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테슬라 러브콜 받은 韓 자율차 박사

[조재환의 미래車리더] 제네시스 HDA 개발주역 이찬규 박사

홈&모바일입력 :2016/06/30 16:43    수정: 2016/06/30 16:55

“운명과도 같은 두 건의 자동차 사고에 연루되면서 자연스럽게 자동차 첨단 기술에 대해 연구하게 됐습니다.”

현대자동차 제네시스 브랜드에 탑재된 부분자율주행 기능 HDA(Highway Driver Assistant, 고속도로주행지원시스템) 개발을 주도한 이찬규 박사의 사연이다.

지디넷코리아는 테슬라에 근무하는 박민우 박사의 추천으로 이 박사를 ‘미래車리더’ 네 번째 주인공으로 선정했다. 그는 현재 UC버클리대와 현대자동차가 공동으로 설립한 ‘현대 공동연구 센터(Hyundai Center of Excellence)’에서 UC버클리대 소속 연구원으로 활동중이다.

이 박사는 자율주행을 ‘꽃과 열매’로 비유했다. 자율주행 기술개발이 생각보다 쉽지 않고 시간이 더 필요하지만, 언젠가 우리 삶의 미래를 바꾸는 훌륭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자율주행 기술 개발에 대한 그의 열정은 애플, 구글, 테슬라 관계자에 까지 전해질 정도로 뜨겁다. 직접 자율주행에 대한 그의 열정과 미래를 들어봤다.

UC버클리대 시험 차량 앞에 포즈를 취한 이찬규 박사(사진=이찬규 박사 제공)

■“자동차 사고로 차량 안전에 대한 관심 높아져”

한양대학교 기계자동차공학부 95학번인 이찬규 박사는 학부 졸업후, 운명과도 같은 두 건의 자동차 사고를 접하게 된다.

“제가 겪은 첫 번째 자동차 사고는 전방 급정지 차량을 피하지 못해 생긴 추돌 사고였고, 두 번째 사고는 빗길에서 미끄러진 차량에 부딪친 사고였습니다. 항공우주 관련 대학원 진학을 준비중이였던 저는 두 건의 자동차 사고를 겪고 나서 자연스레 관심사가 차량 안전으로 바뀌게 됐죠.”

이 박사는 이경수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의 도움으로 대학원 진학 당시인 1999년부터 운전자지원시스템(ADAS) 등 여러 자동차 안전사양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자율주행 및 ADAS에 대한 연구가 거의 전무했죠. 그 때 제가 연구한 차간거리제어시스템(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은 미래 먹거리로서 흥미로운 분야라 생각했습니다. 이 때문에 제가 자연스럽게 국내에서 ADAS 시스템 연구의 아버지 세대가 됐네요.”

■긍정적인 사고로 HDA 자율주행 시스템 개발하다

석사학위 취득 후 현대자동차에 입사한 이 박사는 입사 초기 업무 배정 때문에 힘겨운 나날을 보냈다. 배정받은 업무가 자신의 전공과 무관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입사 초기 ESC(전자브레이크 시스템), EPS(전자조향제어시스템)의 시험 평가를 진행했고 어드밴스드 에어백 시스템의 고장진단과 프로그래밍 및 ECU 제작 업무를 맡았습니다. 이 업무가 초기에 저랑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차량 시스템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도를 높이는 데에 큰 도움을 준다고 생각했습니다.”

위기를 기회로 여기자는 그의 긍정적인 사고는 후일 여러 종류의 ADAS 관련 시스템 개발에 큰 도움이 됐다. 그는 다양한 연구과정과 고생 끝에 차간 거리 제어 시스템, 전방 충돌 경보 및 충돌 피해 경감 시스템, 교통 정체 주행 지원 시스템, 차선 유지 지원 시스템 등을 순차적으로 개발했다.

