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경영 선언한 삼성, 어떻게 변할까

수평적 조직문화…전문경영인+이사회 중심

디지털경제입력 :2017/03/06 07:56    수정: 2017/03/06 07:57

그룹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을 해체하고 계열별 '자율 경영’을 선언한 삼성은 과연 어떻게 변할까.

대변혁기를 맞고 있는 삼성의 행보에 재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삼성 직원들조차 향후 조직의 형태와 문화가 어떻게 변화할지 기대와 우려가 뒤섞인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직원들 사이에서는 "(그룹이 해체되면서)삼성맨이라는 로열티나 계열 직원 간 결속력이 예전보다 약화되지 않겠냐"라거나 "부실 사업 정리가 빨라지지 않겠냐"는 우려 섞인 반응부터 "조직이 능동적으로 바뀌지 않겠느냐"거나 "상명하복 문화가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도 넘친다.

중앙의 지도가 없는 '자율 경영'이 어떻게 안착될지 노심초사하고 있는 것이다.

삼성 서초 사옥 (사진=지디넷코리아)

창업주인 故 이병철 회장은 사업보국과 인재제일을 경영 이념으로 전자산업의 씨앗인 반도체 사업을 일으켰다. 2세 경영인 이건희 회장은 1993년 6월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모두 바꿔라'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선언으로 '질(質) 경영'을 설파해 임직원들에게 '삼류가 아닌 세계 일류 기업이 되자'는 동기를 부여했다. 이 같은 총수의 경영철학은 비서실이나 구조조정본부, 전략기획실, 미전실 같은 그룹 사령탑을 통해 발 빠르게 실행에 옮겨져 초고속 성장의 기틀을 마련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지난 주 미전실 해체라는 초강수가 실행되면서 삼성에서 콘트롤타워는 사라졌다.

대신 계열사별 '자율 경영'이라는 새로운 경영 키워드가 전면에 떠오른 상황이다.

각 계열사의 독자적인 자율 경영을 선언한 삼성은 이제 전문 CEO와 이사회 중심으로 투자, 인사, 채용 등 주요 경영 현안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이사회 산하 경영위원회가 강화되고 외부 주주 추천 사외 이사도 거론되고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이사회는 사내 이사 4명, 사외 이사 5명 등 총 9명으로 구성돼 있다.

또한 ▲현실적 타협보다 합리적 제어장치가 ▲수직보다는 수평적 관계와 조직관이 ▲통제보다는 자율이 ▲관습적 규범과 사고보다는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조직문화가 각종 의제를 결정하는 데 주요한 잣대가 될 것이란 전망이다. 이제 '총수→미전실→계열사'로 이어지는 상하 수직적 경영 시스템은 더 이상 힘을 쓰기 어렵다는 뜻이다.

이는 1인 총수 체제가 20세기 수출 중심의 제조업 성장 모델에는 맞았을지 모르지만 ‘혁신 경제’ 모델로 가야 하는 21세기에는 전문성 있는 각 계열사 CEO와 이사회 중심의 전문 경영이 더 올바르다는 이 부회장의 의중이 깔린 조치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미전실 해체가 '최순실 국정농단'과 관련 정경유착을 근절하겠다는 선언적 의미도 있지만 이제는 삼성도 투명하고 합리적인 장치가 작동하는 조직적 변화를 수용할 때가 됐다는 것이다.

여기엔 삼성 에버랜드 전환 사채 등 그동안 삼성의 편법경영 승계에 대해 쏟아지는 국민적 비판에 대한 이 부회장의 성찰의 메시지도 담겨 있다. 국민들 의식 속에 뿌리 깊은 반(反)삼성 기류를 해소하지 않고서는 삼성도 다음 세대로 나아가기 어렵다는 뜻이다.

이때문에 삼성의 지배구조 개편 작업도 잠시 미뤄지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온다.

지난달 23일 오전 '갤럭시 노트7' 프레스 컨퍼런스에서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장 고동진 사장이 발표하고 있다.(사진=삼성전자)

특히 이 부회장이 지난해 발생한 갤럭시노트7 발화 사태 이후 구멍이 뚫린 품질관리와 제조공정 상의 총제적 문제점이 바로 조직 내 수동적이고 상명하복식 타성적 문화와 연관이 있다고 판단했다는 게 정통한 전언이다.

그룹 해체 직후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가 내린 조치를 보면 이를 어느 정도 엿볼 수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2일 대표이사 직속으로 글로벌품질혁신실을 신설하고, 삼성중공업 생산부문장인 김종호 사장을 실장에 위촉했다. 이틀 전 지난달 28일엔 전영현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장을 삼성SDI 신임 대표로 내정했다. 모두 지난해 갤노트7 배터리 발화 파동으로 흠집이 간 품질 공정과 관련 특단의 조치들이다.

지난달 23일 삼성전자는 갤노트7 발화 사고 원인을 배터리 자체 결함이라고 발표하는 자리에서 고동진 무선사업부 사장은 "(갤노트7 단종 사태의 교훈은)향후 삼성 문화와 내부 프로세서에 깊이 새겨질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사실 30년 가까이 휴대폰을 만들어온 삼성전자가 배터리 불량으로 플래그십 스마트폰을 조기 단종 시켰다는 것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실제 그런 일이 눈앞에서 벌어졌다.

세계 최고의 제조공정 기술을 자랑하는 삼성전자에게는 충격적인 일이다. 갤노트7 파동은 돈으로 환산하기 어렵다. 후유증도 적지 않다. 고객 신뢰 회복이라는 과제와 미국과 중국의 견제 속에 한 순간 몰락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도 커졌다.

이 부회장의 자율 경영 의지는 굉장히 강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른 부작용과 잡음은 모두 감수하고 간다는 게 내부 전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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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관계자는 "(미전실 해체를 결정한 데에는)그룹 해체로 있을 수 있는 부작용은 모두 감수하고 가겠다는 뜻"이라며 "그만큼 위기의식이 크고 각 계열사 간 책임 경영이 강화되는 만큼 선택과 집중도 더욱 강화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삼성전자 협력업체 관계자는 "그룹 해체로 인한 우려가 어떤 식으로 나타날 지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자율경영 체제를 통한 혁신과 품질 최우선 경영 체제라는 목표는 좋지만 자칫 계열사간 수익 극대화가 협력사로 불똥이 튈지 걱정"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