센터 소장, 소프트웨어정책연구센터 소장 등을 지냈고, 2014년 8월 정년 퇴임했다.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의 두 딸도 카이스트를 졸업, 부녀가 카이스트 동문이다.

지난 30여년간 SW와 울고 웃어온 김 원장은 정부의 SW 연구 지원 정책이 바뀌어야 한다 강조했다. 하드웨어(HW)와 달리 SW는 그 특성상 ‘중복 연구’를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SW는 기초연구, 응용연구 이렇게 나눌 수가 없다. 기초연구 한 사람이 계속 업그레이드 해야 한다. 그런데 업그레이드 과제를 내면 똑 같은 과제를 왜 또 하는냐며 당국이 지원을 안한다. 구글의 번역SW는 17,18년 되며 진화한 거다. SW는 전통 R&D와 같은 잣대로 재면 안된다”.

아이리가 지난 4월 선보인 수묵화를 그리는 인공지능.

■ AI강국 위해선 SW엔지니어 육성이 가장 시급

최근 중국은 “2030년까지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 AI강국이 되겠다”며 ‘AI 굴기’를 선언했다. 중국을 보면 위기의식이 아니라 전율이 느껴지고 등골이 오싹하다는 김 원장은 “우리나라는 아직 위기의식을 공유하지 못하는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카이스트 교수 시절 그가 겪은 중국인의 연구 지속성도 들려줬다. 중국인 포스닥 3~4명과 함께 연구했는데 이들이 모두 중국으로 돌아가 교수가 되거나 창업을 했다. 그런데 글로벌학회에 가면 이들을 또 다시 만나는 등 중국인들은 한 사람이 계속해 AI를 연구한다는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연구가 지속성이 없는게 일반적이다.

선진국과의 AI 경쟁력에 대해서는 “사람도 적고, 기술도 떨어져 목숨걸고 쫒아가야 하는 상황”이라며 “엔지니어 숫자만 봐도 우리나라는 중국의 100분의 1밖에 안된다. 미국 등 선진국과 ‘AI 갭’을 줄이기 위해선 가장 먼저 SW 엔지니어를 키워야 한다”고 역설했다.

‘아이리’는 정부연구기관과 산업계 중간에 위치, 기초연구보다 창조적 응용연구에 주력한다. 기초 및 기반기술은 아웃소싱하고 공개SW를 활용, 속도감 있게 연구결과를 도출한다는 방침이다.

딥러닝과 지식처리, 패턴인식 등 인공지능 방법론을 연구하고 있는 ‘아이리’는 올해 ▲언어 및 음성 ▲영상 및 비디오 ▲의료건강 ▲예술창작 등 크게 4가지 분야에 연구력을 집중한다.

특히 세계 어느 AI 연구원도 하지 않는, ‘아이리’만의 연구력을 보여주기 위해 AI기술이 들어간 ‘춤을 배우는 로봇’을 개발해 선보일 예정이다. 이 로봇은 음악이 바뀌면 춤도 함께 바뀐다. 또 장애물을 만나면 장애물을 피하고, 파트너와 함께 춤을 출 수도 있다. 이런 기능에 미적 아름다움도 갖출 예정이다.

김 원장은 “이 로봇 구현을 위해 케이팝 모션 데이터를 얻어왔다”면서 “문화 당국에 고전무용 모션 데이터도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아이리가 지난 4월 선보인 인공지능을 활용한 동영상 실시간 얼굴 추적 및 인식 시스템.

■ 9월 공개SW 활용한 한국어 음성인식 대회 개최

‘아이리’는 오는 9월에 꽤 의미있는 행사를 개최한다. 공개SW를 활용한 한국어 음성인식 대회다. 한국어 음성인식을 다루는 공개SW 생태계 구축이 목적이다. 개인이나 팀, 기업, 연구소, 외국인 등 누구나 참여 가능하다.

김 원장은 “장기적으로 실생활에서 활용가능한 수준의 한국어 음성인식 공개W 개발이 목표”라며 “한국어 음성인식 기술의 민주화와 음성인식 기술의 사회적 자산화, 여기에 신속한 기술 발전을 꾀할 수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아이리'는 AI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도 실시한다. 이른바 ‘아이리 400’이다. 일반 개발자 수준의 엔지니어를 400시간 교육시켜 AI전문가로 키우겠다는 것이다. 최대 15명을 뽑는다. 월요일~금요일 일주일에 5일간 진행된다. 9월 4일 시작해 11월 20일까지 3개월여간 여정이다. 총 400시간을 소수 정예 도제식 프로그램으로 교육한다. 성적이 우수한 사람은 '아이리'가 특별 채용할 계획이다.

김 원장은 “사명감으로 시작했다”면서 “프로그램 언어는 안가르친다. 인공지능을 전공하지 않은 전산학과 출신이 가장 적합한 수강생”이라고 설명했다.

■ “절대 포기하지 않는 정신으로 살아와”

크리스천인 그는 특별한 좌우명이나 묘비명이 없다. 대신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는 정신으로 살아왔다. 실망하는 순간에 실망하지 않고, 절대 포기하지 않았던 이순신 장군을 존경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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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원장이 주로 읽는 책은 미래에 관한 기술 및 경영서적이다. ‘오늘날의 김진형을 있게 한 사람’으로는 미국 유학 시절 지도 교수였던 쥬디 펄 (Judea Pearl)을 꼽았다. 막 결혼해 어린아이까지 딸려있던 가난한 유학생인 그를 쥬디 교수가 배려하고 보살펴줘 계속 연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이 있어서인지 김 원장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는냐는 물음에 “1세대 프로그래머 및 AI 연구세대다. 내 나이때는 전산을 전공하는 사람이 없어 내가 하는게 거의 모두가 최초였다. 이제 후배나 제자들에게 보다 좋은 연구환경을 만들어 주는데 기여하고 싶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