“여러 과정 끝에 이 모든 시스템들이 융합된 HDA 시스템을 지난 2011년에 완성하게 됐습니다. 자체 개발한 기술들이 하나씩 양산차량에 적용되어 갈 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성취감과 자부심을 얻기도 했죠.”

HDA는 차량이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통과하면, 스스로 자율주행을 진행시킬 수 있는 현대자동차의 첨단 기술 중 하나다. 차량 내 내비게이션이 HDA 시스템 작동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시스템은 지난해 12월 출시된 제네시스 EQ900에 적용됐으며, 내달 출시 예정인 제네시스 G80에도 탑재된다.

제네시스 EQ900 (사진=씨넷/현대자동차)
제네시스 홈페이지에 소개된 HDA 시스템

■“시야 넓히기 위해 돌연 유학 결심...구글, 애플, 테슬라 러브콜 받아”

HDA 시스템 개발을 성공한 이찬규 박사는 자신의 연구 시야를 넓히기 위해 돌연 유학을 결심하게 된다.

“실리콘 밸리로 직접 가서 어떤 기술들이 미래의 먹거리인지 두 눈으로 확인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았는데, 아내의 응원으로 유학을 결심했고 지난 5월 UC버클리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게 됐습니다.”

그는 지난 2012년부터 4년동안 현대차 연구원 업무를 병행하며 UC버클리대에서 자율주행 연구를 독자적으로 진행했다. 현대차 회사 내 규정 상의 이유로 하는 수 없이 박사과정 취득 전 회사를 떠날 수 밖에 없었지만, 현대공동연구센터 UC버클리대 소속 연구원으로 자신의 꿈을 쫓고 있다.

“유학생활을 하는 4년동안은 인생의 암흑기나 다름 없었어요. 유학 당시 아내가 많이 아픈 적이 있었고, 저 역시 체력이 뒷받침돼 주지 않았죠. 그래도 자율주행 분야에 대한 제 자신의 도전 의지는 항상 남아있었기 때문에 결국 UC버클리대학교 박사학위 취득에 성공하게 됐습니다.”

자율주행에 대한 그의 열정과 노력은 구글, 애플, 테슬라 관계자들에게까지 알려졌다. 이들은 그의 박사학위 취득 후 “같이 일해보면 좋겠다”는 러브콜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이 세 회사의 제안을 정중히 거절했다.

“돈과 명예를 잡기 위해서는 구글, 애플, 테슬라에 가야하는 게 맞겠죠. 하지만 저는 사람을 중요시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저의 박사과정에 큰 도움을 준 지도교수님을 도와드리고 싶고, UC버클리에 남은 후배들과 좀 더 좋은 시간을 보내고 싶기 때문이죠. 제 개인적으로 현대자동차의 많은 분들에게 은혜를 갚고 싶기도 합니다.”

지난 2013년 설립된 현대공동연구센터는 현대자동차와 UC버클리대 소속 연구원들이 힘을 합쳐 자율주행, ADAS, 센서 기반 주변상황판단 기술 향상, 차량 제어 성능 향상 개선 관련 연구 등을 진행하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매년 연구원들을 현대공동연구센터에 파견을 보내며, UC 버클리대에서는 지도교수 2명과 10여명의 대학원생들이 연구진으로 참여한다. 이찬규 박사는 이곳에서 연구센터와 대학원생간 공동연구를 주도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현대공동연구센터의 디렉터이자, 저의 지도교수인 칼 헤드릭(Karl Hedrick) 교수님은 지난 50년간 자동차 연구에 매진해온 분이십니다. 센터 내의 연구를 일일이 간섭하지 않지만 올바른 연구방향으로 이끌 수 있도록 도와주고 계시고, 사람과 삶을 향해 바른 생각을 가져야 한다는 철학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계시죠. 저는 센터내에서 이 분의 열정에 크게 감명받고 있습니다.”

캘리포니아 모하비 사막 주행시험장에서 동료들과 포즈를 취한 이찬규 박사(사진 가장 왼쪽) (사진=이찬규 박사 제공)
칼 헤드릭 UC버클리대 교수에게 직접 사인을 받는 이찬규 박사 (사진=이찬규 박사 제공)

■“신뢰성 있는 자율주행차, 2025년 이후 판매 가능할 듯”

이번 인터뷰를 통해 완전 자율주행차 상용화 시기에 대한 그의 생각도 들어볼 수 있었다.

그는 자율주행차가 상용화 되기 위해서는 센서 인식(센싱), 지도 문제, 사회적인 합의 문제 등이 가장 우선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2013년도에 오토파일럿 연구를 시작한 테슬라보다 2년 일찍 HDA 시스템을 현대차에서 개발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실제 양산은 5년 뒤인 2016년에 이뤄지게 됐죠. 자율주행 기술이 탑재된 차량은 단 한번의 오작동으로 많은 사람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기 때문이죠. 이를 방지하기 위해 전국 고속도로에서 다양한 실험을 진행하고 문제점등을 보완해 나갔습니다.”

자동차 업계가 정한 자율주행차 기술 개발 범위는 다음과 같다. 1단계는 ‘선택적 능동제어 단계’로 운전자들이 스티어링 휠, 또는 가속 페달 중 선택적 자동제어가 가능하다. 국내 판매 차량에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크루즈 컨트롤 기능이 이에 해당한다.

2단계는 '통합 능동제어 단계'로 운전자들의 시선은 전방을 유지시키지만 운전대와 페달을 이용하지 않아도 되는 단계이며, 3단계는 자동차전용도로 등 제한된 조건에서 운전자들이 주행 중 다른 활동을 할 수 있는 '제한적 자율주행 단계', 최고등급인 4단계는 모든 상황에서 자율주행이 가능한 '완전 자율주행 단계'다.

“최고등급인 4단계 탑재 차량의 경우 몇 십 배의 복잡한 시나리오를 분석하고 판단을 내려하는 기능이 있어야 하는데, 이 기능에 대한 신뢰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대량 생산은 불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 때문에 신뢰성 있는 완전 자율주행차가 판매되는 시점은 저는 2025년 이후로 보고 있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모하비 사막 주행시험장에서 자율주행 테스트 중인 현대차 그랜저(사진=이찬규 박사 제공)

■“자율주행은 꽃과 열매”

마지막으로 그에게 자율주행을 한마디로 정의해달라고 부탁했다.

이 박사는 자율주행 자체를 ‘꽃과 열매’에 비유했다.

“많은 사람들이 꽃의 아름다움과 향기에 취해서 몰려듭니다. 하지만, 꽃은 곧 떨어지고 뜨거운 햇빛 아래 오랜 기간 성숙해야만 비로소 맛있는 열매가 열립니다. 자율주행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은 가장 이슈가 되는 기술이고, 장밋빛 미래가 보이는 것처럼 아름다워 보여서 모두들 자율주행에 달려들어 한번 씩 경험해 볼 수 있죠. 하지만 자율주행 기술 개발은 생각보다 어렵고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게 됩니다. 그래도 저는 자율주행 기술이 언젠가 성숙하게 될 것이고, 분명 미래를 바꾸는 훌륭한 출발점이 될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는 향후 자율주행 전기차의 최적연비효율 주행 시스템을 개발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신호등 정보와 선행차량의 이동 정보, 전방 도로 정보 데이터 획득이 가능하면 자율주행 전기차의 최적 연비효율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미래 자동차 리더가 되고 싶은 후배들에게 “현재에 안주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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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잘하는 것, 몸이 편안한 현재에 집착하게 된다면 새로운 것을 시도해볼 수 있는 계기를 갖기 힘들겠죠. 또 팀워크를 충분히 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춘다면 훌륭한 인재로 성장할 수 있을 겁니다.”

이찬규 박사는 '미래車리더' 인터뷰 다음 주자로 ADAS 분야 1세대 학자인 만도 소속 최재범 박사를 지목했다.